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은 결국 ‘사람’일세 경계 없는 지식의 탐구를 즐기는

장대익 교수가 열어본 다윈의 21세기 서재-에드워드 윌슨의 『통섭』

| 제105호 | 20090314 입력
2-2. 다윈, 윌슨과 ‘통섭’을 이야기하다
얼그레이의 향은 부드러웠다. 차를 다 마신 다윈과 윌슨은 이야기를 다시 이어갔다. 다윈은 서가에서 『통섭』을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윌슨= 역시 좋은 차는 정신을 맑게 하네요. 그런데 선생님, ‘통섭’에 대한 비판자들 중에서 “지식의 통합은 이미 실패한 기획”이라고 선언하는 이가 많습니다. 그저 책상머리에만 앉아 있으면서 말이죠. 하지만 저는 계몽주의가 끝났다고 보지 않아요. 현대 과학기술은 계몽주의의 유통기한을 큰 폭으로 연장시켰습니다.

다윈= 나도 요즘 지식 융합의 흐름을 곳곳에서 새롭게 감지하고 있다네. 로봇공학자가 심리학자·철학자·인류학자와 ‘인간다움’에 대해 토론하고 있더군. 인간을 닮은 로봇을 만들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며. 그 자리에 ‘언어학의 신’이라는 노엄 촘스키 양반도 끼어 있어 깜짝 놀란 적이 있었네. 뇌과학 분야는 또 어떤가? 거긴 지금 난리가 났네. 인간의 행동이 뇌의 작용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법학자와 윤리학자들을 바쁘게 만들고 있지. 이젠 사이코패스의 엽기 행각들을 뇌과학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왠지 뭐가 빠진 것 같지 않던가?

윌슨= 심리학과 경제학의 통섭은 한창입니다. ‘제한된 합리성’을 제창한 허버트 사이먼과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인지 편향’을 연구한 대니얼 카너먼은 심리학자면서도 노벨 경제학상을 받지 않았습니까? 인간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경제학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대세예요. 최근 베스트셀러 경제·경영서들은 죄다 이런 통섭적 연구를 쉽게 풀어 쓴 것들이지요.

연구뿐만이 아닙니다. 조직과 학제를 통섭적으로 재편하려는 움직임도 두드러지는데, 인문과 자연을 넘나드는 강의를 개발하거나 아예 ‘통섭 학부’를 만들려는 대학도 늘고 있습니다. 통섭 개념을 재빠르게 접수한 산업계에서는 ‘통섭 상품’ ‘통섭 마케팅’ 같은 용어들을 아무렇지 않게 씁니다.

다윈= 다 좋긴 한데, 뭔가 중요한 게 빠진 것 같은 느낌이오. 정작 통섭의 ‘방법’과 ‘주체’에 관한 얘기가 없거든. 요즘 보면 마치 조직을 통폐합해 사람들을 한데 섞어 놓기만 하면 통섭이 저절로 생겨나는 줄 착각하는 것 같아. 통섭이 대세니까 그냥 섞어 보자는 식이지. 하지만 이런 발상은 오히려 기존 조직 당사자들의 텃세 의식만 자극하기 쉽지. 또 ‘정치적’인 결정에 의해 이상한 괴물 조직이 탄생하기도 하고.

윌슨= 그럼 선생님은 통섭의 비법 같은 것이라도 갖고 계신가요?

다윈= 글쎄, 비법이랄 수는 없고 우선 질문부터 공유해야 하지 않을까? 가령 우리가 ‘소통’에 관심이 있다고 해 보자고. 인간 세계에만 커뮤니케이션이 있는 것은 아니지. 동물의 의사소통, 컴퓨터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 심지어 인류가 외계 지성체에게 말을 걸려고 매일 우주에 전파를 쏘고 있지 않은가? 세포 간의 소통에 문제가 생기면 그게 바로 암이지. 이렇게 소통의 본질을 탐구하려면 세포학자·동물행동학자·심리학자·언어학자, 심지어 천문학자도 동참해야 할 걸세. 그런 다음 각 수준에서 벌어지는 소통의 메커니즘과 패턴을 비교해 보면 아주 재미있는 통섭이 될 것 같지 않은가?

