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부 순환보직 600개… "찍히면 1~2년 쉬다오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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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7.20 02:43

전체 정원의 절반 수준 문책성 인사당해도
일은 적고 대우는 더 좋고
향후 인사 불이익도 없어 교육관료들의 '피난처'로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6월 말 학원 심야교습 단속과 '학(學)파라치'(불법 학원영업에 대한 신고포상금제) 도입 등의 대책을 내놓자 전국 학원가(街)는 '생존권 투쟁'을 벌일 정도로 얼어붙었다.

하지만 이 대책들은 이미 지난 4월 하순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주장해 정부 내에서 검토됐던 것들이었다. 이명박 대통령 공약이던 '사교육비 반값' 정책에 따라 곽 위원장 등 실세 그룹이 아이디어를 냈으나 교과부의 반대로 두 달간 엎치락뒤치락하는 파행을 거듭했다. 이로 인해 혼란이 심화되자 급기야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질책했고, 그제야 교과부가 대책을 받아들여 행동에 나선 것이었다.

사교육 대책에 규제와 단속 카드를 쓰는 것이 옳은가의 논쟁과는 별도로, 이 같은 교과부의 소극적 자세는 여권 내부에서도 논란을 낳았다. 교과부는 사교육 억제 대책뿐만 아니라 방과 후 학교에 외부 프로그램 대거 도입이나 교원평가제 전면 실시 등 공교육 강화 정책에서도 부작용을 강조하면서 반발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한 실세 그룹은 "교육 관료들의 보수성과 기득권"을 지적하며 "교육 관료들이 이명박 정부의 핵심 공약을 망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교과부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교육정책은 경제정책과 달리 쉽게 국민적 합의를 만들기 어렵고, 함부로 추진하다가는 피해가 치명적일 수 있어 신중하게 접근하자는 것"이라며 "이를 두고 비(非)개혁적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억울하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만든 교육정책 중 교과부가 뭉개거나 뒤집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권 차원에서 '교육 개혁'을 추진해도 소극적일 수 있는 '교과부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본지 취재팀이 전직 교육부·교과부 장관들과 전·현직 관료들, 국립대 관계자·교사 등을 취재한 결과 '600여개의 순환보직 자리'를 지적하는 사람이 많았다. 교과부에는 전국 42개 국·공립대나 16개 시·도 교육청에 2년 내외의 임기로 파견 나갔다 돌아오는 순환인사 자리가 전체 정원(1417명)의 절반 수준인 600여곳에 달한다.

정부의 한 고위 인사는 이 순환인사 시스템을 '자리 안전망'이라고 불렀다. 그는 "일은 더 적고, 대우는 더 좋아지면서 향후 인사상 불이익도 받지 않는 이런 자리가 있으니 교육 관료들이 위험 높은 개혁에 나서지 않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600여개의 교과부 밖 보직들이 "'찍혀도' 1~2년 지방에 갔다 오면 된다"는 인식과 함께 관료들의 '피난처' 역할을 한다는 얘기다.

600개의 자리 안전망

교과부에서 사교육 대책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A국장이 지난 9일 전격 교체됐다. 그 사흘 전 학원 심야단속 등 사교육 긴급 대책을 발표하며 선전포고를 한 당사자가, 막상 '전쟁'이 시작되니 바뀐 셈이다. 모양새만 놓고 보면 학원 규제에 미온적으로 대응하다 '문책성'으로 인사 조치된 것으로 보인다고 교과부에선 해석했다.

A국장은 대신 지방 도(道) 교육청의 부교육감으로 발령받았다. 부교육감에는 수행비서와 개인 차량도 지급된다. 그의 후임엔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면서 지방 국립대 사무국장으로 내려가 있던 B국장이 복귀했다.

이를 두고,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물 먹은 것으로 보이겠지만 결국은 일은 더 적고 대우는 더 좋은 자리로 간 것"이라며 "지방으로 가도 향후 승진 인사에 별 지장이 없는 참 기이한 보직들이 교과부에는 너무 많다"고 말했다. 이런 안전망 덕분에 교육 관료들이 위험이 큰 개혁에 나서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 '문책성 인사'가 실효를 거두기 힘든 구조가 됐다. 상당수 문책성 인사는 지방 발령인데, 실상을 놓고 보면 인사 불이익도 없고 잠시 쉬다 오면 된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한 경제부처 관계자는 "인사 불이익이 없다면 인사권자가 제대로 조직을 장악할 수 없는 것 아니냐"며 "관료가 자신들이 감독하고 관리할 대상인 시도 교육청과 지방 국공립대 등에 파견 나가는 것은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교과부 밖 보직으로 전출돼 가면 대우도 더 좋아진다. 부교육감의 경우 비서와 수행비서, 운전기사가 달려나온다. 지방국립대 사무국장도 같은 급의 중앙부처 공무원보다 좋은 대우를 받는다. 한 지방국립대 교수는 "교과부에서 내려온 공무원들은 일단 중앙과 네트워크가 있으니 실력자로 통한다"며 "서기관급인 과장에게 차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교과부 고위 관계자는 "(순환인사는) 대학과 정부 간의 원활한 의견 소통을 위해 서로가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의 한 대학교수는 "그런 논리라면 국영기업에는 경제부처 공무원이 파견돼야 한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백지화된 '순환인사 금지' 공약

