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개의 제도보다 한 번의 실천이 정의를 이룬다

조선일보
  • 김태훈 기자
  • 입력 2019.04.06 03:00

    '정의의 아이디어'
    정의의 아이디어|아마르티아 센 지음|이규원 옮김|지식의날개|560쪽|3만3000원

    피리는 하나밖에 없는데 그것을 가지려는 사람이 셋이다. 한 사람은 그 피리를 만들었고, 또 한 명은 피리를 가장 잘 불고, 나머지 한 명은 피리를 살 수 없을 만큼 가난하다. 이 중 누가 피리를 소유하는 것이 정의에 부합하는가.

    답은 하나가 아니다. 자유주의자는 만든 사람 소유라 할 것이고, 평등주의자는 가난한 이가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리주의자는 피리의 효용을 가장 높일 수 있는 사람이 소유해야 한다고 믿는다. 아시아에서 배출된 첫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저명한 정치철학자이기도 한 저자는 정치가 어떻게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지 파고든다. 누가 피리를 소유하느냐 여부는 결국 그 사회가 어떤 정의에 가중치를 두느냐는 선택의 문제라고 말한다.

    저자의 이런 견해는 제도를 확립함으로써 최선의 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고 믿어온 전통적 정치철학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는 제도를 통한 정의의 추구보다, 눈앞에 드러난 개별적인 불의의 사례를 개선하려는 실천적 노력을 통해 국가나 사회가 지향하는 정의에 최대한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개별 사안마다 정밀한 토론·숙의가 필요하다고 강 조한다. 세상이 한목소리로 누군가를 지탄할 때에도 나만은 진실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신중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지금, 우리 사회가 열기를 차분히 식히고 곱씹어야 할 통찰도 곳곳에서 빛난다. '최선을 다해도 잘못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정의론은 옹호하기 힘든 허세를 만들어낸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06/201904060003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