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나 칼럼] 환해진 두오모의 얼굴
장한나 첼리스트
▲ 첼리스트 장한나
환해진 두오모(Duomo)의 얼굴이 다시금 감탄을 자아냈다. 최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연주를 위해 열흘간 머물면서 여느 때처럼 짬을 내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두오모 성당이다. 지난번 성당의 전면은 대리석에 묻은 지난 세기들의 흔적과 오염을 닦아내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 때문인지 다시 찾아가니 대리석의 섬세한 색들이 다시 빛을 내고 있었다.

1300년대 건축하기 시작해서 500년이 지난 뒤에야 완성된 이 성당은 늘 나를 숨 멎게 한다. 그 웅장함과 거대함이 모두 사람의 생각에서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문득 나 자신이 부끄럽다. 그 거대함을 이루는 세부 디테일에서 위대한 예술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며 배운다.

내 마음속에도 이렇듯 크면서도 섬세한 생각을 품을 수 있는 그릇을 기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500년에 걸쳐 완성된 이 두오모를 보면서 인내심과 꾸준함을 다시금 다짐하게 된다.

두오모 앞에는 늘 많은 관광객이 북적거린다. 세계 곳곳의 언어로 감탄하고, 사진을 찍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경건한 얼굴로 둘러본다. 발걸음을 다른 곳으로 돌릴 때조차 시선은 계속해서 두오모 쪽을 되돌아본다.

음악도 이 두오모와 닮은 점이 많다. 두오모가 여전히 현대인들의 넋을 사로잡듯이, 훌륭한 음악은 몇백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시대의 흐름을 넘어서고, 역사의 시험을 통과한 예술이라는 점이 같다.

음악 역시 거대한 구조와 인류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지니고 있지만, 한없이 세부적인 디테일이 없으면 안 된다. 이 같은 디테일이 연결되면서 음악과 건축은 모두 완성된다. 그렇기에 오늘날에도 연주자들은 지루할 틈도 없이 음악에서 새로운 점을 발견한다.

음악과 두오모는 천성적으로 다른 점도 있다. 두오모는 언제 어떤 사람이 보는지 무관하게 늘 변함 없이 지어진 그대로 그 자리에 남아 있다. 그야말로 돌에 새긴 예술이다. 이렇게 시간적인 제약 없이 보고 만질 수 있기에 많은 사람들도 두오모의 웅장함을 쉽게 마음에 새길 수 있는 것 같다.

반면 음악은 시간에 의존해야만 하는 예술이기에 두오모와 달리 끝없이 변화한다. 한번 울리면 사라지며,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소리의 예술이기에, 음악의 시작부터 끝까지 들으며 이미 지나간 소리와 다가올 소리를 마음속에서 연결하며 음악의 커다란 구조를 느껴야 한다.

결국 음악이 주는 재미는 작곡가가 전해주는 청사진을 놓고서 나 자신의 상상력을 통해, 나만의 색과 획으로 마음껏 나만의 두오모를 짓는 것이다. 음악은 이렇듯 작곡가와 연주자, 청중이 함께 완성하는 자유가 있는 예술이기에, 시대와 장소를 넘어서 지금까지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 같다.

15년 전, 첫 연주 여행을 시작하면서 밀라노의 두오모를 알게 되었다. 그 뒤로도 두오모를 볼 때마다 이전엔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훌륭한 음악도 들을 때마다 우리에게 새로운 것을 전달해준다. 예전에 나를 지루하게 했던 음악이 갑자기 어둠 속 번갯불처럼 뚜렷해지고,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음악이 새삼 부인할 수 없는 감동으로 다시 내 마음을 움직인다. 그때 느끼는 행복과 고마움은 미처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벅차고 시원하다. 보다 많은 사람이 이런 감동을 마음에 품을 수 있게끔 도와주는 음악가가 되고 싶다는 다짐을 두오모를 보면서 다시 해본다.

 

입력 : 2009.03.06 2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