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학회 연례 학술발표 논문---                2016. 1. 29

  


                  공유정부 시론(試論)



                       2016. 1. 29
                       동국대학교

                      김  광  웅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차례>

I. 들어가며
II. 이론적 배경과 인식 틀
1. 민주시민사회에서 정부의 위상: 역할의 한계
2. 인식틀
III. 시민사회와 시장과 역할분담, 그리고 분담 가능한 영역들
1. 시민사회와 시장과 역할분담
2. 분담 가능한 영역들
IV. 학문적ㆍ실천적 과제
Summary




<요약>


나라의 산적한 문제를 풀 길은 공유정부(共有政府)밖에 없다. 무능한 정부를 더 이상 믿기 힘들다. 기존의 대립되는 여러 주장들, 이른바 권력, 부, 기회 등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간의 대결 구도에는 출구가 없다. 새로운 시대인식을 토대로 새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롭다기 보다 18세기 칸트도 이미 말했다. 탈위상, 탈중앙, 무소유, 비전유, 비시장 등이 그것이다. 이것이 곧 공유정부의 이상이다. 디지털 시스템과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 그리고 자연법칙을 넘어 인공법칙으로 가는 시대를 맞으며 기존 체제에서 한시바삐 탈출해야 한다. 앞으로 총선과 대선을 치를 3년이 국가운명의 분기점이다. 


공유정부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國富論, The Wealth of Nations)에 대응한 망부론(網富論, The Wealth of Networkds)으로 가능하다. 국부론의 보이지 않는 손이 법, 제도, 정책으로 자본주의 기득권을 확대재생산 해 오늘의 비극을 양산했다. 이제는 더 이상 시대의 그늘에 갇힐 수 없다. 이에 대한 반명제가 미국 하버드대학교 로스쿨 교수 요하이 벤클러의 망부론이다. 시대는 전과 크게 다르다. 생명공학, 인공지능, 우주과학의 도움으로 자연법칙의 효가 약화되고 있다. 유발 하라리가 말하듯 종교, 정치, 법과 제도, 교육 등은 언어를 구사하는 인간이 만든 허구에 불과하다. 지적설계로 생명이 유기화합물에서 비유기물로 되어 가니 신의 세계이자 인간의 세상이 바뀌어가고 있다는 주장도 외면하면 안 된다.


공유정부는 공유경제에서 말하듯 1차집단(가족)과 2차집단(정부)의 중간에 존재하는 1.5집단(공유재기반 동료생산과 사회적 생산)으로 굳이 정부, 입법, 선거 등 법과 제도를 거치지 않고 생산과 거래와 사용이 가능한 두 원(관과 민)간의 교집합영역이다. 이 영역을 넓혀 정부가 힘에 부치는 부문을 민에 맡겨 더 잘하도록 위양하는 구도를 말한다. 공직의 위상과 가치의 궤도 수정이 전제된다.


급변하는 앞으로 3년, 새로운 기틀을 마련해야 나라의 미래가 기약된다. 관과 민이 서로를 인정하고 도와 출구를 모색하지 않으면 어떤 정부, 어떤 정권이 새로 들어서도 난제는 쌓이기만 할 것이다.


논문은 학술적 주장으로 끝나지 않고 실천의 장으로 이어졌으면 한다. ‘공유정부 민주선도’(The Democratic Initiatives for Sharing Government, DISG)의 이름으로.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 한 방법이다.


참고로 아래에 공유정부의 교집합을 그림으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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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정부 시론(試論)

I. 들어가며


왜 정부(행정부)는 나라에 산적한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가? 왜 정부는 바른 정책을 올바로 수립하고 집행하지 못하고 있는가? 국민이 궁금해 하는 정부 문제를 행정학도는 제대로 직시하고 문제를 푸는데 기여하고 있는가?


공공행정이 안고 있는 문제와 한계는 어느 나라나 예외 없이 경험하고 있고 돌파구를 찾으려 애쓴다. 그러나 개혁에는 도도리 표만 찍힌다. 예나 이제나 정부 관료와 관료주의는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개혁에 역행하고 있다. 정부의 무능과 관료의 한계는 정당정치와 무관하지 않지만 여기서는 광의의 정부는 제외한다. 공공행정에 초점을 맞추려고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의 존재가치와 의미를 달리 생각해 스스로 고치는 새롭고 차원 다른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가 되었다. 정부의 존재가치는 지난 세기와 달리 과학정보통신기술(ICT), 바이오(BI), 인공지능(AI) 등 여러 기술의 괄목할 만한 발달로 그 비중과 역할이 크게 달라졌다.


한마디로 소유, 전유, 시장, 거래 등의 관념이 바뀌어 비전유적, 비시장적 인식이 싹터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시대상이다. 정부에 대한 기본인식이 바뀌어야 할 근본적 이유다. 그렇다면 정부의 위계와 중앙집중이 어떤 변화를 맞아야 할까? 관료주의는 어떻게 변신해야 할까?


첫째, 정부는 국가의 중심으로 국민이 원하는 모든 것을 허구에 불과한 법ㆍ제도ㆍ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이나 해결하려고 하는 헛된 노력에서 벗어나야 한다.


둘째, 정부의 역할에 회의를 품고 정부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 등과 할 수 없고 할 필요가 없는 일을 가려야 한다.


셋째, 어느 조직이나 안고 있는 관료주의의 문제를 다시금 파헤쳐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논문은 정부의 변화방향을 모색하기로 한다. 때마침 공유경제(共有經濟, sharing economy)가 화두가 되고 있다.i 공유는 시대정신의 표상이 되었다. 과거의 소유, 독점, 간섭, 규제에서 다시금 자유와 정의를 구현하려는 노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소유에 집착하는 이기심만 아니라 남을 배려하고 동행하는 이타심도 존중 받기에 이르렀다.ii 이 변화는 공존과 안녕을 위해서다. 과거 ‘지배의 리비도’ 보다는 ‘동감의 리비도’가 존중 받아야 할 시대에 접어 들었다(그림 2참조).는 이야기다. 과거 체제의 부정적 부산물(빈곤, 고통, 박탈, 소위 등)을 씻어내기 위해서 시대의 패러다임이 변해야 할 시기를 맞고 있다. 


그럼에도 이 순간 정부는 시대 정신과 철학을 외면하고 구태의연한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해 국민의 편익을 높인다는 정부 3.0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 이상이 아니다. 정부의 시대 인식이 이 정도라면 현 정부에 대한 기대는 접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시대가 어떻게 변하고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직도 모르고 있으니 답답하기 그지 없다.


