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의거 자금 출처는 미주 한인사회 애국금

조선일보
  • 고정휴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교수
  • 입력 2019.04.17 03:46

    [4월 11일, 임시정부 100년] [이승만·김구의 나라 만들기]
    [5] '윤봉길 의거' 1932년 4월 29일 전후 - 임시정부, 재정 어떻게 마련했나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독자적 재정 기반을 갖지 못한 태생적 한계를 안고 출발했다. 그 한계를 메워 준 것은 미주 한인사회였다. 임시정부는 원년(1919년 5월~1920년 2월)과 2차년(1920년 3~11월)의 재정 수입 및 지출 내역을 밝힌 바 있다. 원년도 총수입은 6만4118달러인데, 그 내역은 인구세 1086달러, 애국금 4만1984달러, 충의금 1만4487달러 등이었다. 2차 연도의 수입 총액은 6만9000달러. 인구세 2940달러, 애국금 4만4583달러, 구미위원부 송금액 1만2354달러이며 나머지는 전년도 수입과 이월금이었다. 재정 수입은 정부 각 부처 활동과 최소한의 유지 비용에 사용됐다.

    임시정부의 재정 수입은 자발적 헌금인 애국금과 구미위원부 송금에 의존하고 있었다. 하와이와 미 본토 등 미주 한인사회는 규모가 1만명 정도였다. 이들은 3·1운동 소식이 전해 오자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 헌신적으로 응했다. 1922년 2월 이후 임시정부는 오랜 침체기에 빠졌다. 이봉창·윤봉길 의거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 계기였다. 의거에 소요된 특무공작비는 미주 한인사회로부터 조달됐다.

    1940년 9월 중국 국민당 정부의 임시 수도인 충칭에 정착한 임시정부는 광복군을 창설하고 전시 외교를 펼쳐나간다. 자금 출처는 두 군데였다. 첫째는 미주 한인사회였다. 1935년 무렵 1544원(元)에 그쳤던 임시정부 세입은 1938년 2만2735원으로 늘어났다. 이는 중일전쟁 후 미주 한인들이 낸 인구세·애국금·혈성금·후원금 때문이었다. 1945년 8월까지 미주 한인사회에서 대략 35만~40만달러가 걷혔고, 그중 10만달러 정도가 임시정부로 송금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는 중국 국민당 정부의 후원이다. 이 비중은 점차 높아 져 전체 세입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래도 재정 여건은 원활치 못했다. 1942년도 임시정부 업무에 사용된 정무비가 71만4680원으로 전체의 73%를 차지했고, 나머지는 각 정당에 지급된 당비, 광복군에 사용된 군비, 충칭 거주 교민생활비 등에 충당했다. 해방을 목전에 두고도 한정된 재정 여건으로 광복군 확대와 국제적인 승인 외교를 수행하기가 어려웠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17/201904170032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