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200주년 기념―다윈이 돌아왔다] [14·끝] 진화론과 법

  • 윤진수·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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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4.28 00:04

자손 번영 막는 상속금지법 등 진화 본능 거스르는 법은 실패

진화론은 법과 여러 측면에서 관련을 맺고 있다. 미국에서는 진화론과 창조과학의 대립이 재판에서 여러 번 다루어졌다. 과거에는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는 주도 있었고, 그에 위반하여 처벌받은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형세가 바뀌어 학교에서 창조과학을 가르칠 수 있는가가 문제 되었다. 미국의 몇 개 주에서는 창조과학도 의무적으로 가르치도록 하는 법률을 만들었다. 그러자 진화론자들이 창조과학은 과학이 아니라 종교이므로 이 법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미국 연방대법원은 1987년에 창조과학은 종교에 가까우므로 학교에서 창조과학을 가르칠 것을 강제하는 루이지애나 주법은 위헌이라고 판결하였다. 이는 법이 진화론에 대하여 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 건물. 1987년 미 연방대법원은 학교에서 창조과학을 가르칠 것을 강제하는 루이지애나 주법을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학교 교육을 둘러싼 진화론과 창조 론의 오랜 대립에서 진화론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러면 거꾸로 진화론은 법에 대하여 무슨 메시지를 줄 수 있는가? 이와 관련한 한 가지 주장은 법 자체가 진화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법학자 헨리 메인은 법이 신분으로부터 계약으로 발전한다고 보았고, 근래 일부 법경제학자들은 법이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방향으로 진화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반드시 실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점점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진화론에 기초한 진화심리학은 법의 맥락에서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진화심리학은 현재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인 특성은 진화의 과정에서 환경에 대한 적응도를 높이기 위하여 갖게 된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예를 들면 친족법은 친족(親族) 간에는 사람들이 이타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는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이치가 닿는 주장이다. 즉, 자신과 공통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에게 도움을 주면 그 유전자가 후대에 전해질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이타적 성향이 진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 사람들이 범죄자의 처벌을 요구하는 것에도 진화적인 근거가 있다는 주장이 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이라는 실험을 한다. 이 게임에서는 실험자가 A에게 예컨대 돈 10만원을 주고, 자신이 마음대로 그중 일부를 B에게 주도록 한다.

B는 A가 주는 금액을 거부할 수 있는데, 그러면 A와 B는 모두 한 푼도 받지 못한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A가 B에게 단지 1만원을 주더라도 B가 이를 받는 것이 거부하는 것보다 유리하다. 그러나 여러 문화권에서 실험을 해 봐도 A가 제시하는 돈이 어느 정도 금액, 대략 3만원 미만이면 B는 이를 거부한다.

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행동한다는 합리성의 관점에서는 설명할 수 없고, B로서는 너무 적은 액수는 불공정하다고 생각하여 자신이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A를 처벌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즉,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공동체가 유지되려면 공동체 구성원 상호 간에 서로 돕는 것이 필요한데, 다른 사람의 도움만 받고 자신은 남을 돕지 않으려는 무임승차자 내지 사기꾼에 대하여는 자신이 단기적으로는 손해를 보더라도 처벌해야 한다는 본능이 형성되었고, 이것이 장기적으로는 각 개체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정당화될 수 있는 근거에 대하여는 두 가지 견해가 주장되고 있다. 그 하나는 "처벌이 범죄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합리성에 입각한 설명이고, 다른 하나는 "설령 처벌이 범죄를 예방하지 못하더라도,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응보(應報)적인 관점에서의 설명이다.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최후통첩 게임은 뒤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사형이 살인을 예방하는가와 관계없이 살인자는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본능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법은 언제나 이러한 본능에 따라야 하고, 따라서 살인자는 항상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주장은 사실로부터 규범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는 오류에 속한다.

현대 인간은 과거 인간의 심리가 형성되었던 수렵 채집을 영위하는 소규모 집단에서 사는 것이 아니므로, 과거에 형성된 인간의 본능이 현대 사회에서 항상 인간의 생존에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진화론은 "인간의 진화적 본능을 거스르는 법은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교훈을 준다. 가령 자녀에게 투자하는 것은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릴 수 있는 진화론적으로 좋은 방법이므로 인간의 본성에 내재해 있다.

따라서 자녀에 대한 투자를 막는 법은 실패하기 쉽다. 러시아 혁명 후에 소련 공산당은 상속제도를 폐지하였으나 불과 4년 만에 이를 부활시키지 않을 수 없었고, 제5공화국의 과외금지 조치는 결국 성공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