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위한 좋은 아이디어는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법”

짐데이터의 미래학 이야기

번역=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 제195호 | 20101205 입력
세계 미래학계의 대부로 불리는 미국 하와이대 미래학연구소의 짐 데이터(77) 교수가 한국 사회와 중앙SUNDAY 독자를 위해 ‘한국 사회와 미래학’에 관한 기고를 시작합니다. 그는 1967년 미 버지니아공대에서 미국 최초로 ‘미래학 강의’를 개설한 인물입니다. 77년에는 ‘제3의 물결’로 유명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와 함께 ‘대안미래연구소(IAF)’를 설립했으며 세계 미래연구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세계미래학연맹(WFSF)의 사무총장과 의장을 지냈습니다. 또 지난 40여 년간 하와이대에서 미래학을 가르치며 수많은 미래학자를 배출해 냈습니다.
① 미래학을 한다는 것은

한국이란 나라의 변신은 경이롭다. 세계 어디에도 한국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다시 정보사회를 거쳐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에 근접한 국가는 없었다. 한국은 식민통치,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황폐하고 가난한 농경사회에 불과했다. 그러나 비약적인 경제 발전은 단기간에 한국을 세계경제를 이끄는 핵심 국가 중 하나로 탈바꿈시켰다. 앞서간 서유럽과 북미·일본 등이 걸었던 ‘개발’ 또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이라는 미래 이미지를 따른 결과다.

오늘날 한국이 너무도 미래지향적이며, 동시에 스스로 미래를 가꿔가는 국가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국은 현재 또 다른 역사적 전환기를 맞고 있다. 한국 경제가 앞으로도 더욱 성장해 나가길 갈망하겠지만, 한국의 미래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지난 60년간 아주 잘 먹혔던 기존의 ‘개발 모델’이 앞으로도 통할지는 불투명하다.

나는 한국인들의 이런 고민을 덜어주기 미래학을 얘기하고자 한다. 그 첫 회로 무엇이 ‘미래학
(futures studies)’인지를 얘기하겠다. 미래학을 ‘예언 과학(predictive science)’이라고 믿고 있거나, 아니면 적어도 ‘믿는 척’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미래학은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비교적 정확하게 예언하기 위한 학문이다. 안타깝게도 세상엔 그런 미래학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미래의 다양한 가능성을 탐색하고 대안을 제시해 보려는 노력 자체가 부질없는 것은 아니다. 비록 ‘이러한 미래가 올 것이다’라고 미래를 예언(predict)하거나 정확한 미래를 예측(foresight)할 수는 없지만, 여러 가지 대안적인 미래를 구상해 보는 것은 가능하다.

미래학의 본질은 ‘정확히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한 복수의 미래를 구상하고, 그에 대한 올바른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다. 가능한 여러 가지 미래를 조사한 뒤 그 속에서 가장 바람직한 미래(desirable future)를 찾아내고, 또 원하는 방향(preferred future)으로 설계해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설계한 미래 역시 끊임없이 재평가하고 다시 그려야 한다.

미래학자의 주된 역할은 개인과 단체가 저마다 원하는 미래를 설계하고, 실현할 수 있는 능력
을 개발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간 많은 미래학자가 개발과 실험을 거쳐 적용해보고, 유익하다고 증명한 이론과 방법론이 있다. 이런 것들을 잘 이해하고 적용하면, 개인이든 조직이든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생기고 또 자신들이 그린 대로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 미래에 대한 고민이 없는 계획과 정책은 쓸모없거나 심지어 해로운 것이 될 수도 있다.

나는 50년 가까이 미래학을 가르치고 연구해왔다. 그 과정에서 미래와 미래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본이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좀 장난스러울지 모르지만 이것들을 ‘데이터의 미래법칙’이라고 이름 지어봤다.

그 첫째는 ‘미래는 현재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미래학이란 ‘미래’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개개인의 마음속에 있는 ‘미래의 이미지’ 혹은 ‘미래에 대한 생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미래 이미지란 아주 안정적인 것이 있는가 하면, 사건이나 환경의 변화에 따라 매우 쉽게 바뀌는 것도 있다.

다시 말해 미래학은 개인 또는 사회가 특정의 미래 이미지를 갖게 된 원인은 무엇이고, 이러한 서로 다른 미래의 이미지들이 현재의 그들 행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이러한 행동들이 미래의 어떤 특정 상황을 견인할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둘째, 미래법칙은 ‘미래에 관한 어떤 유용한 생각도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행동양식과 가치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기존 기술에 기반한 가치와 신념과는 맞지 않다. 새로운 것은 처음엔 당황스럽고 실현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때로는 우스꽝스럽고 쓸데없는 공상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것들에 우리는 곧 친숙해지고, 트렌드로 발전해 결국 평범한 것이 되었다가 소멸한다. 반대로 대중이 가장 그럴싸한 미래라고 여기는 것들은 종종 아주 가능성 없는 미래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 진정으로 미래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원한다면, 전통적이지 않으며 때로는 충격적이며 우스꽝스러운 생각도 각오해야 한다. 물론 미래학자들은 적절한 증거를 이용해 가능한 대안적 시나리오를 짜내야 한다. 초기의 우스꽝스러운 아이디어를 그럴듯하고(plausible) 실천 가능하게(actionable) 만들어내야 할 책임이 있다.

마지막 법칙은 “우리가 도구를 만들어 내지만 그 후엔 도구가 우리를 만든다”는 것이다. 캐나다의 미래학자 겸 미디어 철학자인 마셜 맥루한이 말한 이 명언은 기술의 변화가 사회와 환경 변화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뜻이다. 이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바로 우리 앞에 놓인 다양한 대안적 미래들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물론 기술이 사회 변화 요소의 전부는 아니다. 인구의 크기와 분포, 환경 변화, 경제이론과 행위, 문화적 신념과 습관, 정치적 구조와 결정, 그리고 개인의 선택과 행동과 같은 것도 미래를 창조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