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나랏돈 쓰는 데 천재적인 사람들

조선일보
  • 배성규 정치부장
  • 입력 2019.04.22 03:15

    로마 황제도 무적함대도 나랏돈 펑펑 쓰다 무너져
    現 정부, 선거만 보며 돈 쓰는데 과연 파탄의 늪 피할 수 있나

    배성규 정치부장
    배성규 정치부장
    로마 3대 황제 칼리굴라의 치세는 환호로 시작됐다. 선제(先帝) 티베리우스의 '내실 경영'으로 재정은 튼튼했고 안보도 평화로웠다. 2억7000만 세스테르티우스(고대 로마 은화)의 유산도 물려받았다. 로마 제국 전체 병사 2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막대한 액수였다. 즉위 후 첫 조치는 시민과 병사들에게 거액의 현금을 나눠준 것이었다. 그리고 7개월 동안 밤낮으로 검투사 시합과 전차 경주, 연극 공연을 벌였다. 시민들은 그를 칭송하며 거리에서 춤을 췄다.

    이집트에서 거대 석상인 오벨리스크를 실어와 대전차 경주장을 만들었다. 수백 척의 배를 띄워 해상에 5.4km 도로를 깐 뒤 황금갑옷에 전차를 타고 바다 위를 달리는 쇼도 했다. 로마의 대화재 피해도 국고로 보상해 줬다. 하지만 3년 만에 황제 재산도 국고도 바닥났다. 재정난에 몰린 칼리굴라는 상속세와 땔감세, 재판세를 줄줄이 올리고 황궁 재산도 팔았다. 원로원을 '국가반역죄'로 몰아 재산을 몰수했다. 결국 귀족도 시민도 등을 돌렸고, 3년 10개월 만에 파탄을 맞았다.

    스페인 무적함대를 만든 펠리페 2세는 군비 확장 등 각종 사업에 천문학적인 돈을 썼다. 그는 방만한 지출로 인한 재정 적자를 은행 빚으로 메웠다. 아메리카 은(銀) 생산으로 해결이 안 되자 미래 예정된 국가 수입까지 담보로 잡혔다. 대출 이자는 최대 20%까지 치솟았다. 왕의 지출을 제한해 상대적으로 재정이 건실했던 영국에 비하면 4배나 높았다. 상공업에 대한 세금을 올리자 산업은 더 위축됐다. 결국 4차례나 '국가 파산'을 선언했고, 유럽 자본은 영국으로 몰렸다. 1588년 무적함대가 영국에 무너진 것은 단순한 군사 전술적 실패가 아니었다. 재정 파탄의 참혹한 결과였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 500조원이 넘는 수퍼 예산을 짜고 있다. 매년 평균 35조원씩 급증 추세다. 그것도 모자라 수조원대 추경 편성만 세 번째다. 나랏빚이 1700조원에 이르는데 돈 쏟아부을 궁리만 하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갑자기 2조원대 고교 무상교육안을 발표하더니, 48조원을 들여 전국에 '생활 SOC'를 짓겠다고 한다. 예비타당성 조사 없이 24조원대 지역 사업을 추진하는 데 이어 여당은 17개 시·도에 134조원의 개발사업 지원을 약속했다.

    일자리에 70조원 넘게 퍼붓고 있지만, 민간 일자리는 외려 줄었다. '문재인 케어'로 건강보험 재정은 축나고,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엔 매년 15조원이 더 들어갈 판이다. 그런데도 예산을 더 풀어 일자리와 복지 혜택을 늘리겠다는 달콤한 말만 하고 있다.

    최근 만난 청와대 인사는 "정부 예산 투입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여당 소속 국회 기재위원장은 "국민의 빈 주머니를 국가가 채워줘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정부가 펑펑 쓰고 있는 나랏돈은 국민 주머니에서 나간 것이다. 효과도 불투명한 선거용 정책에 낭비할 돈이 아니다. 쓰긴 쉽지만 채우긴 어려운 게 나라 곳간이다. 정부도 여당도 돈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한 여당 의원은 "정권 핵심 상당수가 스스로 돈을 벌어본 적이 없어서…"라고 했다. 선거만 바라보며 나랏돈 쓰는 데 천재적인 역량을 발휘하다가는 로마 황제와 무적함대가 빠진 파탄의 늪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21/201904210226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