후술하는 요하이 벤클러(Yochai Benkler의 주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가 말하는 호혜적 인간(Homo Reciprocans)이 바탕이 된 공개경쟁(open competition)과 병렬적 보완(parallel complimentary)으로 ‘공유재에 기반한 동료생산’(common-based peer production)이나 사회적 생산(social production)의 의미를 새기며iii 정부가 어느 정도 바뀌어야 하는 가를 심각하고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때가 되었다.


벤클러가 말하는 동료생산은 1차집단과 2차집단 사이에 있는 1.5집단이다. 두 원이 교차하는 교집합이라고 해도 좋다. 이 집단이 1과 2의 양 집단의 모순과 한계를 극복하여 법과 시장을 거치지 않고도 생산활동과 분배를 적절히 한다는 것이다. 법과 시장을 제친다는 것은 혁명적 사고이다. 자본주의의 지배구조에서 비롯되는 아집과 편견을 지우기가 쉽지는 않다.


행정학도들에게 익숙한 공유재에 관한 논의는 앨리노 오스트롬(Elinor Ostrom)이 받은 노벨경제학상의 주제인데, 그가 강조한 것이 벤클러의 정신과 상치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즉, 오스트롬은 공유재의 고갈을 막으려면 사유화하거나 규제되어야 한다는 지배구조의 논리를 폈기 때문이다. 공유지가 규제 없이 1000년을 유지한 스위스와 필리핀 마을이 있다. 고전경제학적 관점에서 말하는 공식적 법 체계를 넘어 비법률적 사회규범이 인간행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다.iv 우리나라에서는 김민주가 부산 가덕도 대항마을의 숭어사례를 들어 공유재의 자치적 관리의 장점과 단점을 파헤쳤다.v


논문은 ‘공유정부’共有政府’라는 정부의 새로운 위상을 정립하기 위해,


(1) 현존하는 정부의 위상과 역할의 한계를 여러 실례로 지적하고, 공유정부의 인식틀을 제시한다. 


(2) 정부는 더 이상 관료주의의 화신인 철둥지와 철옹성을 쌓지 말고 문을 활짝 열어 시민사회와 시장과 역할분담 시대를 맞아야 한다, 분담의 구체적 사례를 제시한다.


(3) 학문적이면서 실천적 관점에서 근본적이고 단기적인 정책들을 제의한다. ‘공유정부 민주선도’(Democratic Initiative for Sharing Government, DISG)) 의 출범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상이 논문의 골격이다.


II. 이론적 배경과 인식 틀


1. 민주시민사회에서의 정부의 위상: 역할의 한계


민주주의가 성숙해도 정부의 비중과 역할이 존치 내지는 확대돼도 괜찮다는 의견이 없지 않다. 정부는 정부조직이 말하듯이 나라의 온갖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한다. (1) 나라를 지키고 통일을 이루려고 노력한다. (2) 법과 질서를 유지한다. (3) 국제관계를 원활히 한다. (4) 국민의 경제생활을 신장한다. (5) 교육, 복지 등 국민의 사회적 안전판을 구축한다 등이다. 정부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잘하는 것도 많지만 반면 국민을 실망시키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비대한 정부의 운신이 효과적이기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이다. 더욱이 폐쇄적 관료세계의 자기중심적 관견은 시대착오적이고 국민의 기대와 거리가 멀다. 엘리트의 화신인 공공조직의 관료들은 갑의 위치에서 무엇이든지 세우면 되고 집행하면 효과가 난다는 착각을 지우지 못한다.


정부는 공유와 근사한 정보공개, 이른바 정부 3.0을 내세운다. 이의 실체를 가리고 그 근본이 관료주의의 폐쇄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사례를 바로 보아야 한다.


1) 공유의 시작은 정부가 정보를 얼마나 공개하고 있느냐 이다. 정부는 정부 3.0을 표방하며 공공 데이터를 개방하고 공유, 소통, 협업 등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정부가 ‘스마트 정부’라고 하면서 연말정산 팁을 알려주고 시력 검사도 없이 운전면허를 발급한다고 하는 것은 편리한 서비스임에는 틀림이 없다. 식중독 예측지도를 만들고, 범죄위험지수를 개발하는 것도 주민의 편익을 위해서 정부가 애쓰는 면모다. 클라우드 컴퓨팅(1만 8000개의 정부 전산망과 데이터베이스를 묶는다)과 빅데이터 기술을 응용해 전자정부의 수준을 끌어올리려는 노력도 기울인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vi 정부는 정보를 국민과 대등하게 같이 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정부는 국민이 필요한 정보를 정직하게 공개하지 않는다 정부 3.0은 정부 서비스가 간편, 신속하게 된 몇 가지일 뿐 아직도 부처별 운영에 머물고 융합의 차원에서 사물 인터넷을 활용하는 수준이 아니다.vii


정부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단순 업무 개선으로 국민이 원하는 신속한 서비스만 아니라 정부 속에 감춰진 자기만의 리그 속을 공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열린 재정에는 예산 사용에 관련된 큰 항목만 열거되어 있다. 행정자치부가 지방교부금 지역별 지원 내역을 밝히지 않는다. 미국의 재정 세입 세출 공개 시스템은 정부예산이 어느 지역 누구에게 어떻게 쓰였는지를 투명하게 공개한다. 


정부는 부실한 공공 데이터 축적부터 온전히 해야 한다. 5년에 한번씩 하는 식당 위생점검이 줄 수 있는 정보는 너무 부정확하다. 동시에 정보를 숨긴다. 지난 메르스(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때가 그렇고 유해물질이 확인돼도 두리뭉실 발표한다. 공공시설 안전도나 의료사고 데이터도 마찬가지다. 물론 지역주민이 공개를 원하지 않는 범죄정보나 침수정보 같은 것을 정부가 과감히 공개하지 못하는 고충은 있다. 그러나 소수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일 수는 없다.


2) 정부가 공개와 거리가 먼 것의 근본 이유는 우월주의, 곧 관료주의 때문이다. 관료주의의 폐해가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지만 최근의 지적 몇 가지를 소개한다.


하나는 평창동계올림픽을 준비하는 이기홍 대한체육회 수석부회장 사례다 현 정부는 80년대 식으로 간섭한다고 한다. 공무원은 상전이고 우리는 아랫것이다. 그는 18년 대한체육회에서 일하는 동안 이번 정부만큼 지시와 간섭이 심한 적이 없다고 토로한다. 체육회도 비리의 온상이라고 알려져 대통령의 ‘4대악 척결’의 일환으로 조사를 당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내년 올림픽에 대비할 시기에 서류 장부 가져오라며 불러 대 준비에 집중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호소한다.


