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덕수궁에 喪服 입히면 克日이 되나

조선일보

·  김태훈 출판전문기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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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9.03.09 03:10

    '식민 통치의 피해자' 내세우다 자기 연민과 탓에 빠질 수도
    지난 세기 克日 위해 달렸는데 지금은 복수의 감정만 들끓는가

    김태훈 출판전문기자·논설위원김태훈 출판전문기자·논설위원

    3·1절을 맞아 덕수궁 돌담을 천으로 둘러쌌던 '100 만의 국장(國葬)' 지난 5 끝났다. 1919 3 3 일제(日帝)하에서 장례식이 치러진 고종을 우리 손으로 다시 기리기 위한 행사임을 명칭에서 있었다. 상복 입은 덕수궁을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고종이 대한민국 국민에게서 국장의 예를 받아도 되는 건지 납득할 없었다.

    대한제국을 동정하고 미화하는 정서가 우리 안에 있다. '대한제국=일제의 피해자' 인식에서 비롯됐다. 이런 동정심에다 과거사에 대한 분노가 겹치면 나라를 망친 역사의 과오마저 분칠하게 된다. 개봉된 영화 '덕혜옹주' 평생 친일로 일관했던 영친왕을 망명까지 시도한 애국자로 둔갑시켰다. 지난해 방영된 '미스터 션샤인' 구한말의 부패를 그렸다가 '친일 드라마 아니냐?' 비난에 시달렸다.

    맞은 이는 뻗고 자고, 때린 이는 오그리고 자는 세상 이치다. 주변에 해를 끼친 나라가 사실을 자랑하는 경우는 드물다. 때리기도 하고 맞기도 했다면 맞은 사실만 강조한다. 일본이 대표적이다. 아시아 여러 나라를 침략해놓고도 유일한 피폭국임을 내세워 반전·평화 이미지를 선전한다. 피해자로만 기억되기 위해 진실을 숨기기도 한다. 폴란드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협력한 사실이 폭로되자 "폴란드인도 홀로코스트에 책임이 있다" 주장하면 처벌하는 법까지 만들었다.

    가해자가 이런데 '나는 피해자' 주장은 얼마나 떳떳한가.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숨어 있다. 도덕적 우월성을 앞세워 가해자를 비난하느라 정작 자신이 이유를 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이 함정에 빠져 있다. 전부터 ·가을이면 덕수궁 돌담길 주변에서 대한제국 시기 서울의 풍경을 재연하는 정동야행 축제가 열리고 있다. 시절 옷을 입고 과거를 즐기는 프로그램들이 준비된다. 못나고 힘없어 당한 아픔을 곱씹는 코너는 하나도 없다. 작년엔 '일제가 왜곡한 대한제국 정체성을 회복한다' '고종의 ' 만들었다. 왕비를 잃고 남의 나라 공관에 피신한 치욕의 길을 이렇게 미화해도 되는 건가 싶다.

    피해자임을 내세우는 이의 마음엔 자기 연민과 탓이 도사리고 있다. 남이 잘한 본다. 페리의 흑선(黑船) 앞에서 두려워 떨던 일본이 불과 반세기 만에 해양대국으로 거듭나 ·러시아를 거꾸러뜨리고 조선을 집어삼킨 성장 노하우를 외면한다. 도쿠가와 막부를 타도한 메이지 정권이 개혁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메이지 편에 서서 막부를 무너뜨린 무사들이 "이제 우리 세상"이라고 환호하자, 메이지 지도자들은 "정권 차지보다 근대화가 진짜 목표"라며 무사들의 칼과 녹읍을 빼앗고 봉건질서를 해체했다. 유신 최고 권력자 오쿠보 도시미치는 와중에 분노한 무사들 손에 난자당해 죽었다. 같은 시기 조선에선 부패한 정부가 관직을 팔아먹고, 돈으로 벼슬을 이들은 백성의 고혈을 짰다. 나라를 내놓을지언정 특권을 내려놓는 지도층은 드물었다. 이러고도 망하지 않을 없다.

    지난 세기, 우리는 극일(克日) 길을 없이 달렸다.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했고, 필요하면 적과도 기꺼이 협력했다. 3·1운동은 협소한 반일(反日) 넘어 자유·평화·공화를 향한 근대주의 운동이라는 자각이 바탕에 깔려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복수의 감정만 들끓는다. 역사의 피해자라는 자의식에 갇혔기 때문이다. 여기서 빠져나오지 않고선 다음 100년에도 진정한 극일을 기대할 없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08/20190308032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