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우리는 '무속신앙' 국가에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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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8.24 22:05

박해현 논설위원
행동과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에드 디너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는 최근 서울에서 열린 학술대회에 참석해 "한국인은 지나치게 물질중심적이기 때문에 행복도(幸福度)가 낮다"고 했다. 디너 교수가 130개국 13만여명을 대상으로 행복 여론조사를 실시해보니 한국인의 행복도는 5.3점으로 130개국 중간치인 5.5보다 약간 낮았다. 개별 항목 중 '물질적 가치의 중요성'을 묻는 조사에서 한국은 7.24를 기록해 미국 5.45, 일본 6.01보다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경제규모 세계 15위인 한국은 심지어 최빈국 짐바브웨(5.77)보다 더 물질에 집착하는 성향을 보였다. 디너 교수는 "한국 사회가 이 상태로 간다면 경제적으로 더 잘살게 되더라도 행복도는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물욕(物慾)을 갖기 마련이지만 왜 한국인이 이토록 물질중심주의적일까. 한국 사회의 물신(物神) 숭배에 관해 그동안 여러 학자는 급속한 경제 성장의 후유증이라고 진단했다. 그런데 사회학자 정수복은 저서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을 통해 한국인의 물질주의에는 무교(巫敎)가 깔려 있다고 했다. 한국 무교에는 기독교의 구원이나 불교의 해탈 같은 형이상학적 가치가 없다. 이 세상이 끝나면 다른 초월 세계에서의 삶이 없다는 '현세주의(現世主義)'가 무교의 원리다. 현실에서 액(厄)을 풀고 복(福)을 누리는 것을 최고 가치로 삼다 보니 '인간의 관능적 욕구와 물질적 욕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외국 기업도 한국에서 개업할 때 돼지머리에 지폐를 쑤셔넣고 절을 하기 마련이다.

물론 무교의 굿판 신명이 '다이내믹 코리아'를 만든 점도 있다. 한국학자 최준식은 "미지근한 것보다는 화끈한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잠재적 성향은 '한국인의 영원한 종교'인 무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산업화 시대에 한국인은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에 맞춰 신바람나게 일을 해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빨리빨리'도 눈앞에서 승부를 봐야 직성이 풀리는 무교의 현세주의에서 왔다고 할 수 있다. 2002년 월드컵 붉은 악마 열풍을 '거리의 굿판'이라고 한 민속학자도 있다.

한국인의 무의식에 자리 잡은 무교의 영향은 요즘 신문을 뒤적여도 금방 눈에 띈다. 새 경찰청장 후보에 대한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지난해 자살한 전직 대통령의 차명계좌가 느닷없이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논란을 일으킨 경찰청장 후보는 청문회에서 혼잣말하는 샤먼처럼 동문서답으로 일관했다. 오죽했으면 한 여당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무슨 한(恨)이 있는지 다 풀어서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며 '초혼굿' 같은 재조사를 촉구했을까.

우리나라 청문회는 굿판처럼 진행된 지 오래됐다. 임명되기 전에 '푸닥거리'를 해야 하는 고위 공직자 후보들이 항상 나와 진땀을 흘린다. 현세적 물질주의를 대표하는 부동산 투기 의혹이 고사상의 돼지머리처럼 늘 빠지지 않는다. 청문회와는 별도로 우리 정치인들의 무속신앙을 풍자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최근 보도됐다. 금으로 국새를 제작한 한 장인(匠人)이 남은 금으로 도장 몇 개를 만들어 유력 정치인들에게 선물했는데, 그 도장을 왼손에 쥐고 흔들면 '운수대통'한다며 전달했다는 설이 나돈다. 굿판 같은 정치에 영물(靈物)이나 부적(符籍)이 빠질 수는 없다고 해도, 21세기 대명천지(大明天地)에 참으로 괴이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