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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2월 이승만의 비밀서신, 김구와 '무력항전' 논의했다

조선일보
  • 이한수 기자

  • 입력 2019.03.22 03:01

    [4월 11일, 임시정부 100년] [이승만·김구의 나라 만들기]
    [1] 협력 이어간 두 巨人… "美와 함께 일본시설 습격" 요청

    1940년 2월 2일 이승만이 김구에게 보낸 편지. 군함·군수 공장 파괴 등 무력 투쟁을 주문했다.
    1940년 2월 2일 이승만이 김구에게 보낸 편지. 군함·군수 공장 파괴 등 무력 투쟁을 주문했다. /동아옥션
    "우리나라, 일본, 중국, 러시아 각 나라 항구와 요지에 (중략) 거사 계획을 약속했다가 무르익으면 한꺼번에 일어날 것. 행할 일은 군함·병영·관공서·군수공장 등을 파괴·방화하는 일, 사보타주, 비행기를 포격하고 시위할 것, 군인 수백 수천으로 습격 항전할 것."

    1940년 2월 2일 미국 워싱턴에서 이승만은 중국에서 임시정부를 이끌고 있는 김구에게 편지를 보내 "지금 미 육해군은 은밀한 준비에 열심입니다. 우리를 향해 아래와 같은 요구가 있습니다. 만일 (미·일) 전쟁이 벌어지면 도움을 바란다고 합니다"라며 일본군 주요 시설을 공격하는 작전을 계획해달라고 요청했다. 외교 독립 노선으로 알려진 이승만이 김구에게 무력 항전을 주문한 것이다. 편지에서 이승만은 김구를 '백범(白凡) 인형(仁兄)', 자신을 '만제(晩弟·이승만 아우)'로 지칭했다. 실제는 이승만이 김구보다 한 살 많다. 이 편지는 최근 열린 동아옥션 경매를 통해 공개됐다.

    이승만과 김구는 편지 왕래를 통해 전략을 의논할 만큼 서로 협조하면서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해방 후에도 줄곧 협력관계였으나 1948년 김구가 남북협상에 나서면서 사이가 벌어졌다는 게 학계의 통설이다. 최근 정치적 필요에 따라 둘의 관계를 적대적으로 규정하는 일은 역사적 사실과 맞지 않는다. 오영섭 연세대 이승만연구원 연구교수는 "이승만과 김구는 독립운동 기간 내내 협력했으며 서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관계였다"고 했다.

    이승만은 편지에서 당시 임정의 정파 싸움을 의식한 듯 "이름으로만 합동이니, 통일이니 하는 공담으로 마음을 허비하지 마시고 (중략) 다만 이 한 가지 일만은 협동하게 하면 충분할 것"이라고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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