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홈페이지를 개설하며
  2. 나에 대하여
  3. 참여와 활동
  4. 알립니다






로그인은 홈페이지 관리를 위한 것이고
회원가입은 받지 않으니 양해 바랍니다

나에 대하여
 

열린정부 국정 새틀짜기』(나남출판, 2000)
1940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교육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법학사, 1962)과 동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 1965), 그리고 미국 하와이 대학교 대학원(정치학 박사, 1971)에서 공부하였다.

1972년부터 현재까지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교수로 봉직하고 있으며, 연구는 주로 한국의 관료제와 민주정치에 관해 일관했다. 최근에는 신과학주의(new scientism)에 입각한 포스트 칼테지안-뉴터니안 패러다임을 응용하면서 정부의 구조개혁과 국정운영의 새틀짜기를 양자 패러다임(quantum paradigm)에 입각하여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학문적 연찬의 폭 때문이다.

대학원 원장, 한국행정학회 회장, 한국정책학회 회장 등을 맡는 한편, 학외의 활동으로 주로 정부의 자문역은 극히 제한적으로 수행하였고, 주제는 항상 행정개혁에 관한 것이었다. 정부개혁에 참여하면서도 비판적 평론을 서슴지 않아 그의 생활세계에는 항상 자유와 정의, 그리고 형평에 관한 쉼없는 고뇌와 연민이 자리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피할 수 없는 산물로 1999년에 해람한 대통령직속 중앙인사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문화 초대석 2006.08.03 (www.munhwa.com)


김광웅 서울대 교수에게 ‘소통’은 영원한 화두다.

그의 거침없음은 소통을 중시하는 그의 소신에서 비롯된다. ‘알아야 할 것은 반드시 알려야 한다’는 지론을 가진 그는, 다른 사람이라면 “말할 사안이 아니다”며 손사래를 칠 만한 사안에서도 가만 있지 않는다. 모두가 숨죽이고 있더라도 반드시 입을 연다. 소통을 위해서다.

“정부 인사에 혈연·지연·학연 등이 혈전처럼 끼어 부처업무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면서 중앙인사위원장 자리를 버리고 나오며 던진 김 교수의 비판이 당시 공무원 사회를 발칵 뒤엎었던 것도 김 교수 특유의 소통 의지가 발현된 결과다.

지난 2002년 11월 한 세미나에서 김 교수는 “관료들이 전문성 없는 명망가들을 꼭두각시 위원으로 앉혀놓고 뒤에 숨어서 조직개편을 좌지우지한다”며 정부 조직개편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는 참여정부 출범 이후의 위인설관(爲人設官), 옥상옥(屋上屋) 논란을 통해 그대로 ‘적중’했다. 중앙인사위원장 시절 고위 공직을 외부에서 충원하는 개방형 임용제를 도입해 정부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을 들었다.

서울 출생인 김 교수는 서울대 법대와 같은 학교 행정대학원을 졸업한 후 지난 71년 미국 하와이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이후 72년부터 현재까지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로 일하고 있다.

정년을 앞둔 그는 “책이 너무 많아 연구실을 찾는 사람마다 불평한다”며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우선 1000권 가량을 기증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2002.05.23 (www.joins.com)


그는 '뻐꾸기 시계' 같은 사람이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와 중앙인사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주기적으로 입을 열어 우리 행정 조직의 현주소를 알려왔다. 때론 그 표현 방식이 너무나 거침 없어서 논란의 대상이 됐다. 그는 교수 시절 "서울대의 결정은 교수나 학생이 아닌 관료가 내린다" "서울대라도 개혁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주장하는 등 끊임없이 대학본부를 비판했다.

중앙인사위원장이 돼서도 지난해 "개혁주체나 힘있는 기관이 자기의 논리만 일방적으로 강요해서는 안되며 자기부터 반성한 뒤 남에게 개혁에 동참하도록 해야 한다"고 집권층의 자기성찰을 요구했다. 그가 이임사에서 편 '혈전론(血栓論)'은 화제가 됐다. "정곡을 찔렀다"는 견해에서 "떠나면서 그럴 수 있느냐"는 시각까지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그는 평소에도 "지식인의 행동양식은 비판에서 출발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이임사를 하면서는 "나는 (중앙인사위원회에) 몸 담고 있을 때도 비판을 했지만 교수로 돌아간 뒤에도 비판할 것은 계속 할 것이다. 내가 정부에 있으면서 느낀 점을 매일 기록한 일기를 먼저 책으로 펴낼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인사위 관계자는 "개혁을 추진하는 그의 열정이 30년 동안 변할 일을 3년 만에 바꿨다"고 그를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