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 2015.01.30(금) / 종합 A8 면


[이승만 취재 언론인 조용중]

"이승만은 냉혹한 승부사입니다. 좌익이든 민족진영이든 그에 대항할 사람이 없었어요."

조선일보 정치부장과 연합통신 사장을 지낸 원로 언론인 조용중(85)씨는 이승만 정권 시기인 1953년부터 정치부 기자로 활동했다. 경기도 용인 자택에서 21일 만난 조씨는 지난해 말 암 수술을 받아 보행 보조기가 없으면 걷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목소리는 카랑카랑했다. 조씨는 기자로서 대통령 이승만을 가까이서 볼 기회가 있었다. "국회의사당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비서에게 '저기 웅성거리는 사람들은 누구냐'고 하더니 기자들에게 손짓하며 '이리 가까이 오라'고 했어요. 귀여운 손자를 보는 듯한 표정이었지요."

그러나 조씨는 이승만을 '인자한 웃음'으로만 기억하고 있지 않다. 그는 "이승만의 승부사적 기질은 이후 대통령 누구와 비교해도 단연 최고"라고 했다. 조씨는 6·25전쟁 중이던 1952년 이른바 부산 정치 파동을 예로 들었다. 지난 2004년 조씨는 당시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책 '대통령의 무혈혁명'(나남)을 냈다.

부산 정치 파동은 이승만이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는 국회의원들을 전격 구속하고 직선제 개헌(발췌개헌)을 밀어붙인 사건이다. 당시 이승만은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지만 미국은 휴전에 반대하는 그를 '눈엣가시'로 생각하고 있었다. 조씨는 국민의 지지를 받는 이승만이 국회에서는 지지받지 못하는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무리한 개헌 시도를 한 것으로 분석했다. "국회의원들을 '국제공산당'이라고 몰아세웠는데 전시였던 당시 국민에겐 이게 먹혀들었어요."

1953년 6월 반공포로를 전격 석방해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이끌어 낸 것도 이승만의 승부사적인 결단이라고 했다. 공산군과 포로 교환을 통해 휴전을 추진하던 미국은 이승만의 포로 석방에 경악했다. 미국은 이후 이승만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한미방위조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조씨는 "반공포로 석방은 미국과 중국 등이 어떤 수를 노리고 있는지 내려다보는 안목과 배수의 진을 친 돌파력이 아니면 할 수 없었던 일"이라면서 "당시 야당은 '미국이 화낼 일을 왜 했느냐'고 이승만을 비판했지만 결국 이를 통해 한미방위조약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기고자:이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