현 정부도 출범 초기엔 이런 문제점을 인식했다. 지난해 1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교과부의 순환보직을 전면 금지하고 교과부 인원을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었다. 이주호 현 교과부 차관이 당시 인수위 사회교육문화분과 간사 자격으로 발표했던 내용이다. 교육부 관료들은 "치명적인 정책"이라고 두려워했지만, 어떤 이유인지 이 정책은 시행되지 못하고 흐지부지됐다.

본지가 2008년 1월부터 2009년 1월 말까지 1년여간 교과부 전보인사 내용을 분석한 결과, 교과부-국립대학 간 인사이동 39명, 교과부-시·도교육청 간 인사이동 28명으로 총 67명이었다. 교과부 정원 798명의 8.3%에 해당된다. 교과부 초기 인사과장을 맡았던 관료는 지금 지방의 한 국립대 사무국장으로 있다. 그래서 교과부 관료들 사이엔 국립대와 교육청을 교과부의 한 부서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현 정권 인수위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교과부 장관과 차관이 외부에서 오더라도 개혁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은 이 같은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순환인사 금지를 주장했던 이주호 차관이 지난 2월 취임했지만, 교과부 인사 시스템은 바뀌지 않았다. 한 교육계 인사는 "이 차관이 순환인사가 필요하다는 현실론으로 판단을 바꾼 것인지, 교육 관리들이 이 차관을 설득시킨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변화를 싫어하고 책임질 일은 안해" "교육정책은 경제논리만으론 못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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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7.19 23:21

전직 부총리·장관이 본 교과부

교육관료의 '비(非)개혁성'을 비판하는 지적에 대해, 교과부는 "비개혁적인 것이 아니라 신중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교육정책은 신중하게 추진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교과부 수장(首長)을 지낸 전직 장관·부총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교육학자 출신인 A 전 장관은 "교육부는 지난 60년간 워낙 두들겨 맞다 보니, 아무도 꾸지람하지 않는데도 가만히 있는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B 전 장관은 "교육 관료들이 변화를 싫어하고, 교육체제를 바꾸려고 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틀림없다"면서 "교육 정책이 바뀌었을 때 나올 결과가 나쁠 경우 그 책임을 두려워해 '안 하는 게 낫다'는 인식이 확산돼 있더라"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재임한 C씨는 "학자 출신 장관들은 5~6개월이 지나도록 조직 장악을 제대로 못하는 등 관료들에게 잘 휘둘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입시문제 등 교육 문제는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관료들이 처음부터 어떻게 입력시키느냐에 따라 장관의 생각이 달라진다. 대체로 관료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내용을 입력시키는데, 이게 먹히면 장관이 휘둘리게 된다"고 말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장관을 한 D씨는 "교육 쪽은 장·차관의 수명이 짧으니, 주요 보직으로 중용된 관료들만 일을 하고, 나머지는 아예 나태해져 버리더라"면서 "퇴임 후 사석에서 만난 어떤 관료가 '장관이 맘에 안 들면 쫓아내는 방법도 있다'는 얘기를 하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장관의 그릇된 정무(政務) 판단을 유도하거나 언론을 통해 내부 문제점을 유출하는 게 흔한 수법"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교육개혁 미진을 교육관료 책임을 돌리는 것은 과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앞서의 A 전 장관은 "교육정책은 뭘 하나 하면 최소 3~4년은 기다려줘야 하는데 대통령부터 그렇게 기다리지 못한다"면서 "마치 농사도 짓기 전에 씨 뿌려 놓고 나서 잘못 심었다고 뽑아버리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E씨도 "교육정책은 힘세고 다양한 각종 이해 당사자로 둘러싸여 있어 밀어붙인다고 되는 게 아니다"면서 "단순한 공급과 수요의 경제논리만으로도 풀 수 없어 장기적인 안목의 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