장한나 칼럼] 당신에게 작곡가 친구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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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6.26 22:07 / 수정 : 2009.06.26 23:17

첼리스트
"클래식 음악은 어떻게 감상하면 되나요?" 무척 자주 받는 질문이다. 음악을 듣고는 싶은데, 막상 뚜렷한 접근 방법을 찾지 못한 답답함에서 나오는 궁금증인 것 같다. 처음 클래식을 접할 때 어떤 느낌을 받는지, 왜 클래식 음악이 점점 더 멀게만 느껴지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최근 영국 런던에 10일간 머물면서 지휘자 로린 마젤이 작곡한 첼로 협주곡을 함께 연주했다. 연주 일정이 비어 있던 일요일 오후, 한 연주회를 찾아갔다. 바로 뒷줄에는 데이트를 하러 온 젊은 30대 초반의 남녀가 앉아 있었다. 클래식 음악회에 처음 온 듯한 여자 친구는 연미복을 말쑥이 차려입은 연주자들의 모습과 지휘자를 절도 있게 따라가는 질서 있는 연주, 무대를 들락날락하며 인사하는 커튼콜 등 처음 접한 풍경들을 무척 재미있어했다. 하지만 정작 연주가 끝나자 둘은 감동이나 자극을 받았다기보다는 다음에는 어디에 놀러 갈까 정하기에 더욱 바빴다. 우리는 분명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연주를 들었지만, 마음속에 담는 느낌들은 많이 다른 것 같았다.

노래를 따라 부르며 춤도 추고 자유롭게 즐기는 대중음악 공연장과는 달리, 클래식 음악회는 가만히 앉아서, 조금만 바스락거리거나 기침만 해도 주변 사람들의 날카로운 시선을 감당해야 한다. 음악의 분위기를 빨리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 가사도 없고, 한 곡의 길이가 30분이 넘는 건 기본이다. 클래식 음악에는 인내심이 필요하기에 감정의 연결 끈을 찾기가 어렵고 더욱 멀게만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클래식 음악 속에는 분명 우리가 알지 못하고 생각지 못했던, 폭넓은 감정의 세계와 감동이 숨어 있다. 클래식은 친해질수록 내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속마음을 나누는 친구 같다. 그래서 내 클래식 음악 감상법을 소개한다. 특별한 비법은 아니지만, 클래식을 친구로 사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다.

우선 바쁜 하루 동안 새로운 음악을 집중해서 들을 시간이 없다. 그래서 난 주로 하루 일과가 다 끝난 뒤 고요한 밤에 침대에 누워서 음악을 듣는다. 세상이 잠든 시간에 음악을 듣고 있으면, 볼륨을 꽤 낮게 줄여도, 작은 소리부터 큰 소리까지 모든 음악들이 분명하게 귀에 들어온다. 내 안에 있는 여러 소음과 생각들, 기억과 계획들을 모두 비우고 오직 음악 소리에 마음을 집중한다. 슬프고 애처로운 소리, SF 영화 음악처럼 외계인이 나올 듯한 소리, 신비로운 소리, 웃게 하는 소리, 봄에 새싹이 돋고 꽃향기가 그윽한 소리, 아름다운 소리, 못생긴 소리, 화창한 소리, 신나는 소리…. 그 속에서 이런 소리를 만들어내는 여러 선율들의 조화를 느낀다.

악기 이름이 무엇인지, 반주인지 선율인지, 이런 것을 아는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작곡가는 우리를 가르치기 위해 작곡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작곡가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남기고 싶은 메시지가 있고, 이 메시지를 새로운 언어처럼 자신만의 소리 세계(soundscape)로 표현했기 때문에 이 소리에 푹 빠져드는 것이 우선이다. 친해지면 처음 듣는 곡도 어느 작곡가의 작품인지 알 수 있다. 이렇게 듣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든다.

다음 날 밤, 다시 같은 음악을 듣는다. 어제와는 또 다른 소리들이 들린다. 매일 밤 조금씩, 이 음악의 줄거리가 잡힌다. 슬픔에서 환희로 끝나는지, 비극으로 끝나는지, 그 운명을 극복하는지, 사랑에 관한 이야기인지, 어느 부분이 운명적인 클라이맥스인지, 내 마음을 하얀 캔버스처럼 비우고, 그 위에 들리고 느끼는 감정들을 새겨나간다. 어느새 내 마음속에는 친구의 절실한 이야기가 담긴다. 옆집에 이사 온 새 친구가 단짝이 되기까지 많은 시간을 보내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것과 같이, 우리에게 이런 소리를 남긴 작곡가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도 시간이 걸린다. 꼭 여러 분들께 권해 드리고 싶다. 살면서 한번쯤은, 한명의 작곡가와 친구가 되어서, 그의 감정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와 우정을 쌓아나가기를. 클래식 음악이란 무엇보다 영혼의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