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의 창] 부처 신설이 정부개혁 正道 아니다

기사입력 2014.10.23 17:14:42 | 최종수정 2014.10.23 17:22:21


정부가 국가안전처와 인사혁신처 등 정부부처를 신설하려고 한다. 공직정신이 무너져 몸에서는 암세포가 자라는데 얼굴 성형수술이나 하겠다는 거다.

정부조직과 운영은 지난 정부부터 수준 이하다. 전 정부는 중앙인사위원회를 없애더니 이 정부는 국가개혁처 어쩌고 하다가 인사혁신처를 만든다고 한다. 국가 안전은 국방 경찰 소방 환경 국토 등 여러 부처에서 책임질 일이고, 초위급 시 국무총리가 컨트롤타워 구실을 하면 된다. 인사는 또 다른 이야기다. 인사 잘못은 청와대 책임이지 부처 신설로 해결되지 않는다. 부처 신설이나 자리 주기보다 공직자의 시대정신, 공덕과 공편 등을 살리는 게 급선무다.

전가의 보도로 삼는 규제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 규정이다. 공무원들은 현장은 모르면서 규정대로 집행하려고 든다. 집행이 유연성을 잃으면 정부의 존재 이유가 없어지는데도 관료의 능력, 정향, 관심 등 이들 세계는 예나 이제나 변함이 없다. 조직에서의 인간관계와 직위가 빚는 거짓과 갈등과 암투 등 관료세계의 민낯을 알면 이 세계가 개혁을 주도할 수 있는지, 대상이나 될 수 있는지 의문부터 앞선다.

프란츠 카프카의 `성`에서 주인공 측량기술자 K가 터득한 진리는 권력에 대한 욕망 때문에 관리를 망치는 거다. 중국의 대표 신사실주의 작가 류전윈의 `단위`의 주인공 류는 일꾼들이 생존하기 위해 서로 불신하고 감시하고 비방하는 것을 체험한다. 대민 서비스는 안중에 없고 시스템의 압력에 꼼짝달싹 못한 채 소외돼 인성까지 왜곡되는 자신을 숙명으로 다스린다. 박완서의 `조그만 체험기`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부군의 사기죄 입건 때문에 검찰청, 구치소, 법정에서의 농간과 회유, 통과의례, 변호사의 무책임, 표피만 건드리는 판사의 심문 때문에 삼킨 비명과 탄식이 독한 한숨으로 피어난다.

이런 비극은 소설에만 있지 않다. 미국에서의 편입학은 한국 의사 서명이 있는 영문 예방접종증서만으로 족하다. 한국은 보건소 발행 예방접종증서만 받지 병ㆍ의원이 발행한 증서는 쳐주지 않는다. 보건 기록은 2005년부터인데 그전 것을 아기 수첩으로 대신하자고 해도 다니던 모든 병원에서 기록을 떼어 오란다. 세종시 관리들은 민원인 보기를 소 닭 보듯 한다. 멀리 서울에서 오전에 가면 오후에 오란다. 몇 시간을 기다려 2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본질이 왜곡되는 평가지수를 만들어 학교를 괴롭히고 툭하면 정원을 줄이라고 압박한다. 이들은 작은 예에 불과하다. 더 큰일은 정부 관리들이 반개혁세력의 악의에 찬 투서, 비난, 모함 등을 공평의 이름으로 비켜가며 책임을 회피해 정의를 외면하는 일이다.

이들 정신과 태도를 바꾸는 것이 진정한 정부 개혁이다. 파비안 쾨르너는 `인터넷 검색창에 진짜 세상이란 없다`고 말한다. `무엇이 행동하게 하는가`를 쓴 유리 그니지와 존 리스트는 자리를 박차고 책상에서 벗어나 거리로 나가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알게 되고, 기존 이론과 가정을 반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답은 현장에 있는데 부처 안에 처박혀 회의만 한들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현장 리더십을 강조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지도를 펴놓고 몇 번이고 현장을 확인한 후 지방시찰을 나가 몸으로 실천했다.

열쇠는 실천에 있다. 실천 없이 머리 없다. 세상 모른 채 개혁을 아무리 외쳐봤자 좋은 정부가 되기는 글렀으니 거만한 갑의 태도는 장 속에 묻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현장으로 뛰어가라. 공직자들의 정향과 습관부터 바꾸는 것만이 진정한 정부 개혁의 길이다.

[김광웅 명지전문대 총장ㆍ초대 중앙인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