둘은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원장을 맡고 있는 박영아 전국회의원 사례다. “공무원 숫자가 너무 많고 규제하고 간섭할 대상만 찾고 다닌다.”고 신문 인터뷰에서 밝힌다 “정부부처마다 다투어 시대착오적 연구개발을 과거에 하던 관행으로 여전히 해오고 있다.” “1970¤ý80년대식으로 공무원이 민간을 이끌어가는 시대가 아니다. 산업기술개발 등에서 민간과 정부투자의 규모는 7대 3쯤 된다. 이미 민간이 정부를 앞서고 있다. …….이런 부문에서 정부 연구개발사업은 투자한 만큼 별로 효력이 없다.x


이런 간섭과 규제로 일관하는 관의 업무행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고 문체부나 미래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업부처나 일선 기관들의 관료적 행태는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는다. 정부는 자신들이 하는 일은 무엇이던지 옳고 이에 필요한 인적ㆍ물적 자원을 맘대로 써도 된다는 인식을 좀처럼 지우지 않는다.


3) 문제는 요즘 별 논의를 하지 않는 정부의 규모가 역할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부터 행정학도들은 정부의 규모, 즉 큰 정부와 작은 정부에 관한 논의를 당연시 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부처는 없어지기도 하고 합쳐지기도 했다. 노태우 정부 때부터 시작한 행정개혁(위원장, 신현확)은 김영삼 정부(위원장, 박동서)에 이르러 정부부처가 통합되면서 대부처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부는 점점 공룡이 되었다. 김대중 정부(위원장, 박권상, 실행위원장, 김광웅) 때는 외환위기로 정부조직을 줄여야 했는데 정치적 이해가 개입됐다. 결과적으로 보면 정부부처를 떼었다 부쳤다 하는 것이 정부의 효율이나 성과와 아무런 관련이 없고, 소용도 없다는 점이다. 이점 논자는 크게 반성한다. 민주정부의 본질은 견제와 균형인데, 대부처가 되니까 견제는커녕 통합의 힘이 압도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런 역사적 과정에서 현 박근혜 정부는 정부부처 늘리기를 다반사로 한다. 국민안전처가 대표적인 것으로 에스커레이터 두 줄 서기 그만이라는 발표나 하는 정부는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가. 소방, 방재, 해상사고를 담당하는 국민안전처 같은 기구를 만들 거면 국민의 안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부처들, 이를테면 국방부, 보건부, 국토부, 환경부, 기상청 등등 여러 부처간의 협동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개편할 일이며, 이는 총리실의 한 부서가 신설되는 것으로 족하다.


질병 하나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했는데 질병관리본부장을 차관급으로 올리면, 전쟁이 나면 국방부 장관을 총리 급으로 올리겠다는 것인가. 질병본부야 말로 국제화시켜야 하는 것이 당면한 과제인데 관심은 계급에만 있다. 


관료의 행태는 비판 받아 마땅한데도 고집은 여전하다. 예를 들면 공무원이 하는 일 중 중요한 것이 전문성이 부촉하니 외부 전문기관에 용역을 맡긴다. 외주가 때로 필요하나 연구 결과물은 원하는 대로 편집되거나 사장되는 것이 예사다. 대신 관료적 전문성, 말하자면 목표를 세워놓고 이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전문지식과 정보만 활용하는 정당하지 못한 행위를 자행한다.


정부는 연속적이지 못하다. 정부가 바뀌면 같은 것이라도 색칠을 다시 해 새로운 것처럼 만들어 국민을 착각하게 한다. 일시적 행사로 국민의 눈을 번쩍이게 하고 잊고 마는 낭비를 정부는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정부는 능력이 미치지 못하면 손을 놓고 시장과 민간(정직하고 성실하고 능력 있는)에게 맡아 달라고 요청할 때가 되었다. 짐을 덜고 집중할 필요가 있는 일(기초와 미래 준비)에만 매진해 나라를 다시 일으켜야 한다.


2. 인식 틀


논문에서 인식틀의 기저는 공유다. 정부의 존재와 역할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고 하나 그 과정에서 정부가 도를 넘어 국민을 압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어서 공유의 이념과 거리가 멀다. 


정부는 세상의 변화를 철저히 간과하고 과거에만 머물러 있다. 세상은 <그림 1a>에서 보듯이 계급사회에서 전이사회를 거쳐 공동체 사회로 전개되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세 단계가 혼재되어 있다. 특히 정부는 계급사회 그대로다. 계급제는 정부에만 있지 않다. “계급제(hierarchy)는 한국인의 삶에서 중요한 조직화된 원리”라고 미국 계간지 뉴욕커가 최근 한 글에서 지적했다.xi 계급제는 이 나라에서 지울 수 없는 규범이다. 대표적 일례로 언론사의 기자나 예ㆍ체능인들의 말투를 들어보라. 언필칭 선배, 후배가 뜬금 없이 나온다. 평등주의를 지향하면서 이런 의식을 버리지 못한다. 마이클 센들이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공동체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단계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x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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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a> 세상의 변화


<그림 1b>는 또 다른 세상의 변화를 보여준다. 레이먼드 커즈와일의 <Singularity is Near>(김명남, 장시형 역, 특이점이 온다, 김영사, 2007)는 세상의 변화발전을 6 단계로 나누어 풀이한다. 첫째, 물리학과 화학의 시대. 둘째, 생물학의 시대. 셋째, 뇌과학의 시대. 넷째, 기술의 시대. 다섯 째, 기술과 인간지능이 융합하는 시대. 여섯 째, 우주가 다시 태어나는 시대 등이 커즈와일이 보는 세상의 변화이다. 현재 우리는 5 단계를 지향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정부는 로봇 공무원으로 대체되는 계급의 변화를 생각하지도 않고 있는 듯 하다(미주 xxiv 참조). 로봇으로 대체되는 하위 직급 조정을 계획하지도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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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b> 과학 발전에 따른 세상의 변화-R. 커즈와일


