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근 칼럼] 서울대, 자치의 모판을 뒤엎다

[중앙일보] 입력 2014.07.08 00:10 / 수정 2014.07.08 00:10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1975년 봄, 긴급조치 9호가 발령된 추운 봄날 학생들은 광장에 운집했다. 겨울 동안 축적된 민주 열기를 발산하는 자리였다. 대학 건물 옥상에서 카메라가 돌아갔다. 얼굴이 익숙한 친구들이 사복경찰과 뒤엉키는 모습을 목격했다. 카메라에 찍힌 400명 명단이 통보됐다. 당시 한심석 총장은 제적 학생을 백 명으로 줄인 뒤 용퇴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말이다. 궁색했지만 대학은 그렇게라도 민주주의를 살리고자 했다.

 그로부터 40년이나 지난 지금 대학이, 그것도 서울대가 앞장서 민주정신을 훼손하는 모습은 당혹스럽다. 서울대 캠퍼스에는 4·19 기념탑을 비롯해 김세진·박종철 등 민주열사를 기리는 기념비가 도처에 있다. 다른 대학들도 그런 기념비 하나쯤은 세워두었다. 풍요한 시대의 명랑유쾌한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는 공짜가 아니라는 교훈을 새겨주기 위함이다. 그런데 서울대 총장단과 이사회가 민주주의의 요체인 공공성을 간단히 버렸다. 국가와 대학을 막론하고 공공성이 가장 첨예하게 작동해야 할 리더의 선출 과정에서다.

 서울대는 이번 봄 총장선거를 석 달간 치렀다. 국립대학 중 최초로 법인화 실험을 완료한 서울대는 총장 선출을 간선제로 과감하게 전환했다. 법인화는 정부 간섭에서 벗어나 지적 자치공동체를 구축하는 환경이고, 세계적 대학을 갖고 싶은 국민적 여망에 부응하는 조치였다. 그러기에 이사회에 최종 권한을 부여해도 자치의 정신과 공공성에 입각한 총장 결정이 이뤄지리라 믿었다. 학내·외 인사들이 많은 시간을 들여 중지(衆志)를 모았고, 이사회에 올릴 최종 후보 3인을 결정했다. 그런데 이사회의 낙점은 엉뚱했다. 총장추천위원회의 다면평가와 교직원들의 종합평가에서 최고점을 얻은 1등 후보가 아무런 설명 없이 밀려나고 2등 후보가 낙점을 받았다. 황당한 일이었다.

 그동안 서울대 총장 지명에서 순위를 뒤집은 사례가 한 번도 없었다. 그 전통이 팽개쳐졌고 왜 2등 후보자에게 표를 몰아줬는지 아무런 해명이 없었다. 공중의 중지를 모으는 것이 공공성이고, 그것을 수호하는 기관이 대학이다. 국민은 대학이 그 길목을 제대로 지키는지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한다. 교수 평의원회가 해명요청서를 보냈으나 이사장을 겸직한 총장의 답은 여전히 ‘의견 수합 중’이었다. 낙점을 찍은 지 보름이 넘도록 묵묵부답이라면 결국 개별 취향과 타산에 따라 원샷 무기명 투표로 끝냈다는 뜻이다. 이 투표 행위에 국립대의 주인인 국민의 감시 시선이 실렸을까.

 이사회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최종 3인을 동등하게 고려한다’는 서울대 이사회의 정관에 비춰 순위 번복이 사상 초유라도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말이다. 그런데 교수사회에 분노가 들끓는다. 단과대학들이 연달아 성명서를 발표했고, 요 며칠 시행된 교수협의회 설문조사에 1000명 교수가 응답했다. 75%가 ‘정당성 결여’에 도장을 찍었다. 서울대 법인화 실험은 타 국립대의 전범이 될 예정이다. 교직원이 의견을 모은들 이사회가 비트는 구조에서 공공성의 인큐베이터, 자치의 모판은 짓밟히고 낙점 권한을 멋지게 행사한 이사회와 총장은 입을 닫았다. 대학의 민주정신을 휴지통에 처박고 침묵한다고?

 법인화 법은 교직원의 중지를 존중하도록 총장단 3명을 이사회 임원으로 선임하도록 했다. 그런데 총장단이 공론을 대변하고자 애쓴 흔적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후보 3인에 대한 ‘공평대우원칙’을 강조했는데 다른 임원들이 항변하기도 어색했을 것이다. 왜 그랬을까? 괴상망측한 입소문이 난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권력 핵심부의 개입, 총장단과 정부 파견 임원들의 담합, 아니면 무엇? 이런 악성 루머들은 신임 총장의 입지를 난처하게 만들고 자치를 가동하는 협치정신을 망가뜨린다.

 13세기부터 지금껏 존속해온 두 개의 제도가 대학과 교회다. 인류사회의 혼탁함을 정련해온 정화장치를 내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리더십의 선출이 공공성의 사활을 가름한다면, 이번 사태로 이사회와 총장단은 지적 자치공동체의 뇌관을 망친 셈이 된다. 더욱이 대학의 지배구조가 이사회-총장단으로 연결된 단단한 권력위계로 재편되고, 평교수들도 여기에 편입되면 공공성을 지킬 대학의 존재이유는 소멸된다. 리더가 될 만한 재목들이 이사회와 총장의 눈치를 보는 공간에서 ‘반역하는 지성’은 박물관에 안치되고, 권력을 향해 줄 서는 조직에서 창의적인 공동체는 고사한다. 민주주의의 타락을 질정해야 할 서울대가 스스로 정치화되었음을 만천하에 고했다. 캠퍼스에서 터져 나오는 탄식 소리는 한국 최고 대학 서울대의 미래에 대한 국민적 우려로 확산될 것이다. 서울대 총장단과 이사회는 도대체 무슨 일을 했는가?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