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집단지성 화두, 일상의 역발상

[중앙일보] 입력 2013.02.28 00:51 / 수정 2013.02.28 01:38

현재의 교육시스템 의심해
스스로 배우는 능력 강조한
‘구름 속 학교’ 최고 영예

TED(Technology·Entertainment·Design의 머리글자) 홈페이지에 등록된 1400여 개의 동영상 가운데 “교육이 창의성을 말살한다”는 교육학자 켄 로빈슨의 강연은 단연 백미다. 전 세계에서 1500만 명이 봤다. [중앙경제 2월 26일자 4면]

 미국 캘리포니아의 롱비치 행위예술센터에서 2006년 이 강연을 했던 로빈슨이 26일(현지시간) 다시 같은 자리에 섰다. 올해의 ‘TED프라이즈’ 수상자 발표를 위해서다. TED에서 내놓은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을 돕기 위해 주는 이 상은 올해부터 상금이 1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로 늘었다.

자율교육의 기적 … 빈민가에 컴퓨터 놔뒀더니 아이들 스스로 검색 ‘TED프라이즈’를 받은 인도 교육학자 수가타 미트라(61) 박사는 빈민가 아이들이 컴퓨터를 익힌 과정을 들려주며 “교육의 근본은 스스로 배우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TED, 제임스 덩컨 데이비슨]

 “크리스(TED 큐레이터인 크리스 앤더슨)가 며칠 전 전화했다. 올해 TED프라이즈는 교육자가 받는다고. 혹시 내가 받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나보고 상을 주라고 하더라(웃음). 미래의 교육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를 과감하게 상상한, 수가타 미트라 박사의 ‘구름 속 학교(the School in the Cloud)’가 주인공이다.”

 미트라 박사가 연단에 올라서자 박수가 쏟아졌다. 그는 2010년 영국 옥스퍼드에서 열린 TED글로벌 행사 때 ‘자기주도학습’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고, 이후 『벽에 낸 구멍 너머엔(Beyond the hole in the wall)』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100만 달러의 상금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를 설명하겠다”며 현재의 교육 시스템에 ‘돌직구’를 날렸다.

예술에 치명적인 손 떨림, 그 떨리는 선 모아 새로운 아트 창조하다 손가락 신경이 손상된 미국 멀티미디어 예술가 필 한센(34)은 직선을 그을 수 없을 정도의 손 떨림 증세를 자신만의 예술 세계로 승화시킨 과정을 TED에서 공개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사진 TED, 제임스 덩컨 데이비슨]

 “지금의 교육 시스템은 300년 전 대영제국 시대에 만들진 것이다.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영국이 고안한 게 ‘인간 컴퓨터’다. 쓰고, 읽고, 계산이 가능한 관료들을 양성해 전 세계에 보내기 위해 학교를 세운 것이다. 이런 능력은 컴퓨터가 나온 이후 쓸모가 없어졌다. 교육 시스템이 무너졌다고들 하는데 아니다. 공고하다. 단지 지금의 교육 시스템은 더 이상 필요 없을 뿐이다. 미래에 어떤 기술이 나올지 모르는데 어떤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나. 교육의 근본은 무엇이든 스스로 배울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양·소 떼 지키려고 만든 ‘사자 쫓는 광선’ … 케냐 전국으로 퍼지다 케냐 나이로비에서 온 리차드 투레레(13)가 어떻게 ‘사자를 쫓는 광선(lion lights)’을 발명하게 됐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TED, 제임스 덩컨 데이비슨]

 자기주도학습에 대한 미트라 박사의 확신은 경험에서 나왔다. 1999년 그는 인도 델리 빈민가의 한 건물 벽에 구멍을 뚫고 컴퓨터를 내놨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가지고 놀 수 있도록 했다. 컴퓨터의 쓰임새도 모르던 아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인터넷 검색을 하고 있었다. 비슷한 경험은 컴퓨터를 평생 못 본 인도의 시골 마을에서도 일어났다. 영어도 모르던 아이들은 몇 개월 후 다시 찾은 미트라 박사에게 “게임을 하려면 좀 더 빠른 프로세스랑 좋은 마우스가 필요해요”라고 말했다. 자기들끼리 영어와 컴퓨터를 가르치고 배웠다.

 미트라 박사는 “아이들은 자기조직학습환경(SOLE)만 만들어주면 스스로 배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TED프라이즈 상금으로 ‘클라우드 학교’를 만들 계획이다. 인도에 세워질 이 학교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배우고, 전 세계의 자원봉사 교사들이 인터넷으로 멘토 역할을 한다. 미트라 박사가 발표를 마치자 홈페이지 디자인을 해 주겠다는 디자인컨설팅 업체 IDEO의 직원부터, 클라우드 플랫폼을 제공하겠다는 인터넷 기업 대표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돕겠다고 손을 들었다. 집단지성의 힘으로 상상력이 현실로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미트라 박사는 이렇게 수상 소감을 마무리했다. “내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고민할 때 한 소녀가 말해 줬어요. ‘그냥 일단 시작하세요’라고.”

고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