또 다른 차원에서 세상의 변화는 이렇다. 세계는 현재 새로운 산업혁명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스마트 공장’, 제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고도 말한다. ‘무선 주파수 인식 기술(RFID)이 뒷받침하고 있다.xiii 스마트 폰, 사물인터넷, 신재생에너지, 전기자동차 등 각종 디지털 기술로 자본주의라는 현재 경제 패러다임이 한계 효용이 0이 되는 세상을 맞는다. 향후 40년간 ‘자본주의와 공유경제가 공존하는 혼혈의 시대’이자 ‘하이브리드 경제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이다.xiv 그래서 이들에 대해 ‘협력적 소비’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현재 전 세계 공유경제의 규모를 200억 달러로 추정한다. 2050년이 되면 공유경제가 자본주의와 다른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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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4차 산업혁명 시대(출처: 구글 이미지)


여기서 한가지 덧붙일 것이 있다. 지혜의 인간(Homo Sapiens)이 신의 시대를 거쳐 생명공학, 인공지능, 우주과학의 도움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40억년 동안 생명은 유기화합물이라고 해서 자연법칙에 순응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지적설계로 생명의 본질이 비유기물로 바뀌기 시작했다. 언어 덕분에 인간이 서로 협동하며 화폐, 종교, 제국을 창조했다. 그러나 종교, 정치, 법과 제도, 교육, 교역 등은 지어낸 이야기로 모두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견이 고개를 번쩍 들고 있다. ‘개념 의존적 실제’라는 명제와 통한다. 이처럼 인간과 사회가 변하고 있다. 세상을 새롭게 설계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전망을 외면하면 안 된다.(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사피엔스, 김영사, 2015)


세상은 이렇게 변하고 변할 텐데, 정부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정부도 시대의 흐름 따라 위상과 역할을 재고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지적한 대로 아직도 물질과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만이 지고지선이라고 생각하는 지배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300년 동안 국가는 19세기 과학주의와 유물론, 그리고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국민을 위해 물질과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을 당연시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긍정적 산물만 아니라 부정적 산물이 동시에 양산되는 결과를 빚는다. 전쟁, 파괴, 환경훼손, 마약, 매춘, 이혼 등등 인간세계에서 없어졌으면 하는 부산물이 끊임없이 양산됐다.


시대는 더 이상 ‘생산의 축’(axis of production)에 만 머물면 안 되게 되었다. 즉, ‘공존의 축’(axis of co-existence)으로 이동해야 국가의 균형이 잡힌다. 공존의 축에서의 기본가치는 물질과 에너지 대신 생명과 시간으로 칼 포퍼의 비판적 합리주의가 이론적으로 뒷받침한다. 공존의 축과 생산의 축의 관계를 <그림 3>으로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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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21세기 인지문명시대의 국가 기본 틀


공존의 축으로 이동해야 할 시대적 사명에 맞추어 논문의 기본 인식틀은
<그림 4>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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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공유정부 인식 틀


공유정부에 관한 논의는 아직 생소하다. 정부와 민간이 협업하는 이른바 거버넌스 역시 주인은 정부이고 국민은 어디까지나 객이다. 주종관계다. 주권재민을 진정으로 인정한다면 정부는 국민을 위해 서비스 하는 입장이어야 함이 분명하다. 이제 정부는 과거의 위상과 역할에서 벗어나 국민과 시장과 협업을 넘어 공존하기 위해 분업이 가능한 공유를 하면서 시장의 독자적 역할을 인정할 때가 된 것이다. 전제는 시장이 돈이 아닌 인간중심이어야 하고, 정부보다 정직하고 봉사와 희생할 소임을 다할 수 있는 정향과 능력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정부는 정보의 적극적 공개와 공유를 넘어, 그리고 협치(協治)를 넘어 국민과 분업(分業)의 묘를 살릴 때가 되었다. 공유는 함께 나누어 갖는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논문에서 강조하는 공유는 함께 일하는 협업의 수준을 넘어 정부는 민간이 더 잘 할 수 있는 것을 간섭하지 않고 독자적 활동을 인정하는 수준이다. 까닭은 기존의 중앙집중적 법과 정책의 틀에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으니 자생과 자율과 자유를 인정해 민간부문의 활동이 활발하도록 정부의 기본 인식과 행동방향이 바뀌었으면 하는 것이다.


공유정부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음 <그림 5-1>, <그림 5-2>, <그림 5-3>을 참조하기 바란다. <그림 5-1>에서는 정부(A) 와 국민(B)간의 교집합이 벤클러가 말하는 1.5의 동료생산 집단이나 사회적 생산 영역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공유정부의 상징이라고 하고 싶다. 이어서 <그림 5-2>와 <그림 5-3>은 공유정부를 이해하기 위한 은유적 상징을 추가한 것이다. 특히 은유(1)은 교집합이 얼마나 유용한 영역인지를 밝힌다. 은유(2)는 여러 교집합 중 7이 가장 공유정부의 이상에 가깝다.x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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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1> 공유정부의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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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2> 공유정부 은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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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3> 공유정부 은유(2)



우리는 이제 아담 스미스 국부론의 ‘보이지 않는 손’(이기심이 바탕인)이나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Leviathan)에서 말하는 경쟁, 명예, 이기심보다 비이기적 유전자(the unselfish gene)로 호혜와 협업으로 탈집중적 협동이 가능한 쪽으로 눈을 돌릴 때가 되었다.


칸트도 이미 인간적인 것에 관한 의미법칙을 탐구하면서 그 본질을 ‘중심성’이나 ‘위상성’으로 대변되는 폐쇄된 정형이 아니라 ‘탈중심성’이나 ‘탈위상성의 열린 관계를 말했다.xvi 그리고 존 스튜어드 밀이 말하듯 인간은 내면적 힘의 상황에 따라서 모든 면에서 스스로 자라고 발육하는 나무와 같고, 인간의 삶의 방식에서 다양성을 존중 받지 못한다면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높은 지적 수준까지 이르지 못한다는 견해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인간행동을 권력과 시간(병영, 교도소, 양로원 등은 제도적 본질이 같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으로 꽁꽁 묶어 놓는 관료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이유는 너무 많다.


정부는 앞에서 지적한 대로 공개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 협업은 거버넌스의 이름으로 시민단체와 잘 아우르는 것 같지만 양자는 어디까지나 갑과 을의 관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명색만 시민사회와 의논한다는 태도다. 시민단체 중에는 정부나 기업에 코업트되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논문은 시대의 변화에 부응해 정부가 시장과 많은 것을 공유하되 분업의 정신이 바탕이 되자는 것을 재삼 강조한다. 정부보다 잘하는 사회단체, 기업, 학교, 그 밖의 단체 등이 있으면 이들이 할 수 있는 여러 사업과 활동(교육, 문화, 경제, 봉사 등)에서 정부는 손을 떼고 시장에게 맡기자는 취지다.
 