윌슨= 말하자면 ‘분과’ 중심이 아니라 ‘주제’ 중심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다윈= 바로 그걸세. 현재 통용되는 지식의 구획들이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지 않은가? 좀 더 효율적으로 연구하자고 ‘인공적인’ 칸막이를 쳐 본 것인데, 세월이 지나면서 그게 본질적인 구분처럼 변질됐어. 물론 각 칸막이 안에서만 통하는 질문도 있을 걸세. 하지만 중요한 질문들은 대개 경계를 넘나들지. 자네가 『통섭』에서 해 본 것이 그런 것이지 않나?

윌슨= 맞습니다. 제 책에서 논의했듯이 ‘아름다움’이라는 주제를 던져놓고 통섭적으로 접근해 보면 심리학과 뇌과학의 최근 성과들이 논의될 수밖에 없어요. 그것은 미학과 예술 영역에서만 독점할 주제는 아니거든요. 주제나 질문 중심으로 여러 분야가 만나다 보면 이해의 지평도 넓어지고 창조적인 대답들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다윈= 내 얘길 해서 좀 안됐지만, 자연선택 이론은 라이엘의 지질학, 맬서스의 정치경제학, 그리고 이름 모를 이들의 육종학에서 힌트를 얻어 탄생시킨 창조물일세. 자네가 온갖 분야를 총동원해 ‘통섭’을 탄생시켰듯이 말이야. 그런데 자네도 알다시피 통섭에 이르는 길은 어렵고 험난하지 않은가. 지루하기까지 하고. 내가 지질학자에서 생물학자로 거듭나기 위해 한 짓을 생각해 보게나. 미물인 따개비에 장장 8년간이나 매달리지 않았는가? 지금 하라고 하면 아마 더는 못할 걸세.

윌슨= 하지만 그게 다 『종의 기원』출간을 위한 산고(産苦)였지 않습니까? 사실, ‘통섭’이 화두가 되니까 너도 나도 ‘구호’로만 외치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통섭은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거든요. 때로는 지루하고 고통스럽기까지 하죠.

다윈= 통섭은 결국 ‘사람’이기도 하지. 과학적 마인드로 무장하되 인문적 소양을 갖춘 잡종들 말일세. 흔히 통섭은 어느 기관이나 제도가 해 주는 것이라 착각하는데, 결국 그것은 공통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경계 없는 탐구를 즐기는 사람들의 몫이야.
윌슨= 그렇습니다. 이왕 시작된 ‘통섭’의 바람이 유행이나 말잔치로만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윈= 어쨌든 축하하네. ‘융합’ ‘통합’ ‘디지로그’ ‘컨버전스’ ‘하이브리드’ ‘크로스오버’ ‘퓨전’ ‘노마드’처럼 비슷비슷한 용어도 많은데 그중에서 자네의 ‘통섭’이 제일 인기야. 지난번에 같이 채팅했던 도킨스의 말로 하면, ‘통섭’이 가장 성공적인 ‘밈(meme)’일세 그려. 하지만 오늘 자네 말을 듣고 보니 이젠 ‘통섭 2.0’ 같은 것을 고민해야 할 시점인 것 같아.

윌슨= 네, 맞습니다. ‘융합 2.0’ ‘디지로그 2.0’은 아니죠. 유사품에 주의하세요! 하하하.


*이 글은 『통섭』의 공동 역자인 필자가 2년 전 에드워드 윌슨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나 나눴던 대화를 재구성해 쓴 것임.



KAIST 졸. 서울대에서 진화론의 역사와 철학 연구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덕여대에서 자연과 인문의 공생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