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중의 생로병사] 약발과 의술로 가는 100세 長壽

입력 : 2011.08.01 23:25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심장병 환자는 늘지만 조기 발견으로 사망률 줄어
만성질환 생기는 중년들 조기 약물 치료로 건강 챙겨
90대에 인공관절 수술받고 보톡스와 모발이식
임플란트로 무장한 ‘젊은 장수’ 사회 출현

수명은 갈수록 길어지고, 출산율은 여전히 밑바닥 수준이다. 분모는 작아지고 분자만 커지는 '가분수' 꼴이 우리 사회 미래 인구상(像)이다. 삶에 지친 고령계층과 활력 없는 환자가 갈수록 늘어나면 "소는 누가 키울지…" 하는 걱정이 쏟아진다.

하지만 의학적 견지에서 보면 그런 사회학적 전망의 절반은 틀렸다. 의학과 약학의 힘으로 '몸 나이'를 늦춘 '신(新)인류'의 등장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약발과 의술로 건강을 오래 유지하는 '젊은 장수(長壽) 계층'과 '활력 환자'층이 늘어나는 것이다.

질병 통계에서 서구 선진국과 우리나라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심장병 발생률은 늘지만, 사망률은 감소한다는 점이다. 즉, 심장병 환자가 많이 생기지만, 경증(輕症) 단계에서 조기발견되거나 중증(重症)이더라도 치료가 잘된다는 얘기다.

심장병의 대부분은 심장 근육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동맥경화로 좁아지거나 막힌 탓이다. 그것의 주범은 '나쁜 콜레스테롤(LDL)'의 상승이다. 이를 낮추는 것이 '스타틴'이라는 성분의 약제다. 이 약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악성 심장병'으로 인한 희생이 대폭 줄고 있다. 비만인구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스타틴'을 충치 예방용 불소처럼 수돗물에 타자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관상동맥 협착 발견도 쉬워졌다. CT(컴퓨터단층촬영) 검사대에 5분만 누워 있으면 관상동맥이 3D 영화처럼 그려진다. 예전 같으면 하루 정도 입원해서 혈관조영술을 받아야 했을 일이다. 거기서 좁아진 관상동맥이 관찰되면 간편한 시술로 그 부위를 넓혀주는 '스텐트'(금속그물망)를 넣는다. 현재 장년층 이상에서 수백만 명이 심장에 스텐트 한두 개를 품고 살아간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대다수가 '스텐트' 시술 이후 적극적인 건강관리층으로 바뀌면서, 그 이전보다 더 건강하게 살아간다는 점이다. 암에서 완치된 환자들이 건강검진을 더 철저히 받고, 사고사(事故死) 단계에서 극적으로 살아난 사람들이 여생을 더 진지하게 보내듯 말이다.

일러스트=정인성 기자 1008is@chosun.com
고혈압과 정상혈압, 당뇨병 혈당과 정상혈당 기준 사이에는 이도 저도 아닌 '준(準)환자' '반(半)정상'들이 무수히 있다. 대개 만성질환이 생기기 시작하는 중년들이다. 그 '낀 계층'에게 최근에는 조기 약물치료가 시도되고 있다. 그러면 '진성(眞性) 환자'로 넘어가는 수가 적어진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두고 일반인을 환자 취급해서 의약품 시장을 늘리려는 거대 제약회사의 음모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실제로 조기 약물 투여 그룹을 추적 조사해보니 비용 대비 효과가 더 좋았다. 물론 그들에게 정기적인 운동과 적절한 식이요법이 정답이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당장 타오르기 시작한 불씨부터 끄자는 전략은 일상에 바쁜 현대인에게 앞으로 더 활성화될 것이다. 그 약효로 고혈압·당뇨병 합병증 발생이 노년기 후반으로 늦춰지는 상황이 기대된다.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 대다수의 40대들에게는 정기적인 약 복용이 건강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는 효과도 낸다.

국내에서 인공관절 수술은 무릎과 엉덩이 관절 등에서 한 해 약 10만건이 이뤄진다. 과거 같으면 이들은 집에 눌러앉아 주변의 간호를 받고 지내야 할 처지였다. 하지만 이제 관절을 갈아 끼우고는 근력을 새롭게 다져 독립생활은 물론 등산하러 다니는 경우를 자주 본다. 90대에 인공관절 수술을 받는 사례도 드문 일이 아니다. 발기부전 치료제가 비타민처럼 매일 먹는 저(低)용량 복용 방식이 도입되면서, 노년 남성들도 항상 '준비된 상태'가 될 수 있다. 이는 건강관리 여부에 따라 활기찬 삶을 길게 가져갈 수 있다는 의욕을 일깨운다. 약발로 가는 '젊은 장수' 사회의 새로운 단면이다.

그동안 돋보기는 노화(老化)의 상징물이었다. 요즘은 안과 시술의 발달로 노안을 교정하는 방법이 확대되면서 '돋보기 어르신'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백내장이 낀 수정체를 인공렌즈로 바꾸면서 백내장과 근시(近視)를 동시에 치료하는 것도 흔하다. 피부·성형업계의 주업(主業)은 젊은 여성 미용에서 중·장년 '안티 에이징(anti-aging)'으로 옮겨갔다. 연륜이 밴 주름은 보톡스로 제거되고, 젊음의 기름기가 빠지며 파인 볼살은 지방이식으로 채워진다. 굵고 힘있는 뒷머리 편의 머리카락을 앞머리 쪽으로 옮겨 심는 모발 이식술도 고령화 추세다. 골프채 헤드에 쓰이는 티타늄 재질의 임플란트는 노년층의 고기 소비량을 늘린다. 양질의 단백질 섭취는 그만큼 근육의 활력도 키울 것이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신인류의 등장으로 고령사회 생태계는 지금까지 우리가 예상한 것과 다른 세상이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