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리뷰] [도서] 대한민국이란 무엇인가

    서병훈

    발행일 : 2010.07.03 / Books A13 면

    종이신문보기
    ▲ 종이신문보기
    ◆양승태 지음|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 472쪽|2만7000원

    이 책의 저자 양승태 이화여대 교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정치철학자 중 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대한민국은 더 이상 국가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물론 대한민국은 영토·주권·국민의 세 요소를 모두 갖추었고, 국제법적 인정도 받고 있는 완벽한 국가다. 그러나 양 교수는 대한민국이 과연 국가로 불릴 수 있는지 물음을 던진다. 이런 비관적 조망, 아니 그 적극적 지양을 담은 책이 바로 '대한민국이란 무엇인가'이다.

    양 교수는 일종의 '민족주의자'이다. 그는 한국 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세계관을 잠재적으로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서양문명의 양대 기둥인 헬레니즘·헤브라이즘과 비교해도 그렇다. 단군신화는 곰이 마늘과 쑥만을 먹은 후 인간이 되었다고 설정한다. 낮은 차원의 존재가 고통스러운 자기변혁의 과정을 통해 높은 차원의 존재로 발전한다는 세계관적 통찰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인간을 포함한 만물을 '뚝딱뚝딱 거칠게' 창조한 헤브라이즘의 원류와 선명하게 대조된다. 물론 이것은 위대한 세계관이 되기 위한 단초에 불과하다. 그것을 보편적으로 체계화시키는 것은 현재 우리의 몫이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절망하고 있다.

    왜 그런가? 한국 사회에서 '남·남 분열' '국가정체성의 위기'라는 말이 정치적 유행어가 된 지 오래다. 보수세력과 진보세력 사이의 '편 가르기 싸움'이 지나쳐 국가라는 공동체 자체의 균열을 걱정할 정도이다.

    세종시 문제를 보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이념적 갈등과 거리가 있는 현안인데도 원색적인 지역 이기주의가 횡행하고 있다. 국가적 중대사를 다루는 정치권의 태도나 접근 방식, 공론영역의 논의 수준을 보면, 대한민국이 과연 국가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나라인지조차 의심이 들 정도라는 것이다. 지도층이 공인(公人) 의식은 희박하고 가치나 이념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패거리 다툼만 벌이는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 저급한 욕망만 분출하는 곳에서는 더 이상 국가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 사회의 이런 위기가 '국가정체성의 상실'에서 비롯한다고 진단한다. 정체성의 위기로 인해 정치사회적 갈등과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국가도 '스스로를 규정하는 자기인식, 나아가 스스로가 자신의 존재와 동일시하는 지속적 가치나 이상의 추구'를 통해 규정된다. 이런 정체성이 상실되니까 국가생활의 가치나 목표가 사회적 삶 속에서 체화(體化)되지 못한 채 정신적 방황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국가의 존재 이유와 목표를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 채 저급한 차원의 갈등과 대립을 유발하는 것도 국가정체성이 없는 까닭이다.

    이런 문제의식 아래 양 교수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한 거대한 작업에 착수하고 있다. 그는 우선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정치철학의 중심 명제를 고민한다. 이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체제의 역사적 성격과 한국인이라는 인간집단에 대한 역사 및 정신사적 이해를 꾀한다. 한국인의 삶의 구조 및 정신세계에 대한 존재론적이며 총체적이고 역사적인 성찰을 시도하는 것이다. 나아가 한국인은 어떤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실천적 물음을 제기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민족은 서양문명의 정신적 충복(忠僕) 지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절박한 마음이 저자를 짓누르는 듯하다. 그가 단기(檀紀) 연호의 부활 또는 독자적 연호(年號)의 확립을 역사적 당위로 규정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연호는 국가적 차원에서 형성되는 적극적 시간의식, 즉 역사의식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한민국의 위기에 낙담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적 시련을 통해 위대한 정체성을 새롭게 확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러한 기회가 범상한 수준의 지성적 작업이나 노력으로 쟁취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는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의 위기에 대한 정치·사회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국 학계가 침묵하고 있는 것을 크게 개탄한다. 갈등의 와중에서 중심을 잡는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기보다 오히려 편 가르기에 동조하는 한국 지성계의 총체적 빈곤에 대한 저자의 채찍은 아프기 짝이 없다. 지식인이 얼마나 진실성과 진정성을 가지고 지성 활동에 매달리느냐에 따라 국가정체성의 위기가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자 당부이다.

    이 책은 국가 정체성과 관련된 심리학적·철학적·정치철학적 문제를 모두 해명하려고 노력한다. 한 마디로 지적(知的) 장인의식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동양사회에서 '국가(國家)'나 '대통령'이라는 말의 근원을 문헌학적으로 추적·조사하는 과정을 보면 숨이 막힌다.

    그러나 저자도 인정하듯이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을 연구하는 이 책은 지극히 포괄적이고 복잡하며 방대한 쟁점을 함축한다. 어떻게 다 풀어갈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더구나 이 책은 3부작으로 된 '대한민국 국가정체성 연구'의 제1권에 해당한다. '대한민국 국가정체성의 정신사', 특히 보수와 진보 대립의 정신사적 기원 및 그 전개는 다음 책으로 미루어졌다. 국가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기 위한 이념적 검토와 제도적 장치에 대한 정치철학적 검토는 또 그 다음 책의 과제다. 독자의 인내가 필요하다고나 할까.

    서병훈 숭실대 교수·정치사상
    기고자 : 서병훈
    본문자수 : 2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