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와 여우

[조인스 블로그] 입력 2012-01-06

20세기 대표적 사상가인 ‘이사야 벌린’은 인간을 고슴도치와 여우 두 가지 타입으로 분류했다. 고슴도치 타입이 일관된 체계 속에서 사고를 한다면 여우는 모순이 되더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사고를 추구하는 타입이다. 우리 말에도 한 우물을 파라는 얘기가 있듯이 언뜻 생각하면 고슴도치처럼 우직하고 단순한 목표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게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 인생에서 마주치게 될 무수한 변화를 인정하고 여우처럼 창조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여우의 선택은 인생을 다양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여우와 같이 다양한 삶을 살았던 대표적 인물이 슈바이처 박사다. 슈바이처 박사는 1875년 독일의 알사스 지방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성서와 철학을 공부한 뒤 목사가 되었다. 그후 모교 스트라스부르 대학의 성서학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성서학자로서 연구실적도 뛰어나 ‘역사적 예수의 탐구',‘문학과 철학’ 등 여러 저서를 남기기도 했다. 한편 그는 파리의 바흐 협회 설립에 협력하여 그곳의 오르간 연주자로 일하고 ‘음악가 요한 세바스찬 바하’,‘바하의 오르간 작품집’을 펴낸 음악가이기도 하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슈바이처는 아프리카 흑인들의 생활에 대해서 쓴 글을 읽고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흑인들을 구제하는 일에 헌신할 것을 결심한다. 그는 의술을 배우기 위해 어릴 때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파이프오르간 연주로 학비를 벌면서 뒤늦게 의학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1905년 마침내 의학국가시험에 합격해 의사가 되었다.

슈바이처는 청년 때의 결심 즉 30세까지는 학문과 예술 속에서 살고 그 후부터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이웃을 돕기로 하고 뜻을 같이 하는 부인과 함께 1913년 아프리카로 떠났다. 그러나 병원의 운영은 처음부터 순조롭지 못했다. 자금이 모자라 병원운영이 어렵게 되자 그는 기금을 모집하기 위해 유럽으로 돌아 왔다. 그런데 그때는 세계대전이 발발한 직후였으므로 독일 첩보원으로 오해를 받아 수용소에 갇혔다. 이듬해 가까스로 수용소에서 풀려 난 그는 6년간 모금운동을 벌인후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갔다. 그리고 병원을 다시 짓고 의료 활동을 재개하게 된다.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 그곳 병원에서 오르간을 가끔 치기도 했다. 조율을 할 사람이 없어 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었다고 한다. 특히 그곳에서 봉사를 하고 있는 동료 의료진, 간호원 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청량제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검소한 생활을 했는지 넥타이가 단 한 개밖에 없었다. 그의 친구가 ‘나도 자네처럼 검소한 생활을 좋아하지만 넥타이는 서너개쯤 갖고 있다네.’ 하자 그는 ‘목 하나에 왜 넥타이가 서너개 필요한 가?’ 하고 반문했다고 한다. 차츰 아프리카 흑인의 성인으로 존경을 받기 시작한 그는 1951년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회원이 되었고 위대한 박애정신이 인정되어 드디어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된다.

우리나라에도 슈바이처 박사와 같은 인물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영등포의 슈바이처라고 불렀다. 바로 노숙자와 같이 의료혜택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요셉의원을 설립한 고 선우경식 원장이다. 그는 가톨릭의대를 거쳐 미국유학을 다녀 온 후 모 사립대학 병원의 내과 과장으로 일했다. 그러다가 신림동 철거민을 위하여 의료봉사를 한 것을 계기로 잘 나가는 자리를 박차고 스스로 낮은 곳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1987년 무료자선병원인 요셉의원을 설립한다.

지금까지 수십만 명의 영세민 환자와 노숙자, 외국인 근로자가 이 병원을 거쳐 갔다고 한다. 선우 원장은 결혼도 하지 않았다. 1961년 선친이 물려 준 작은 집에서 노모를 모시고 살았으며 생활은 미국에 있는 형제들의 도움을 받았다. 형제들은 미국으로 건너오라 했지만 그는 이를 거부하고 병원 운영에 전력을 다 했다. 선우 원장은 그의 박애정신을 인정받아 2003년 호암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환자들만 살폈지 자기 자신의 몸은 돌보지 못해 위암에 걸린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손을 쓰기에는 늦어서 안타깝게 63세를 일기로 강남성모병원에서 운명하였다. 슈바이처 박사가 여우와 같이 다양한 삶을 살았다면 선우경식 원장은 고슴도치와 같이 한 우물을 판 인생을 살았던 셈이다. 여우와 같은 삶을 살던 고슴도치와 같은 삶을 살던 두 분의 삶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

이사야 벌린은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가 고슴도치 타입인지 여우 타입인지를 알기위해 그의 저서 '전쟁과 평화'를 통해 살펴 보았다. 톨스토이는 고슴도치 타입으로 살기를 원했지만 본질적으로 여우 타입의 인간이었음을 발견한다. 이사야 벌린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고슴도치와 여우 타입의 조화를 추구하며 삶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한다.

살다보면 톨스토이와 같이 고슴도치 타입으로 살기를 원하지만 여우 처럼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여우 처럼 살아가기를 원하지만 고슴도치 처럼 살아가는 사람도 있으리라. 나는 고슴도치 타입인가? 여우 타입인가? 아니면 벌린이 강조했던 두 가지의 조화를 이루면서 살었던 타입인가? 어떤 시기에는 고슴도치 타입으로 살아온 것 같고 또 어떤 시기엔 여우 타입으로 살아온 것 같다. 나 역시 톨스토이 처럼 고슴도치 타입으로 살기를 원했지만 본질적으론 여우 타입의 인간이였기 때문일까?

여우.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