III. 시민사회와 시장과 역할분담, 그리고 분담 가능한 영역들


1. 시민사회와 시장의 역할분담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지본사회(地本社會)와 자본사회(資本社會)에 이어서 정보사회(情報社會)와 병행해 뇌본사회(腦本社會)가 진행 된지 오래다. 천렵시대의 발과 다리, 산업시대의 손, 정보시대의 얼굴(눈, 코, 입, 귀),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뇌가 시대의 중심이다. 마음과 정신의 집합체인 뇌는 모든 판단과 결정과 행위를 주관한다.


청와대가 정부부처와 중복이 되는 기능을 하기보다 창조대(創造臺)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정부를 인체에 비유하면 청와대는 뇌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또한 푸르다는 청(靑)이 만물이 생성하는 봄의 색깔로 창조와 떠오르는 태양을 상징한다.xvii


ICT, AI, BT의 시대, 4차 산업혁명시대(복잡과 융합의 시대)가 열린 지 오래인데, 정부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관료주의는 원래 폐쇄, 경직, 단순, 일률, 평면이니까) 무거운 짐을 덜고 민간에게 도움을 청해야 마땅하다. 공개를 넘어 협업을 넘어 공유와 분업의 흐름을 타지 않으면 철둥지(iron cage)정부는 고철 이상이 될 수 없다.
‘공공재 기반 동료생산’으로 가능한 공유와 분업을 위해 정부는 무엇부터 준비해야 할까?


(1) 정부는 두 손에 움켜쥐고 있는 권력을 하나씩 내려 놓아야 한다. 정부의 규모를 줄이고 역할을 한정시키는데 동의해야 한다. 규제개혁의 차원을 넘어야 한다.


(2) 공직자의 신분보장부터 없애야 한다. 공무원의 신분보장이 정직과 정의의 화신이 되라고 준 선물이자 특권인데, 고위 공직자들의 상당수가 규정 뒤에 숨어 규제 일변도에다 정의를 외면하는 일을 다반사로 한다. “고위 공직자들은 저마다 아킬레스건이 있어서 상대의 불의를 알고도 결정적 한 방을 못 내민다.” 정민이 세사상반(世事相反) 중 하나로 한 말이다.xviii 공직자들의 변명은 중립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고위직 상당수는 평소 승진인사 때, 그리고 특히 선거 때가 되면 정치에 줄을 대고 정당에 기웃거리기를 다반사로 한다. 이들은 신분을 보장받을 이유나 가지가 없는 존재다. 과장급 중견관리층까지만 신분을 보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 일의 중심역할을 이들이 하기 때문이다.


(3) 공직의 계급을 줄이는 것이 급선무다. 


(4) 기업에서 하는 ‘나무의 숲’처럼 리더가 아래 사람들로부터 항시 평가 받고 고쳐가는 일에 주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5) 역량강화 한답시고 개념에 불과해 실재와 거리가 먼 내용(concept-dependent reality)xix을 주입하고 있으니 이런 공직 훈련과정이야말로 가장 전근대적이다.


(6) 공직이 권력이 아니라 봉사와 헌신과 희생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 5급 공무원부터 퇴임 때까지 각자에게 드는 비용 30억원을 반으로 줄이는 안도 내 놓을 때가 되었다. 세금을 더 걷느니 마느니 하면서 복지 타령하기 보다 공직의 예산을 크게 줄이는 노력을 하면 된다. 뇌가 아무리 좋은 엘리트 집단이 진을 치고 있어도 국민에게 돌아오는 것은 감시와 규제 이상이 없다.


정부는 입장을 바꾸어 을(乙)이 되겠다는 심정과 각오로 민간의 도움을 호소해야 한다. 정부가 민간의 도움을 청하는 것은 갑의 입장에서가 아니라는 것부터 인식해야 한다. 보조금 찔금 주고 매사를 간섭하고 농락하고 억압하는 시대의 관행부터 거두어야 한다.


2. 분담 가능한 영역들


아직도 국가는 다스리고, 국민은 규제를 받거나 보호(사회권과 자유권으로) 받거나 둘 중에 하나라는 인식을 지우지 못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21세기인데도 20세기 정부로 운영되고 있는 대한민국 국가 관리체제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심각해 보이지도 않는다. 정부의 한계가 분명해 ‘공유정부’의 대안이 시급한데도 정부나 관련분야의 학자들은 손을 놓고 있다.

그 동안 정부가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21세기 공유가 무엇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관리체제의 한계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본다.

첫째, 국가 관료가 갑의 위치에 있어 주권재민(主權在民)이 아니라 주권재관(主權在官)이라는 것. 둘째, 전문성이 태부족한 정부는 법과 제도, 그리고 정책만 잘 만들면 국민의 신뢰를 얻는 줄 착각하는 것, 셋째, 21세기 ICT와 5세대 이동통신 시대에 정부는 공유경제(우버 택시, airbnb, 스타트 업 등)의 흐름을 외면함은 물론 ‘공유정부’는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

현실은 각 부처의 폐쇄성과 불투명성으로는 협업조차 불가능하다. 또한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미루기 때문에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지는 문제를 안고 있다. 합리적 조직은 내 것만 고수하며 능률에 얽매이지 않고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잘했다고 떠들어대는 홍보습관부터 버려야 한다. 정부 조직 간의 협업은 물론 정부와 민간간의 양위가 가능해야 한다.

정부는 공직자의 것이 아니다. 제러미 리프킨이 말하는 소유의 시대가 가고 사용과 접근의 시대가 이미 오고 있는데도 공직자들은 소유에 집착하고 있다. 국회의원이 선거구가 자신의 소유인 양 생각하듯이 정부 관리들도 헤겔이 지적했듯이 자리가 자신의 소유인 양 착각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사물인터넷(IoT), 빅 데이터(Big-data) 등으로 정보교류의 양태가 바뀌면, 국가에서 중심인 정부의 위상은 재고되어야 한다. 정부는 국민과 대등한 위치와 입장에서 정부의 각 부처 간, 정부와 시민 간, 그리고 시민과 시민 간의 정보공유는 필수로서 지금까지의 각 계층 간의 대결구도를 뒤바꾸지 않으면 정부 자체의 존재이유가 반감되는 시대를 맞는다. 공유정부는 정보만 공유하자는 것이 절대 아니다. 공유정부는 냉정하고 냉철하게 정부의 권한과 기능을 보다 유능한 민간에서 위임하는 형태를 말한다.

