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의 시시각각] 모피아 뺨치는 금피아 [중앙일보]

2009.10.26 18:52 입력 / 2009.10.27 00:25 수정

‘모피아’가 어제였다면 오늘은 ‘금피아’의 시대라고 한다. 모피아는 옛 재무부 출신 경제관료를 일컫는다. 모프(MOF:옛 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다. 끼리끼리 정부 고위직과 금융회사 주요 자리를 독식한다고 붙은 이름이다. 듣는 모피아들은 기분 나쁘겠지만, 오죽하면 이런 말이 나왔을까. 금융계의 원성이 얼마나 자자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시중 은행장이 재무부 사무관 옆에 서서 한 시간 넘게 말도 못 붙이고 기다렸다는 얘기는 지금도 전설처럼 금융계에 회자된다. 관치금융이 극성을 부리던 10여 년 전만 해도 옛 재무부 차관급이라면 은퇴 후 9년은 ‘노후보장’이 됐다고 한다. 공기업 사장 3년+민간 금융회사 사장 3년+금융회사 고문 3년이다. 국장급이라면 6년이 기본이었다고 한다.

그런 모피아의 아성에 도전하는 게 금피아다. 금피아는 금융감독원과 마피아의 합성어다. 상품 허가부터 검사권까지 쥐고 있다 보니 금융회사는 감독원을 옛 모피아보다 더 무서워한다. 군대에서 장교보다 고참이 더 무서운 것과 같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관료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모피아가 ‘관료 배제, 민간 우대’에 걸려 주춤하는 동안 세력을 확 키웠다. 공공기관이지만 정식 공무원은 아닌 ‘반관반민’의 지위를 십분 활용한 것이다. 올 들어선 공공기관 지정마저 해제됐다. 덩달아 올해 감독원 출신들의 금융회사 취업도 크게 늘었다.

금피아에게 한 가지 걸림돌이라면 공직자 윤리법이다. 이 법 제17조는 퇴직일로부터 2년간 퇴직 전 3년 이내에 소속했던 부서의 업무와 관련 있는 사기업에 취업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걸림돌이 있다고 주저앉을 금피아가 아니다. 절묘한 수순을 고안해냈다. 퇴직 전에 아예 금융과 관련 없는 부서로 자리를 옮기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주로 많이 가는 곳이 인력개발실이다. 인력개발실이 자리한 종로구 통의동 금감원 연수원에는 늘 7~8명의 국·실장급 간부들이 모여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 “대부분 계급정년에 걸려 금융회사행을 준비 중인 이들”이라며 “가끔 고위직 퇴직자가 몰리면 제대로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모피아가 주로 고위직을 노렸다면 금피아는 금융회사의 감사직에 집중한다. 감사직은 연봉이 최소 수억원, 많은 곳은 8억원이 넘기도 한다. 기간은 2년으로 짧지만 연임이 가능하다. 노후보장으론 안성맞춤이다. 금감원과의 소통 능력이 필요한 금융회사들도 서로 모시려고 안달이다. 여기서 금융회사와 금피아 간의 공생 관계가 성립한다. 이런 관계에선 감독이 제대로 이뤄질 턱이 없다. 감사 기능이 마비되고 대형사고가 터지기 십상이다.

그러다 보니 국정감사에서도 금피아 문제는 단골 메뉴로 거론된다. 지난 주말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과 무소속 신건 의원 등이 따졌는데 올해는 정도가 더 심해졌다. 올 들어 8월까지 금감원 퇴직자 40명 중 21명이 금융회사 감사로 취업했다. 작년 한 해 취업자 13명보다도 많다.

마침 이날 정무위는 ‘황영기 논란’으로 뜨거웠다. 황영기 전 우리금융지주회장은 “우리은행이 파생상품에 투자한 것도, 손실 난 것도 당시엔 몰랐다”고 항변했다. “1조6000억원을 깨 먹었는데 당시 은행장이 몰랐다면 다냐”는 비난이 있긴 했지만, 쟁점은 두 가지로 정리됐다. 깨 먹은 게 잘못이냐, 아니면 그만한 돈을 깨 먹을 동안 아무도 위험을 경고하지 않은 게 더 큰 잘못이냐. 결론은 후자 쪽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경고해야 했을까. 그것도 두 갈래였다. 은행 안팎에서 같이 해줘야 했다. 그래야 경고등이 제대로 작동한다. 은행 밖에선 예금보험공사와 금융감독원이 했을 일이요, 은행 안에선 이사회와 감사가 했어야 했다. 경고등이 하나라도 제때 켜졌다면 손실은 훨씬 줄었을 것이다. 금융회사 최후의 파수꾼으로 불리는 감사, 금피아의 싹쓸이가 걱정되는 이유다.

이정재 중앙SUNDAY 경제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