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2015.1.19(월)   A34면>

기사입력 2015.01.18 18:48:05 | 최종수정 2015.01.18 19:33:06


정부 정책이 잘 풀리지 않는 근본적 이유가 하나 있다. 구조적으로 얽혀 있는 문제를 기능적으로 접근해서 그렇다. 정부는 전문가를 동원해 지수(index) 만드는 일에 몰두한다. 국가직무능력표준 같은 것이 그중 하나다. 지수의 전 단계가 지표(indicator)이고, 지표의 바탕이 개념(concept)이다. 개념도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의미와 내용이 달라진다. 지수는 숫자로 표시되고 지표는 프로그램이 된다. 숫자와 개념 놀이만으로는 관계가 본질인 정책 문제의 정곡에 다가가지 못한다. 관련 정책들을 행과 열이 다양하게 직조된 매트릭스로 봐야 문제를 하나라도 풀 수 있다. 정책 이미지와 분위기도 무시하지 못한다.

경제혁신정책은 정부와 시장, 생산자와 소비자, 또는 고용주와 근로자 간의 관계를 뜯어고치는 구조적 변혁이 본질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융합과 거리 먼 각 분야별 프로그램으로 의도한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 경제주체들의 기본생각이 생산과 효율, 그것도 분야별 정책 패키지로 혁신하려는 한 소득 증대는 물론 분배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면서 계층 간 갈등과 양극화만 초래한다. 교육정책도 정부는 학생이 오지 않아 문닫아야 할 대학을 뻔히 알면서 지표 여남은 개로 대학을 평가해 등급을 매긴다. 교육비환원율, 학생충원율 등 지수가 참고는 되지만 대학교육의 정체성을 판가름할 수는 없다. 세계는 이미 유명 대학들이 강좌를 개방했고 MOOC나 COURSERA 등이 대형 강좌를 몇 백 개씩 개설해 대학의 울타리를 허문 지 오랜 데도 정부는 지수만 나열해 구조개혁한다고 야단이다.

희랍 금언에 ‘셈하기 시작하면 이미 그것은 그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물론 4차원에 관련된 것들은 모두 숫자로 표시된다. 그러나 사람의 나이가 인격을 말해 주지는 않는다. 인격을 일정 척도 따라 측정해도 고매하다는 정도를 수치로 말하는 것은 난센스다. 본체의 단면에 불과한 수치로 방정식 만들어 예측하려고 온갖 애를 쓰지만 맞는 건 거의 없다. 문제는 최고 엘리트를 자처하는 공직자들이 기능만 생각하고 삼각 또는 사각 틀 속에 틀어박혀 판에 박힌 사고와 방식으로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데 있다.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에서도 구조혁신을 기능적 차원에서 언급한 대목이 여럿 있다.

정부 정책의 오류와 불통은 모두 구조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출발한다. 경제주체들이 경제혁신 정책에 동의하려면 언어 구조주의자 F 소쉬르가 말하듯이 언어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언어체계(언어수행-랑그 langue와 언어능력-파롤 parole)의 규칙과 약속을 공유해야 가능하다. 서로 규칙 어기고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이들을 공동체 구성원이라고 할 수 없다. 정부가 규제 혁파며 정책 제의를 해도 정부의 랑그가 경제 가치의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인식 없이 생산 축에만 머물러 있으면 성장은 부작용만 늘린다. 나아가 사상과 행위를 결정짓는 것이 인간주체보다 먼저인 인식성(episteme)인데, 거기엔 연속적 발전만이 아니라 비연속적 비약과 단절의 구조가 있게 마련이다. 이 나라 정책은 연속적 발전만 전제하며 앞으로 나가려고 애쓴다.

기능적으로 처리해야 할 것 물론 있다. 기능도 구조와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나 정책 결정자들의 지수 위주 수사(修辭)는 실재와 거리가 멀다. 구조적 인식을 하자는 것은 맥락과 종횡으로 관계 맺는 직조된 전체를 보면서 문제에 다가가자는 것이다. 정책 요소 하나하나에 신경 쓰기 보다 전체 분위기를 느낄 줄도 알아야 한다. 오각형 틀이나 다각 변형의 틀도 상상하면서 한 방향 상승 직선적 사고에서 벗어나 반전과 단절도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정부가 정책구성 양식부터 정책 간의 연관성과 인식성을 바탕 삼는 것만이 나라가 바로 가는 길이다.

[김광웅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