정부 한계의 보완 내지는 대안으로 제시되는 공유정부는 결코 생소한 개념이 아니다. 앞서 디지털시대 변화를 누누이 설명했다. 이미 현 정부나 민간의 아이디어가 적극적이다.

몇 가지 의견과 입장을 소개한다.
 
(1) 박원순 서울 시장은 2012년 이미 더 나은 ‘공유도시 서울’을 꿈꾸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내 걸고 공유도시 서울 선언했다. 내용은 주차장을 공유하고 세어하우스나 나눔카를 적극 도입하자는 것이다. 공공시설 15만 건 이상을 개방했다. 공유서가는 58개소, 생활공구 도서관은 81개소, 그리고 서울시가 보유한 공공데이터 4000여건을 공개했다. 나눔카는 이미 65만명 이상의 시민이 이용하고 있다.


(2) 윤장현 광주광역시 시청은 로비에 북 카페를 꾸미고 지역특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앞의 둘은 논문이 말하는 공유의 수준이 아니다.


(3) 현 정부가 창조경제만큼 강조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문화융성이다. 위원회가 구성되어 있고 센터도 있다. 그 센터의 운영을 예술의 요람 금호재단에 맡기자는 제안이 있다.xx 예술을 선도하는 이건창호 같은 기업도 좋다. 더 보탠다면 예술의 전당 같은 기관을 문체부 산하에 둘 이유가 없다.


(4) 정부 개입 없이 남북면회소를 여러 곳에 만들어 다른 말 말고 음식 먹으며 잡담만 해도 동질성 회복의 첫 걸음이 될 수 있다는 제안도 있다. xxi


(5) 정부가 사립학교법으로 유수의 대학까지 규제와 간섭을 할 필요가 없다. 대학교육이 살아나는 길 중 하나가 국가로부터의 독립이다. 기업더러 좋은 중ㆍ고등학교 세워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기회를 주자는 의견이 있다(남정욱). 교육을 기존 학교라는 둘레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6) 정부 R & D 사업(2016년 예산, 11조 784억원,)을 기획 초기단계부터 기업에 맡겨야 중복된 투자와 지원을 줄일 수 있다는 의견도 많다.


(7) 신용카드 수수료를 정부가 정한다. 시장에 맡기면 더 잘 할 수 있다. 내년 새로 신설되는 인터넷 은행도 금융위원회의 관치에서 벗어나는 것이 금융개혁이라고 하는 의견도 있다(이진석).


(8) 정부의 신뢰가 바닥에 떨어지니까 민간끼리(p2p) 화폐를 교환하는 비트코인(bitcoin)이나 블록체인을 넘어 신뢰공학(trust engineering)으로 입법, 행정, 사법, 선거 등 중심축이 정부에서 민간으로 옮겨갈 가능성을 예견하는 이가 있다.xxii


(9) 이명박 정부 때 수십억 원을 들여 한식 세계화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지금은 kor-eat 이나 luv.kr처럼 정부 도움 없이 민간이 앞장서서 한식세계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10) 앞으로 국립, 국정, 국영, 국책, 국립 등과 같은 기구는 정리해 민간에게 돌리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다. 그 중 국가대표선수 훈련 프로그램이 좀 걸린다. 그러나 전체주의 시대도 아닌데 국가가 대표선수를 관리하는 것은 전근대적이다. 올림픽을 위해 그 때 그 때 팀을 구성해 준비하면 된다.


정부가 아직도 보모(nanny)인 것이 탈이다. 정부가 모든 것을 다 하는 것이 선이라는 것이다. 한 중견 행정학자는 정부는 부모이고 국민을 자식이라는 20세기적 인식을 아직도 갖고 있다. 공유정부의 시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인식이다.


예산 많이 들여 정부가 앞장서지 않아도 필요에 따라 민간이 정부의 역할을 대신하면 정부는 그 만큼 짐을 덜고 기본적이고 국가의 안위와 미래 설계 등 큰 일에 몰두할 수 있다. 이는 규제철폐의 차원과 또 다른 이야기다.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교육, 문화, 관광, 보건, 금융, 경제 등등 정부의 짐을 덜고 민간에게 도움을 청할 때가 지나고 있다는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서울시 같은 큰 정부기관이 공유의 이름으로 앞장을 서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서울시는 물론 정부는 아직도 정보 공개나 국민 편익을 위한 시설 개방, 그리고 나누어 사용하자는 개념 이상의 인식을 갖고 있지 않다. 더욱이 공유정부가 아닌 공유경제의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문제는 공무원이 단색의 관료주의적 전문성(목표를 정해 놓고 이를 정당화시키는 지식만 동원하는)밖에 없고, 우수한 개체가 관료주의로 하향 동질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공무원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이나 공직자 모두가 공동체에 대한 분명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나’ 개인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둘러싸고 있는, 함께 존재하는 모든 것, 건강을 유지하는 정반대의 미생물들을 대등하게 인식할 수 있는 주체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xxiii


IV. 학문적ㆍ실천적 과제


지금까지 정부개혁은 정부의 규모(큰 정부, 작은 정부) 논쟁이나 규제철폐 등과 같은 기능적 논쟁에 한정되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정부의 위상과 역할이 재검토되어야 할 시점에 과거와 같은 논쟁은 시대착오적이 아닐 수 없다.


기본 틀에서 볼 때 세상이 나아가는 방향이 달라졌다. 사회 시스템이 정부가 힘을 가지고 이끌어나가던 주체에서 이제는 대안이 되는 다양한 힘의 주체가 나타난 것으로 판단된다.xxiv 탈중심이고 탈위상이다. 공유정부만이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는 대안이다.

이제 정부와 정부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기존의 정부가 그저 주어진 존재인가에 대한 의문에서 탐구를 시작했으면 한다. 정부의 존재이유와 가치, 정부의 역할과 기능의 의미, 정부와 국민의 관계 등등에 관한 주제를 놓고 인문사회과학, 응용과학, 융합학문 등 각 분야에서 학문적 논의를 해야 할 여지는 남긴다.


1) 근원적으로는,


-공직자의 신분보장을 재고해야 한다.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한 과제다. 고위직에 있는 공직자들은 높이 올라가고 빨리 올라갈수록 상당수가 정치풍향에 민감하다.  평소엔 책임질 나라 일을 미루다가 승진 때가 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청탁하고 다닌다. 이런 고위직의 신분을 보장할 의무가 국가에는 없다. 또한 이들은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또 알아도 외면한다. 한마디로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실상에서 멀리 있을 뿐이다. 신분보장 철폐만 아니라 기업처럼 정부고위직의 5퍼센트는 매년 퇴직시키자는 의견도 타당성이 있다.


