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3.10.10 01:31 / 수정 2013.10.10 01:32

속속 요직에 … 새 키워드 떠올라
야 "과거 사고방식 머물러 문제"
청 "성장·민주화 거친 경륜 흡수"
"젊은 세대 진취성과 조화 이뤄야"

박근혜정부가 들어선 후 ‘신(新)386’이라는 조어(造語)가 정치권에 등장했다. 1960년대에 태어나 군사정권 시절인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30대를 일컫던 과거의 ‘386세대’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신386은 ‘1930년대에 태어나 60년대에 사회 활동을 시작해 80세를 바라보는 나이의 인사’라는 의미다.

항간에 돌아다니던 말을 민주당이 잡아채서 박근혜정부 비판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주로 ‘과거 회귀’ ‘복고(復古)’와 같은 뜻으로 이 말을 쓰고 있다.


이언주(41) 원내 대변인은 지난 4일 새누리당이 서청원(70) 전 대표를 경기화성갑 보궐선거 후보로 공천하자 “신386의 등장”이라며 “2013년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최정점에 과거의 분들이 있다는 웃지 못할 얘기로, 시대착오적 국정 운영”이라고 주장했다.

 김한길 대표도 지난 7일 “신386·올드보이의 귀환”이라며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과거의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는 인사들이 대통령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실제로 박근혜정부엔 신386의 요건에 해당하는 인사가 여럿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기춘(74)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김 비서실장은 1939년생으로 64년 광주지검에서 검사로 법조계에 입문했다. 88년 검찰총장, 91년 법무장관으로 관직의 전성기를 보낸 뒤 92년 퇴임했다. 2008년 국회의원 생활을 3선째에 마치고 정치 일선에서 빠져 있다가 비서실장으로 복귀했다. 박근혜계 진영에서 ‘어른’으로 대접받는 현경대(74) 민주평통 수석부의장도 비슷한 경우다. 현 부의장은 1965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70년 육군 법무관으로 예편해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신386에 근접하는 인사들도 박근혜정부와 새누리당에 다수 포진하고 있다. 지난 2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의 상임의장에 선임된 홍사덕(70) 전 의원은 43년생으로, 68년 중앙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한 뒤 81년 11대 민한당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데뷔했다. 서청원 화성갑 보선후보는 홍 의장과 동갑으로, 69년 조선일보에서 기자로 일하다 민한당 국회의원(11대)으로 정계에 함께 입성했다.

 남재준(69) 국정원장은 40년대 출생이지만 60년대에 소위로 임관해 출발은 신386 인사들과 비슷하다.

 신386과 386은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다. 386이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진보 세력이었다면 신386은 복귀한 보수 세대다. 거명되는 인사 대부분이 원로급이기도 하다.

 과거 정치권과 관직에서 쟁쟁하게 활동했던 경력을 갖춘 70대 앞에선 황우여(66) 새누리당 대표나 김장수(65) 청와대 안보실장과 같은 60대 중반도 나이로 밀린다.

 역대 정부에선 보통 2선에 후퇴해 있던 원로급 인사들이 전면에 등장한 배경엔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관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 대통령은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을 통해 사람의 욕망과 권력에 대한 집착을 똑똑히 보았다”고 적고 있다. 믿음을 가장 중시하는 박 대통령이라 ‘로열티’를 확인한 인사들은 시대를 뛰어넘어 재기용하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야권은 신386 인사들을 ‘올드보이’로 비판하지만 청와대는 이를 ‘경륜’이라고 받아 치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박근혜정부의 인사는 과거 경제성장과 민주화 과정을 모두 거친 경륜을 흡수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운동권 출신의 386 인사와 비교해선 곤란하다”고 말했다.
김대중정부에서 중앙인사위원장을 지냈던 김광웅(72) 명지전문대 총장도 “옛사람이라 해도 믿음이 가면 안 쓸 이유가 없다”며 “정권 첫해에 장악력을 높이려는 박 대통령의 의도가 반영돼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옛사람을 활용한 적응 기간을 거친 뒤인 내년부터는 측근에 두고 있는 젊은 세대들이 전면에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신386의 등장을 한국 사회의 고령화 추세와 연관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는 12.2%다. 이 비율이 2030년엔 24.3%로 증가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4명 중 1명이 노령층에 속한다는 뜻이다. 4년 후인 2017년에는 65세 이상 고령층이 14세 이하의 유소년 인구를 넘어선다고 한다. 인구 구조의 변화를 반영하려면 정치인의 구성비도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그런 만큼 무조건 나이만 갖고 공세를 취하기보다는 박 대통령이 임용한 인사들이 현재 어떤 행태를 보이고 있는가를 놓고 평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학과 교수는 “오래된 사람들을 재기용하다보니 복고적 냄새가 나는 건 사실이지만 나이가 있어도 젊은 정신과 경험이 있다면 문제될 게 없다”며 “유신 시절에 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을 유신의 잔재라고 몰아세울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민주당의 한 386 의원은 “아무리 당에서 쓰고 있는 말이라고 해도 특정인을 비판하는 것도 아니고 특정집단을 용어로 규정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반면 서울대 사회학과 송호근 교수는 “과거에 익숙하고 신뢰할 수 있는 경륜이 있는 인사들을 등용하는 것과 동시에 젊고 유능한 미래세대의 의욕과 진취성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며 “자칫 구세대 일색의 등용이 지속될 경우 편향성으로 흐를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채병건·강태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