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칼럼] 21세기 위정척사파(衛正斥邪派)

조선일보
  • 박정훈 논설위원
  • 입력 2018.01.19 03:17

    성리학 이상향을 꿈꾼 구한말 위정척사파…
    이념·이상에 집착하고 글로벌 흐름에 역행하는 21세기 좌파를 보며 역사의 반복을 생각한다

    박정훈 논설위원
    박정훈 논설위원

    지금 곳곳에서 빚어지는 국정 혼선을 한 단어로 정리한다면 그것은 '역주행'일 것이다. 국가 운영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시행착오 끝에 세계가 동의하게 된 최소한의 규칙은 있다. 문재인 정부는 그 길과 거꾸로 가겠다 하고 있다. 시장(市場)과 맞서고 기업을 조이며 정부 덩치를 키우겠다고 한다. 돈 벌기보다 쓰기, 파이 키우기보다 나누기, 미래보다 과거를 앞세우고 있다. '이게 나라냐'는 실존적 의문이 터져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진보 좌파가 원래 그렇다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좌파가 반시장·반기업이진 않다. 독일 노동시장을 개혁한 것은 슈뢰더 좌파 정부였다. 영국 노동당은 '제3의 길'을 내걸고 실용 노선을 걸었다. 국익 추구에 관한 한 좌우 구분이 모호해진 것이 현대 정치다. 유럽식 사민주의 정당마저 시장과 경쟁의 가치를 받아들인 지 오래다. 그런 면에서 문재인 정부는 독특하다. 실용주의가 대세인 선진국에선 보기 드문 이념형 정부다.

    한국 좌파의 뿌리를 19세기 위정척사(衛正斥邪)파에서 찾는 시도가 있다.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저서 '한국 사람 만들기'에서 흥미로운 이론을 폈다. 좌파의 기저에 성리학 이상향을 꿈꾼 위정척사 사상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학문적으로 검증된 이론인지 여기서 따질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양쪽 사이엔 놀라운 유사성이 존재한다. 150여 년 간극을 두고 마치 평행 우주가 등장한 듯하다.

    미세먼지에 황사까지 더해진 18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바라본 청와대와 뒷산인 북악산 모습. /연합뉴스
    이를테면 이념 지향이다. 19세기 위정척사파는 정신 우위 관념론이었다. 정신력만 단단하면 외세의 무력도 이길 수 있다고 했다. 21세기 좌파는 이상주의적이다. 현실 논리보다 이념적 가치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위정척사파는 부국강병(富國强兵)을 거부했다. 가난해도 왕도(王道) 정치만 실현되면 족하다 했다. 좌파는 분배를 중시한다. 덜 성장해도 다 함께 잘 사는 게 우선이라고 한다. 위정척사파는 농본(農本) 사회를, 좌파는 노동 중심 세상을 꿈꾼다. 양쪽 다 소박하고 인간적이나 국력 키우기엔 관심이 덜하다.

    위정척사 사상은 쇄국으로 이어졌다. 좌파의 시각 역시 밖보다 안쪽을 향해 있다. 글로벌 컨센서스보다 국내 논리를 우선시한다. 위정척사파는 힘의 국제 정치를 부정했다. 좌파는 미국 주도 질서에 거부감을 보인다. 동맹보다 민족 공동체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위정척사는 반서구·친중론이었다. 좌파 역시 반미·친중에 가깝다.

    위정척사파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돈 버는 장사꾼을 천대했다. 21세기 좌파는 기업 평가가 인색하다. 기업의 국부(國富) 창출 기능을 낮춰 보는 경향이 있다. 위정척사파는 선비 계층의 하향식 계도를 중시했다. 좌파는 정부의 주도적 역할을 선호한다. '큰 정부'가 민간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좌파가 위정척사 사상을 벤치마킹하진 않았을 것이다. 둘을 잇는 역사적 연결 고리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표출되는 특성은 놀랄 정도로 유사하다. 위정척사파는 순수한 우국충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금 좌파가 나라 위하는 마음도 진심일 것이다. 그러나 냉혹한 현실에서 지배층의 순수함은 보상받지 못한다. 도리어 국익에 손해 되는 경우가 잦다.

    조선이 위정척사라면 일본엔 존왕양이(尊王攘夷)파가 있었다. 나라 사정은 달랐지만 목표는 같았다. 서양 오랑캐를 내쫓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걸은 길은 정반대였다. 일본은 나라 문을 열어젖혔다. 외세를 물리치기 위해 외세에서 배우자고 했다. 기막힌 반전이자 그야말로 역발상이었다.

    그 후 존왕양이파는 변신을 거듭하면서 일본의 주류 세력으로 이어졌다. 전후 70년을 지배한 자민당 정권의 뿌리가 존왕양이파다. 그들의 특기는 상식을 뒤엎는 유연성이다. 그토록 '귀축미영(鬼畜米英·가축 같은 미국·영국)'을 외치더니 전쟁에서 지자 주저 없이 친미(親美)로 돌아섰다. 불구대천 원수였던 미국식 질서에 스스로 편입했다. 현대 일본을 만든 또 한 번의 반전이었다.

    지금 아베 정권은 메이지유신(1868)의 후계자임을 자처한다. '트럼프의 푸들'이란 비아냥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글로벌 대세 앞에서 일본은 추종하고 한국은 맞서려 한다. 일본은 신(新)부국강병을 치닫는데 한국은 21세기형 위정척사파가 권력을 잡았다. 새로운 '위정척사 대(對) 존왕양이'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100여 년 전 한국과 일본의 국가 운명을 가른 것은 지배층의 상반된 선택이었다. 또다시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18/201801180297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