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5.08.16 17:41:07 | 최종수정 2015.08.17 15:55:42


`역사가 과거와 미래의 끊임없는 대화`(E H 카)라면 광복과 재건국 70년을 맞는 오늘의 정치인들은 옛 선열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을까. 힘겹게 얻은 해방·독립·자유·민주 등 고귀한 가치를 어떻게 계승 발전시켰다고 이들은 말하겠는가. 또 역사가 거울이라면 자신의 모습이 미래에 어떻게 비칠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다음 세대와 어떤 대화를 하고 있는가.

이승만(李承晩)이 `새로운 정신과 새로운 행동으로 구습을 버리고 세계 문명국과 경쟁해 새로운 국가를 만년반석 위에 세`(대통령 취임사)웠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하겠는가. `민주주의 길은 함께 즐거운 영역에 도달하는 것`(民主爲道 同等樂域, 경기도 광주시 서하리 詩碑)이라는 신익희(申翼熙)에게는 어떤 답을 내놓겠는가. 의회민주주의자이자 반독재투쟁에 앞장섰던 조병옥(趙炳玉), 그리고 농지개혁을 주도했던 조봉암(曺奉巖)이 지금은 얼마나 자유롭고 평등한가 물으면 답은 뭐일까. 이들 네 지도자의 공통점은 대통령 내지는 대선 출마자이다.

이들 말고도 이념은 달리하지만 반제국주의를 외친 여운형(呂運亨), 조봉암과 남북협상을 주도했던 박헌영(朴憲永), 그리고 좌우합작운동을 전개하고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정부 대표로 참석해 탄원서를 제출하고 외교활동을 펼쳤던 신한청년당 대표 김규식(金奎植)이 지금의 진보세력과 어떤 대화를 할까.

정부수립 당시 일인당 국민소득 14달러, 5년 후 국내총생산 477억원, 나라는 세계 109위 최빈국이었다.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곤궁한 시절에도 김구(金九)는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백범일지 말미 `나의 소원`)라고 했다. 문명국을 꿈꾸던 백범과 우남에게 70년이 지난 지금 국민총생산은 3만1000배에 달해 세계 13위 경제대국이 됐다고 자랑만 하겠는가.

일제에 항거하며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기라성 같은 지도자들은 시간 차원의 역사의식만 아니라 공간의 지평도 지금보다 훨씬 넓었다. 대부분 해외 유학으로 이국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미국, 러시아, 유럽 대륙을 누비며 키운 안목은 세계와 역사를 보는 눈이 지금보다 훨씬 세련되었다.

유감스럽게도 지난 긴 세월 동안 자유·민주의 값은 볼품 사납게 나락으로 떨어졌다. 남북협상에 대한 보수·진보 간의 쌈박질은 천박하기 이를 데 없다. 정책대결 한다는 정치인은 상대방 말꼬리 비틀기만 한다. 이들은 피켓 들고 시위하고 판때기 앞세워 검찰에 고발하러 가는 게 다다. 한류나 내세우며 정부 주도 전시성 문화융성으로 아름다운 문명국을 만들기는 애저녁에 글렀는데도 정치인들은 예산을 마구 퍼준다. 법이 만능인 줄만 알지 연민의 감정과 상상력이 버무려져야 그나마 평등이 구현된다는 것을 이들은 모른다. 입법부는 정부의 신뢰가 바닥나 나라의 중심이 `신뢰 엔진`으로 민간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는 줄 모르고 으스대기만 한다.

정치기능인으로 전락한 대권몽자(大權夢者)들, 이들이 과연 무거운 역사의 짐을 지고 있는가. 시대 따라 지도자의 역할이 다르다 해도 선열의 반의 반의 반도 못한 지금의 정치인들이 지혜롭게 미래를 조망하고 있는가.

지도자라면 과거를 반추하고 내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나라를 구하고 정부를 수립한 후 피땀 어린 경제성장으로 큰 변화를 이룩한 이 나라가 백범의 말대로 아름다운 문명국이 되려면 지도자는 자신의 알(소우주)에서 벗어나 우주를 보아야 한다. 웜홀을 통과해 1945년 대한민국에 가고, 70년 후 한국과 세계에도 가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동안 훼손된 자유와 민주를 되살리고 아름다운 나라를 세우는 것이 지도자의 몫이다. 애써 찾은 이 나라의 과거와 미래를 잇는 역사적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김광웅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