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길었던 3년 ‘나의 공무원사회 답사기’ [중앙일보]

대중문화

논쟁중인 댓글 (0)

통의동 일기
김광웅 지음, 생각의나무
523쪽, 2만2000원

 『문화유산 답사기』시리즈로 유명한 유홍준 명지대 교수가 문화재청장 시절 가끔 말했다. “퇴임하면 『나의 공무원사회 답사기』를 꼭 써보고 싶다.” 학자이자 저술가로서 ‘체질’이 딴판인 공직사회를 겪어보니 털어놓고 싶은 사연이 꽤 많았던 듯하다. 유 교수의 『공무원사회 답사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대신 김대중 정부에서 초대 중앙인사위원장(장관급)을 지낸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의 『통의동 일기』가 출간됐다. 1999년 5월부터 만 3년간 위원장을 지내면서 매일 아침 전날의 기억을 일기로 쓴 것을 책으로 펴냈다.

김 교수는 “회고록을 쓰면 어떤 이와는 대대로 원수가 된다”는 고 신현확 총리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잘못이 반복되지 않고 조금이라도 개선되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출간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한국의 현실에서는 큰 용기다. 실제로 책 곳곳에 갈등을 빚은 이들의 실명이 등장하고, 실명이 없더라도 당시 정부 직제표와 명단만으로 쉽사리 당사자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들이 수두룩하다. 이런 류의 책이 앞으로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을 위해서 말이다.

2002년 5월 23일 퇴임을 앞두고 인사위원회 직원들과 경복궁에서 함께한 김광웅 교수(왼쪽에서 두번째).
정부 부처간 힘겨루기, 이권 주고받기, 밥그릇 싸움, 국회의 한심한 행태, 장관 허수아비 만들기, 언론과의 갈등에 얽힌 이야기들은 차라리(!) 흥미진진하다. 특히 행정자치부는 ‘권위주의 행정의 상징으로 없어져야 할 구시대 유물 중 으뜸’이라고 성토(?)당한다.

공무원 개방형 임용제가 불만인 산업자원부 총무과장에게 “장관의 리더십이 부족한 탓 아니냐”라고 한 말이 정덕구 산자부장관 귀에 들어가 전화로 대판 언쟁이 벌어진다. 행자부와 어렵게 협의해 중앙인사위 직제를 늘렸더니 돈줄을 쥔 기획예산처가 “자리 6개를 줄이라”며 딴죽을 건다. 새벽같이 예산처에 갔지만 여비서는 출근 전인 장관 집 전화 연결을 꺼리고, 차관은 샤워 중이라며 응대하지 않는다. 이상주 청와대 비서실장이 “개각에 참고할 명단을 좀 달라”고 해서 주었더니 영역을 침범당했다고 느낀 민정비서실이 “명단 제출 경위서를 내라”고 윽박지른다. 감사원은 감사에서 약점을 잡아 자기 직원을 해당부처 산하기관 감사로 보내고, 법제처는 법령 고쳐주고 직원 취직을 알선한다…. 3년 임기 만료가 다가오자 힘이 쭉 빠진 것을 피부로 실감한다. 위원장도 모르게 “인사가 이미 다 되어 있다”. 퇴임 다음날인 2002년 5월24일 쓴 마지막 일기는 “더 이상 정부 인사 이야기는 입밖에도 꺼내지 말아야겠다”로 끝난다.

노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