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G20' 개최가 부끄러운 준법 불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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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9.28 23:08 / 수정 : 2009.09.29 01:55

이준 논설위원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의 임명 동의안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말 많았던 인사청문회 정국이 일단락됐지만 씁쓸한 여운이 남는다. 위장전입은 기본이고 다운계약서 작성, 소득신고 누락, 세금 탈루, 논문 중복 게재, 병역기피 의혹까지 갖가지 위법과 반칙투성이의 총리·장관 후보들의 준법 성적표. 'A+'로 채워진 성적표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평균점에도 못미치는 성적표에 국민은 실망이 컸다. 우리 사회의 관행이었던 부분도 있고 직무 수행을 못할 만큼 중대한 흠결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법과 규범을 지키는 데 모범을 보여야 할 사회 지도층의 처신으론 분명 문제가 많았다.

청문회에 묻혀 지나갔지만 씁쓸한 이야기가 또 있다. 지난 8·15 특별사면 때 음주운전 전과자가 일괄 사면을 받았다. 그 가운데 17명이 사면된 바로 그날 또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다가 경찰에 걸렸다. 그다음 날은 24명이 걸렸고, 그런 식으로 한 달 동안 사면받자마자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된 낯 두꺼운 사람이 643명이나 된다고 한다. 경찰에 들키지 않고 그냥 넘어간 음주운전 전과자는 또 얼마였을까.

두 이야기를 합쳐 보면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사회 지도층부터 일반 국민까지 심각한 준법 불감증에 빠져 있다.' 하긴 법을 만드는 국회부터 해머와 전기톱 들고 위법·반칙·폭력에 앞장서 "의회 난동 분야의 세계적 리더"로 이름을 날리는 판이다. 불법파업·폭력시위 일삼는 강성 노조가 대한민국과 동의어가 된 지도 오래다.

준법의식만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신뢰나 연대감도 위험 수위다. 세계 사회과학자 모임이 실시한 2005년 '세계가치관조사(WVS)'를 보면 한국인이 '다른 사람을 믿는다'고 답한 비율은 28%다(삼성경제연구소). OECD 평균은 39%, 스웨덴 덴마크 같은 선진국은 70%에 이른다. '처음 만난 사람을 믿는다'는 한국인 비율은 더 떨어져 13%에 불과하다. 이 역시 OECD 평균(36.6%)과는 비교가 안 된다. 반면 '가족을 믿는다'고 답한 한국인은 99%로 OECD 평균(87%)을 앞지른다. 피붙이 외엔 못믿는 폐쇄적 혈연·연고주의의 전형이다.

준법의식과 신뢰, 사회적 연대망 같은 무형의 사회질서를 경제학에선 '사회적 자본'이라 부른다. 로버트 퍼트넘 하버드대 교수가 북이탈리아와 남이탈리아에 노동·자본 같은 전통적 생산요소를 똑같은 양과 질로 투입해도 전혀 다른 성과가 나오는 이유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개념이다. 경제학자 스테판 낵과 필립 키퍼는 그걸 더 발전시켜 사회적 자본과 경제성장의 상관관계를 계량화했다.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사회적 자본지수가 10% 올라갈 때 성장률은 0.8%포인트 정도 상승한다고 봤다. 만약 한국의 사회적 자본이 미국·유럽 수준이라고 가정할 때 그 모델에 따르면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 전까지 적어도 매년 1%포인트씩 추가 성장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사회적 자본은 갈수록 더 고갈되고 있다. WVS 조사가 실시된 1982년과 2001년 사이에만 한국의 사회적 신뢰지수는 11%가 떨어졌다. 사회적 자본이 이렇게 내려가는 상황에선 아무리 기업투자를 늘리고 생산성을 높이려고 노력해 봐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반대로 다른 거 안 하고 대한민국의 법과 신뢰를 선진국 수준으로만 끌어올려도 한국 경제의 성장잠재력은 금세 갑절로 치솟을 것이고 10년 넘게 '국민소득 2만달러 덫'에 빠져 있는 우리 경제가 또 한 번 도약하는 계기를 맞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혹시 아는가. 그렇게 되면 한국이 'G20' 총회 개최국이 아니라 'G8' 총회를 개최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