-로봇 행정 시대에 대비해 정부 계급분류를 재구성해야 한다. 9등급으로 나누어진 일반직 공무원의 계급을 줄어야 한다. 기술적이고 기계적인 것은 앞으로 로봇이 맡을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준비를 위해 계급 조정이 시급하다. 더욱이 하급직이 민간을 괴롭히는 경우가 허다해 이 점도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xxiv 대선 때만 되면 큰 약속만 하는 정당은 더 이상 허풍 떨지 말고 공유정부의 정신으로 정부기구의 중추부터 대수술 하겠다고 해야 역사에 죄를 더 짓지 않는다.


-정부 공직자 충원과 훈련 프로그램을 대폭 개편해야 한다. 공채에서 아직도 옛 행정의 패러다임으로 시험을 부과한다. 채용 후 교육훈련 프로그램도 지극히 전 근대적이다. 현 교육프로그램은 겉핥는 추이 변화와 지식과 실무를 익히는 정도이지 국가와 정부, 정부와 국민, 정부와 시장, 미래의 정부 등과 같은 근본적인 연찬과 거리가 멀다. 지난 정부에서 중앙공무원교육원을 프랑스의 행정학교 같은 제도로 바꿀 계획을 세운적이 있다.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는 격이 올라가겠지만, 이런 아이디어 자체도 정부가 맡기에 역부족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중앙공무원교육원이야 말로 어느 대학이나 기업에게 맡기는 것이 옳다.


-앞서 예술의 전당 같은 기구를 정부 산하에 둘 이유가 없다고 했듯이 정부 각 부서는 우선 산하기구 중 하나씩 민간에게 맡기기 시작하는 것이 일의 수순이다. 산하기구의 민간위양만 아니라 부처 자체에서도 손 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를 들면, 교육부가 관여하는 대학 입학시험 실시 시기와 합격자 발표 등 절차를 대학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일 같은 것이 그것이다.  


-부처 별 within/between 공유 프로젝트를 시범적으로 시행한다. 예를 들면 일ㆍ학습 병행제를 실시해 현장에 익숙한 학습을 권장하는 것은 좋으나 이를 고용노동부, 교육부, 산업자원부가 각각 실시한다. 정부는 현안을 관련부처끼리 형식상 협의는 수 없이 하지만 내 영토를 개방하고 서로 돕는 일에 소극적인 것이 당면한 큰 문제이다.
-대학은 행정학 연구와 교육의 한 방향을 공유정부로 해야 한다. 정부의 존재이유와 가치를 새삼 새겨 시대변화에 맞는 행정학 연구와 교육을 시행하여야 한다.


-정부의 규제개혁위원회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차원을 넘어 공유정부위원회를 신설하는 것이 보완책 중 하나다. 다만 정부에 이러한 위원회를 또 증설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는 논문의 취지와 어긋날 수도 있다. 진의는 앞으로 정부가 스스로 변신하되 방식은 정부주도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 대안으로는 정무장관을 임명해 공유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보라! 상원의원 200여석을 줄이는 임무를 맡는 이탈리아의 헌법개혁장관이나 행정조직단순화장관, 아일랜드의 공공지출개혁장관, 일본의 1억총활약담당상 등과 같은 특별 기구를 우리라고 왜 만들지 못하는가.


2) 단기적으로는,
-관과 민의 역할을 분담하는 공유 프로젝트를 개발한다. 정부가 굳이 맡아야 할 필요가 없는 프로그램부터 가려낸다. 예를 들어, 앞서 지적한 문화융성센터를 금호나 이건창호 재단에 위탁하는 것, 정부의 R&D를 굳이 정부가 맡기 보다 정직하고 성실하고 효율적인 기업에 맡겨 전체를 조감하며 결정하는 것 등과 같은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R&D가 정부와 가까이 할 이유가 없는 단적인 예가 있다. 오세정이 한국연구재단을 맡고 있을 때 일화다. 독일 DFG 책임자는 자신은 정부관리를 1년에 3번밖에 만나지 않는다는데 오 교수는 매주 만난다고 했더니 놀라더라는 이야기다.
-‘공유정부’ 캠페인을 벌이기를 제안한다. ‘공유정부 민주선도’(공민선, Democratic Initiatives for Sharing Government, DISG)을 출범시켜 정부와 민간의 관심을 촉구하는 일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미주>>


[i] 로나 골드 저, 안명옥 하윤희 공역, <공유경제>(조윤커뮤니케이션, 2012) 공유경제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84년이다. 하버드대학교의 마틴 와이츠먼 교수가  '공유경제 : 불황을 정복하다'라는 논문을 펴내면서다.


[ii] 이타심에 관해서는 이기심만큼 많은 논의가 있다. 리차드으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널리 회자되지만, 동전의 다른 면에는 이타심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메드 리틀리의 <이타적 유전자>(사이언스 북, 2001)가 그것으로 이타심은 윤리와 연관돼 사회의 질서를 보장하는 희망의 요소로 자리잡는다. 발타자르도 인간을 이기적이고 허영심에 차고 변덕스럽고 사악한 존재로 보았지만, 소중한 사람의 인생을 위한 책으로 평가 받고 있다.(발타자르 그라시안 지음, 두행숙 옮김 <세상을 보는 지혜>( 동지, 1991))


[iii] 요하이 벤클러 지음, 최은창 옮김, 네트워크의 부:  사회적 생산은 시장과 자유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커뮤니케이션북스, 2015). 벤클러의 주장에 관해서는 반론도 만만찮다. 무정부주의라고 하는 사람이 있고,(Nicolas Carr), 공유재의 담론은 파편화되고 황폐화된다고 하는 견해도 있다(Cass Sustein). 웹의 위상구조하고 민주주의, 공평성, 평등주의의 가치 사이에 아무런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고도 한다(Albert-Laszlo Barabasi).  또한 닫혀있는 콘텐츠 저장고에 불과하고 협업이 가능한 개방적 웹은 일순간의 양상으로 끝날 수 있다고도 한다(Tim Berners-Lee). 그럼에도 불구하교 시맨틱 웹(Semantic Web)이나 사물 인터넷(IoT)이 새로운 형태의 협업 방식과 집단지성이 가능한 환경을 제공하리라는 전망도 없지 않다.  


