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 2015.02.12(목) / 종합 A8 면

[1980년 개헌 때 문구 작성… 윤후정 이화여대 명예총장]


오늘날 대한민국 헌법 36조 1항에 '양성(兩性) 평등' 네 글자가 들어간 데는 윤후정(83·사진) 이화여대 명예총장의 공이 크다.

1980년 8차 개헌 당시 YWCA· 여성단체협의회·여성유권자연맹 등 여성 단체들은 남녀평등에 관한 조항을 헌법에 담는 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이 단체들은 초안 작성을 의뢰하기 위해 한국 첫 여성 헌법학자인 윤후정 당시 이대 법대 학장을 찾아갔다. 윤 학장은 고심 끝에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는 문구를 작성했다. 일부 수정을 거쳐 명문화된 이 조항은 2005년 헌법재판소가 호주제(戶主制)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정을 내릴 때 중요한 근거가 됐다.

윤 총장은 11일 "가정에서 남성만이 소유권을 갖는다는 '부권(父權)', 남성만이 명령하고 다스린다는 '부치(父治)', 남성만이 혈통을 이어간다는 '부계(父系)'를 핵심으로 하는 가부장제(家父長制)의 근간을 무너뜨린 상징적 사건"이라고 말했다. 1970년대 호주제 폐지 주장을 처음 펼 당시 그는 '삼태기에 담아 태평양에 내다 버려야 한다'는 비난도 받았다.

초대 한국여성학회장(1984년)과 이화여대 첫 직선 총장(1990년), 대통령 직속 초대 여성특별위원장(장관급·1998년)까지 그의 이력에는 처음과 최초라는 수식이 유난히 많다. 그만큼 한국 여성계의 개척자로 꼽히지만 그는 '여성 해방'보다는 언제나 '여성의 인간화'를 주창했다. "물론 여성이 구속과 속박에서 풀려나야 하는 분야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남녀는 상호 의존하고 보완하며 공생(共生)하는 관계예요."

윤 총장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라는 측면에서 양성 평등 점수를 매긴다면 반세기 전에는 10점에도 못 미쳤지만 지금은 60~70점은 된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가사·육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 부족하고,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여성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 숫자가 적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성들은 사회에 진출한 뒤에도 직장 일과 가사, 육아라는 삼중고(三重苦)에 시달리기 일쑤다. 윤 총장은 "공공 보육 시설을 확충하고, 여성뿐 아니라 남편의 육아 휴직도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면서 "보육에 대한 재정 투입이 경제적 손실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을 바꿀 때 저출산 문제도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기고자:김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