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5.09.20 17:25:22 | 최종수정 2015.09.20 17:36:14


정부를 몸에 비유한다면 청와대는 뇌다. 뇌는 사고하고 결정하고 행위를 지시한다. 크고 작은 결정을 모두 뇌가 한다. 그렇다고 청와대가 바다낚싯배 해상사고까지 관여할 일인지는 고개가 좀 갸우뚱해진다.

세상을 인식하는 마음과 정신, 곧 뇌인 청와대가 나라와 국민을 어떻게 인식하고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정부 권력을 잘 행사하고 있느냐가 국민이 정부를 보는 기본 시각이다. 때로 뇌의 인지기능이 저하되지 않았나 걱정하는 것도 국민의 여린 마음이자 충정이다. 변화를 착각이라고 말하는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같은 이도 있지만,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갖고 이를 추구하는 인간 본성상 뇌는 창조를 먹고 큰다.

창조경제, 박근혜정부의 제1 아이콘. 시대가 안고 있는 심각한 문제를 풀고 내일의 희망을 기약하기 위해 내세운 정치적 상징이다. 지본사회(地本社會)와 자본사회(資本社會)를 넘어 뇌본사회(腦本社會)가 진행된 지 오래다. 수렵·천렵 시대의 발과 다리, 산업혁명 시대의 손, 그리고 정보시대의 얼굴(눈·귀·입)은 머리에게 주역을 빼앗겼다. 2100년 지식지도를 보면 생명공학, 우주과학, 뇌과학 등이 지식의 주조를 이룬다. 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문제는 결정하고 행동을 지시하는 뇌가 보고 듣고 계산하는 것(좌뇌)만으로 창조가 이루어지느냐다. 그보다는 뇌의 감성기능(우뇌)이 더 작동해 국민이 감동해야 정부는 제 몫을 하게 된다. 폐쇄, 경직, 단순, 일률, 평면 등, 이들 단어로 상징되는 청와대, 더욱이 `관료적 전문성`(목표를 정해 놓고 이를 정당화시키는 지식에만 얽매인)에 젖어 자기 합리화에 급급한 청와대에 창조의 주역이 되라고 주문하기가 왠지 어쭙잖다. 복잡계·융합계 시대에 접어든 지 오래인데도 정부는 단순계 시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뇌가 주역인 창조는 아름다움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창조가 아니다. 창조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있는 것을 아름답게 꾸며도 창조다. 거리의 미화원을 창조자라고 하기도 한다.

`권력의 의지가 아름다움의 의지`라는 니체 말대로 미감(美感) 없이 권력에만 집착한다면 권력은 추해지고 창조는 불가능하고 의미도 없다. 18세기 유럽의 미학에서 말하던 아름다움에는 숭고함이 함께했다.

아름다움에 도덕성이 결부될 때가 최고의 선이다. 창조경제만 외치다 숭고한 가치나 최고의 선을 간과한다면 창조하느니만 못하다. 청와대 참모들, 나라를 아름답게 꾸미면서 `권력은 아름답다`는 명제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 누구인가. 권력이란 세상을 아름답게 꾸밀 수 있어야 진정한 힘이 된다. 아름다움은 두말할 필요 없이 균형, 조화, 질서의 집합체다.

권위는 과거에는 지위나 직위에서 나왔다(position-based authority). 지식이 기초가 된 권위(knowledge-based authority) 시대를 지나, 지금은 감각이 기초가 된 권위(sense-based authority) 아니면 효험도 없고 존중받지도 못한다.

청와대가 몇몇 부처더러 ICT, 인공지능, 바이오 기술 등으로 벤처기업을 육성하게 하고 청년 일자리 만들어 낸다고 창조경제가 꽃피는 것은 아니다. 청와대가 매사 뒤치다꺼리하며 모두 다 잘하고 있다고 홍보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그럴 시간 있으면 심미안과 지혜의 깊이를 더하는 자성과 고민의 짬을 갖는 것이 더 현명하다. 권력이 아름다운 옷을 입고 감각으로 창조의 요람이 되는 청와대로 거듭나면 안 될까.

이승만정부 때 경무대가 청와대가 된 것은 미국 대통령궁이 흰색이어서 백악관이라고 칭하는 것에 따라 기와 지붕 색깔대로 붙여진 이름이다. 청색은 만물이 생성하는 봄의 색깔로, 창조와 일출을 상징한다. 창조의 본산은 아름답고 숭고하고 도덕적 선을 상징하는 창조대가 되었으면 한다.

[김광웅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