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 2015.01.22(목) / 종합 A10 면

[김유길 광복회 부회장 "한반도 침투 준비 중 光復… 감격과 동시에 허망함 느껴"]


김유길(96) 광복회 부회장은 충칭(重慶)에서 김구 임시정부 주석을 처음 만났던 70년 전을 회고하다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1919년 평양 출생인 그는 일제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1944년 중국 쉬저우(徐州)에서 탈출을 감행한 뒤, 한국광복군 간부훈련반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그해 11월 교육을 마친 그는 장준하(전 사상계 발행인), 김준엽(전 고려대 총장) 등 50여 명의 대원과 함께 임정이 있는 충칭을 향해 석 달간 6000리 길을 걸었다.

"우리는 한국광복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나가 나가 압록강 건너 백두산 넘어가자." 김 부회장은 주먹을 꾹 쥐고 흔들며 당시 군가를 불렀다.

김구 주석은 장정(長程)을 마친 이들을 "숭엄한 조국의 혼이 살아 있는 증거"라고 격찬하며 환영회를 열었다. 이날 연회에서 장준하가 답사에 나서자, 임정 각료들과 광복군 대원, 교민 등 150여 명은 눈물바다를 이루고 말았다. "장로교 목사의 아들인 장준하는 성경을 즐겨 인용해서 '장 목사'로 불렸어요. 그가 임정 각료들에게 '이제는 우리가 당신의 발을 씻겨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자, 김구 선생부터 '흑' 하고 울음을 터뜨리시더니 다들 통곡하고 말았죠."

1945년 8월 김 부회장은 중국 시안(西安)의 미 전략정보국(OSS ·CIA의 전신)에서 한반도 침투 작전을 준비하던 중에 광복을 맞았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직후 사흘간 훈련을 중단하기에 작전 개시가 임박했다고 생각하고 제대로 잠도 못 이뤘죠. 그런데 며칠 뒤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발표하는 바람에 감격과 허망함이 겹쳤어요."

광복군 참모장이었던 이범석 장군의 전속부관을 지냈던 그는 1945년 12월 이 장군이 이승만 박사에게 보내는 친필 서한을 들고 귀국했다. 이듬해 귀국한 이범석 장군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다.

김 부회장은 좌우 대립이 극심했던 정계에 투신하는 대신, 수원과 부평 고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6·25전쟁 동안 미군 통역으로 활동했던 그는 미국으로 유학 간 아들을 따라 1982년 도미(渡美)했다.

"1994년 김일성 사망 소식에 '고향 평양에 갈 수 있겠구나'라는 기대를 품고 이듬해 귀국했죠. 일본 유학 3년, 중국에서 3년, 미국 생활 14년까지 도합 20년간 해외에서 살았는데, 두 시간 반이면 가는 평양만은 못 가네요. 어릴 적에 뛰놀던 대동강변이 아직 그리운데…. 구순 넘으면 자유롭게 왕래하게 해주는 특별법이라도 만들 수 없나요."

기고자:김성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