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5.05.12 17:38:54 | 최종수정 2015.05.12 19:27:31


정부가 한창 새 국무총리를 물색 중이다. 제1공화국 정부(1948~1960년) 초대 총리 이범석(李範奭)부터 모두 43명의 총리가 국가를 위해 봉직했다. 평균 재임 기간 1.5년. 정부 초기 총리들(이범석 장면 장택상 등)은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었다.

대통령 또는 다른 정치 세력의 견제로 자리에서 물러나곤 했다. 제3공화국(1961년)부터 총리의 위상은 일인지하 만인지하일 뿐이다. 의전, 방탄 등 역할이 한정되고 미미해 존경의 대상이 되긴 어려웠다. 국정 2인자라며 으스대지만 이회창을 빼놓곤 모두 `순한 양`이었다. 그래도 신현확, 강영훈은 공직의 표상이다.

총리의 역할을 폄하할 수는 없다. 100만 공무원을 통솔하며 대통령을 도와 행정부를 원활하게 이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막중한 자리에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도덕적으로 깨끗하며 행정 능력을 갖추고 대통령에게 바른말을 할 수 있는` 인물을 주문한다. 대통령과 소통, 행정부 장악, 사회통합, 위민찰물(爲民察物·국민 삶을 잘 살피기), 대민 설득 능력 등이 총리 역량의 기본이다.

박근혜정부 들어 세 번째 총리가 등장한다. 총리 임명이 여의치 않은 것은 몇몇 후보자들이 언론 평가나 국회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낙마했기 때문이다. 총리 후보 선택이 이처럼 조심스러우니 인물 고르기가 난제다.

총리 임명은 시대 상황과 펴야 할 정책을 고려해야 한다. 징비록(懲毖錄)을 남긴 조선시대 유성룡(柳成龍)을 떠올리면 된다. 또 박근혜정부의 국정 지향과도 무관할 수 없다. 국정지표는 미래·창조·융합·사회통합 등이다. 문제는 이 정부가 시대 상황과 국정 지향에 걸맞은 총리를 구하려 하지 않고 법무와 관리에 익숙하거나 쉽게 거론되는 인물 중에서 사람을 찾고 있다는 데 있다.

지시 일변도 행정을 펼치는 대통령 밑에서 누가 총리로 일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지만 역할 분담을 잘해 갈기갈기 찢기고 앞이 보이지 않는 이 난국을 헤쳐나가야 한다. 이때 마땅한 인물은 청문회 허들을 쉽게 넘을 수 있는 현 사회통합부총리다. 총리가 정치 역량을 포함해 청와대와 같이 호흡하지 못하면 `식물총리`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엘리트는 머리와 입은 있지만 몸이 없다는 데 있다. 현장 실천에 약하다는 뜻이다. 기껏해야 계획되고 정해진 일정대로 시장통을 다니거나 행사장에서 테이프를 끊으면서 정부가 일을 잘한다고 일방적으로 홍보하며 축사나 읽기 일쑤다. 이제 이런 총리를 우리는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

순한 양은 전형적 엘리트를 지칭한다. 최근 `공부의 배신(원제 Excellent Sheep·훌륭한 양)`을 낸 윌리엄 더레저위츠의 주장이다. 엘리트들은 명문대학의 특권이라는 환상에 젖어 한 방향으로 가는 온순한 양에 불과하단다. 저자는 일찍이 미국 학자들을 대상으로 발간되는 윌슨쿼털리에 미국 사관학교에 가서 연설한 내용을 실은 적이 있다. 엘리트는 소통도 큰 생각도 할 줄 모르고 열정이 없다는 것이었다.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엘리트인 것은 분명하지만 대통령에게 반론도 펴며 큰일을 해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번 총리 임명이야말로 기왕에 시도했던 발상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법조 출신들은 정직하고 매사에 치밀하며 어긋남이 없지만 큰 생각을 펼치기에는 어딘가 미흡하다. 작년 이맘때 법무연수원에 가서 검사장들더러 앞으로 더 큰 역할을 맡으려면 우선 `검찰의 세계`에서 벗어나고 21세기 리더십의 필수 요소인 융합적 사고를 해야 한다고 강의한 적이 있다.

정부가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을 삼성에서 영입했듯이 인재 등용의 틀을 바꿔야 한다. 학자, 언론인, 기업인, 정부출연 기관장 중에서 큰 인물에 준하는 `실천적 인물`을 얼마든지 고를 수 있다. 예를 들자면 황창규 회장을 꼽을 수 있겠다. 새 총리로는 새 세계에 맞고 크게 멀리 생각하는 인물이 선택됐으면 한다.

[김광웅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