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의 창] 대학(大學) 독립만세

기사입력 2014.11.27 17:06:43 | 최종수정 2014.11.27 17:11:45


입시철엔 수험생뿐만 아니라 대학도 걱정이 태산이다. 대학이 낭만을 구가하던 꿈같은 시절이 있었다. 무시험 입학제, 연세대가 1958년에 했었다. 당시 대학은 입학제도를 스스로 정할 수 있었다. 교수 자제가 입시에서 가산점을 받은 적도 있다. 그 전해 가을 서울대 법과대학은 입시를 반년도 남겨놓지 않고 제2외국어를 필수 선택으로 정했다. 횡포에 가까운 대학의 결정을 정부가 어쩌지 못했다. 명망 있는 교수가 맡은 문교부 고등교육국이 대학 관리를 다 했다.

나라에 걱정거리가 많지만 대학 교육만큼 골칫거리가 없다. 대학의 문제는 두 가지로 집약된다. 하나는 대학이 나라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제대로 교육하고 있지 않다는 것. 둘은 대학이 그럴 수 있도록 정부는 제도 관리에만 몰두하지, 대학 변화와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대학은 총장부터 학문과 철학의 폭과 깊이가 옹색해 인재 육성에 매우 궁색하다. 그저 규정대로 학생 뽑고 점수 매겨 졸업시키는 일만 반복한다. 우리는 대학에서 등급, 시험성적, 노력, 그리고 스펙을 포함해 실적만 좋으면 엘리트로 출세하는 줄 안다. 그러나 이들이 주역이 된 사회는 100년 전보다 나아졌다고 말하기 어렵다.

‘엘리트의 황혼’을 쓴 크리스토퍼 헤이즈는 “엘리트가 우수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지위를 누리기 위해 부패한다”고 말한다. 자신에게만 유리하고 남에게는 불리한 불평등사회를 조성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을 조작해 극히 제한된 일부만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게 만든다. ‘암흑의 심연’에서도 조지프 콘래드는 이런 이들을 기름 기둥을 미끄러지지 않고 올라가려고 애쓰는 것에 비유한다.

대학 교육을 시작부터 엉망으로 만드는 주역은 정부출연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다.

파스타집에서 3년여 동안 8억여 원어치 식사값을 흥청망청 쓰고도 과목 이기주의에 빠져 지식의 허상과 인식의 허구가 뭔지 모르면서 오류 투성이 대입 시험문제를 출제해 학생과 사회를 우롱하고 있다. 정부는 20년 전 준칙주의랍시고 대학을 마구 인가하더니 학생이 줄어드니 일관성 없고 실재와 거리가 먼 대학 구조 개혁 평가지표로 정원 줄이기에 급급하다. 정부가 대학을 간섭하고 옥죄고 겁주는 일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고도 많다.

국가가 개조되려면 근본이 바뀌어야 한다. 교육부터다. 초·중등교육은 물론 고등교육의 내용과 운영 양식을 바꿔야 한다. 한마디로 대학다운 대학에서 정부가 손을 떼야 한다. 대학등록금의 4배가 되는 예산으로 학생들을 지원하는 대학이나, 스스로 입시 출제를 할 수 있는 대학은 정부가 간섭의 끈을 놓아야 한다.

대학은 내일을 내다보며 다양성의 기초를 닦는 곳인데 정부가 만든 관료적 틀에 묶여 한발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면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법인의 대학 전입금이 영(零)이거나 불법으로 돈 빼가는 부정부실 학교법인, 또 이에 영합하는 총장 등이 있는 대학부터 관리하라. 정부는 국립대학이나 부실 사학만 맡으면 된다. 고등교육의 이상·현실·미래를 융합하는 차원에서 정부는 분업의 묘를 살렸으면 한다.

존 브로크먼은 억제(restrain), 과묵(reticence), 봉사(service)가 몸에 배어 있어야 엘리트라고 한다. 대학에서 공감능력과 스튜어드십에 흠뻑 젖어 졸업 후 이들이 국가와 사회에 봉사할 때 대학은 살고 나라의 미래는 열린다. 교육부의 대학 기능을 확 줄이고 대학을 살리는 ‘대학독립만세’가 허공만 가르지 않기를 빈다.

[김광웅 명지전문대 총장·초대 중앙인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