[iv] 벤클러, 앞의 책, 3.


[v] 김민주, “공유자산의 자치적 관리 모델에 대한 비판적 검토:  부산 가덕도 대항마을의 숭어들잉 사례를 중심으로한국행정학보, 49권 제3(2015 가을) 51-77


[vi] 조성준, ‘공공 데이터 더 개방해야 국민이 편해진다.’ 조선일보 2015. 9. 23. A29


[vii] 조선일보 2015. 9. 24 특집 행복한 대한민국을 여는 정부 3.0에 관해 자세한 보도를 했다. 부처 별로 국민생활과 맞닿는 부문들, 예를 들어 법령, 의료, 도로, 영농., 대기 등에 걸쳐 국민생활이 원할  수 있게 인터넷으로 업그레이드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 운영주체는 국민이이며 민주공화국 실현 장치가 정부 3.0’이라고 말하는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의 말을 믿는 국민이 얼마나 될 지 궁금하다. 정부가 어디까지나 갑이고(甲官 )이고 국민이 을인 한(乙民) 민주는 수사일 뿐이다.


[viii] 최보식이 만난 사람, 이기흥 대한체육회 수석부회장의 작심 발언.


이슈는 여러 개이지만,.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진행에 차질이 생기니까 말 안 듣는 체육회를 못살게 구는 사례를 중심으로 조선일보 최보식 기자가 인터뷰 내용이다. 조선일보 2015. 9. 14. A31


[x] 최보식이 만난 사람, 박영아 원장의 작심 발언, 조선일보 2015. 11. 2 A31.연구개발사업을 얼마나 하느냐를 해당 부처의 실적처럼 여긴다. 15개부처에서 18개 연구관리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 기관들끼리 언계나 협조가 잘 될 리 없다. 관리규정도 저마다 다르다. 그러니 부처마다 유사중복 정부사업이 수두룩하다. 앞의 인터뷰에서.


[xi] Ed Park,, ‘Sorry not sorry’ The New Yorker Fall Books October 19, 2015, 87-90


[xii]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와아주밸리, 2014)


[xiii] 한석희 조형식 홍대순, <’인더스트리 4.0>( 페이퍼로드, 2015 )


[xiv] <소유의 종말>을 쓴 제러미 리프킨이 2015. 10. 19애 대전에서 개최된 세계과학기술포럼에서 한 강연에서 주장했다.


[xv] 상징들은 구글 이미지에서 차용한 것이다.


[xvi] 김광명, “공감과소통과 리더십”, 숭실대학교 CR 글로벌 리더십연구소 주최, 2015. 11. 7 발표논문, 4


[xvii]김광웅이 매일경제신문에 시평을 1년 넘어 연재하고 있다. 2015. 9 칼럼의 제목이 청와대가 창조대 되었으면이다. 참고 바란다.


[xviii]정민, 세사상반, 조선일보 2015. 11. 11, A32


[xviv]스티븐 호킹, 전대호 역, <위대한 설계>(까치, 2010)


[xix]신효섭(조선일보 논설위원)이 제안했다. 조선일보 2015. 7. 28 A35


[xx]이호철 소설가 조선일보 2015. 10.


[xxi]김대식,  정부를 필요 없게 만드는 신뢰공학(trust engineering)조선일보 2015. 8. 5 A29


[xxii]이명현 교수가 앞의 계간지 토론회에서 한 말


[xxiii]이영완, 조선일보, 2015. 11. 24, A33


[xxiv]앞으로 2040년 전으로 미국에서는 8천만개, 영국에서는 1500만개의 일자리가 로봇으로 대체된다는 보고가 있다. 로봇이 더 진화해 인지능력까지 갖추면 더 많은 일자리가 자동화될 가능성이 높다. 행정직, 사무직, 생산직이 거의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제3차 기계혁명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로봇 때문에 일자리만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Summary>


Sharing Government:   A Preliminary Debate


Government and its public bureaucracy have been endlessly criticized for ages. It seems that the role of government is at the breaking point.  As ‘sharing economy’ has been recognized as an antithesis against the dominant capitalism for one generation, ‘sharing government’ now draws attentions to those who are interested in the subject of reforming government. Thus far, students of public administration have been enthusiastic into a reform subject in terms of a hard ware of government that concerns the size of government. Now they are much motivated to a reform of software of the government. Among others, a sharing government should be a keen subject over the government opening, transparence, and/or governance.
To some extent, ‘sharing government’ is viewed somehow very new. In other words, although uber taxis, airbnb, start-up, etc. have been popular and activated in the field of economic life, the sharing government seems uneasy to challenge. However, as a shared leadership is worth to debate in the 21st century, the sharing government has to be discussed and clarified to a great extent that we are able to change an undisputable iron cage of government.
In order to overcome the limits of bureaucratism, the paper follows what Yochai Benkler insists in the subject of the Wealth of Networks which is a kind of antithesis against Adam Smith’s the Wealth of Nations. Some themes the paper suggests are decenteizationd, demonopolization, and demarketization as Benkler places an emphasis on a ‘common-based peer production’, located as in 1.5 point intersection area inbetween Gemeinschaft(1, B) and Gesselshaft(2, A)(ref. to the picture). The logics are justifiable in the era of the digital system and the forth industry. In addition, it seems inevitable to think over the issue of what Yuval Noah Harari advises. What he insists is the existing law and institutions are somehow fictitious under the natural law. However, they are now in the phase of transition to the epoch of non-organic entities, under which life and world are being recreated under the law of artificial intelligence.   
It is a right time for us to discuss the subject of sharing government, Being based on the conventional law and institutions, the overwhelming and interruption of the Korea Government over individuals are very odd and serious.  In a word, the serious problem is the fact that ‘sovereignty exists not in the people but in government bureaucracy.
Accordingly, the paper discusses the problems of bureaucracy of the Korea Government and furthermore suggests a probable agenda of government in terms of the levels of sharing between government and market. The paper suggests, for instances, cultural programs, sightseeing businesses, R&D, education and many others of the government programs and projects ought to be conceded to market bodies. 
All in all, the format of the paper is based on the paradigm shift from simple openness of government activities to sharing/division over governance. It is expected that basic perceptions on government should face a revolutionary change. For one instance, The status of high officials of the government is no longer guaranteed. Another practical suggestion of the paper among others is to launch a campaign under the name of the sharing government reason and idea, namely
Democratic Initiatives for Sharing Government (DISG) at the civilian level for the purpose of establishing a base of arduous government refo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