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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의 뉴스 읽기] 세계 최고 65% 상속세 폭탄에… 기업·기술·일자리 모두 무너진다

조선일보
  • 윤영신 논설위원

  • 입력 2019.01.17 03:14

    세계와 역행하는 한국 상속세

    윤영신 논설위원
    윤영신 논설위원
    "상속세가 너무 가혹하다"고 기업들이 아우성이다. 국내외 시장에서 최고 수준 제품을 생산하던 중소·중견기업 중 상속세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경영권을 매각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유니더스, 쓰리세븐, 락앤락, 농우바이오, 까사미아, 우리로광통신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 세율은 일본(55%) 다음으로 높은 50%에 달한다. 하지만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가업 승계 시 경영권 프리미엄까지 과세 대상에 포함하는 '최대 주주 할증 과세'가 더해져 실질 최고 상속세율이 65%로 높아진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5국 가운데 단연 1위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재산을 털어 상속세를 내고 나면 회사를 더 이상 꾸려가기 힘든 상황에 빠지기 십상이다. 한국의 상속세를 '징벌적·약탈적 세금'이라 부르는 이유다. 다른 선진국들은 상속세를 아예 없애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고용과 기술을 창출하는 기업들을 키우기 위해서다. 이젠 우리나라 상속세도 현실에 맞게 바꿀 때가 됐다.

    기업의 명(命)을 끊어버리는 상속세

    상속세 부담이 기업 생사를 가르는 문제로 증폭되자 정부는 가업상속 공제를 확대해 왔다. 그러나 적용 대상에서 대기업은 아예 제외됐다. 중소기업은 200억~500억원까지 공제받을 수 있지만 요건이 매우 까다롭다. 우선 피상속인의 기업 경영 기간이 10~30년을 넘어야 한다. 상속인이 기업을 넘겨받은 후 10년간 정규직 근로자 수를 유지해야 한다. 또 상속인이 최소 10년간 대표(CEO)직을 맡아야 하고 지분을 함부로 팔아서도 안 된다. 공제를 확대했다고 하지만 실은 공제 요건이 더 까다로워진 것이다. 세금을 다 내라는 얘기다. 승계 기업은 업종을 바꿔도 안 된다. 4차 산업혁명 등 세계 경제가 빠르게 변하는데 업종을 못 바꾸게 규제하면 새 산업이 발전하기 어렵다. 한국에서 오랜 기간 신생 대기업이 탄생하지 않는 것도 이런 규제의 벽이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가는 사다리를 상속세가 부러뜨리고 있는 것이다. 상속세 때문에 가업 승계를 엄두 내지 못하고 가족들이 남은 자산을 처분해 나눠 갖는 경우도 허다하다. 애써 키운 기업은 분해되고 일자리와 기술은 사라지는 것이다. 이중과세 논란도 있다. 기업을 하면서 법인세, 배당세, 개인소득세, 양도세 등을 납부해왔는데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부과되는 엄청난 상속세 부담이 기업을 휘청거리게 하는 결정타가 된다. 작년 말 중소기업중앙회가 실시한 가업 승계 실태 조사에서 중소기업 10곳 중 6~7곳 대주주가 "회사를 후대에 물려줄 엄두를 못 낸다"고 답했다.

    OECD 회원국 상속세 최고세율 외
    세계에서 사라져 가는 상속세

    미국 트럼프 정부는 2017년 9월 상속세 폐지와 법인세 인하를 포함한 파격적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기업 투자에 활력을 불어넣고 창업 붐을 일으키기 위한 정책 변화였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빨리 불황 터널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상속세가 무겁기로 유명한 일본도 방향을 틀었다. 아베 정권은 작년 중소기업의 가업 승계를 촉진하는 세금 우대 방안을 추진했다. 경영권 승계 시 상속 주식 전체에 대한 과세를 유예하기로 했다. 폐업 위기에 처한 130만 중소기업 구출 작전을 펼친 것이다. 포르투갈과 슬로바키아는 2004년, 스웨덴은 2005년, 노르웨이와 체코는 2014년 상속세를 아예 폐지했다. 세금을 더 걷겠다고 상속세를 그대로 부과했다가는 기업들이 몰락해 실업 대란이 발생하고 재정과 복지까지 무너져 나라 경제가 존망 갈림길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가업 승계를 부(富)의 대물림으로 보는 질시·반목보다 고용 창출과 기술 발전, 경제성장이라는 합리성의 눈으로 상속세 폐지를 선택한 것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5회원국 가운데 17곳은 직계비속이 승계하는 기업에 상속세를 한 푼도 부과하지 않고 있다. 다른 열세 나라는 세율을 크게 낮추거나 큰 폭의 세금 공제를 통해 사실상 상속세 부담을 거의 없애다시피 했다. 과거엔 감세 혜택을 받으려면 일정 기간 고용을 유지해야 하는 등 요건을 갖춰야 했는데 최근엔 이런 규제도 사라지는 추세다. 최고 세율이 45%인 프랑스는 직계비속 상속 시 세율 인하와 공제 혜택을 적용해 기업이 실제 부담하는 세율을 11%로 낮췄다. 벨기에와 독일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실제 최고 세율을 3~4.5% 수준으로 떨어트렸다. 최고 세율이 20~40%인 스페인, 아일랜드, 네덜란드 등도 공제 혜택을 대폭 늘려 실제론 2~4%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주요국이 상속세 부담을 없애거나 크게 덜어주는 이유는 명백하다. 상속세 유지보다 상속세 폐지로 얻는 국가적 이득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황금 알 낳는 거위(기업)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은 세금 정책은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기업 승계 과정 세 부담 최소화해야 강소 기업 많아져"

    우리나라 상속세가 유독 무거운 것은 뿌리 깊은 반(反)부자 정서를 의식해 정부와 국회가 과감히 세율에 손을 대지 못하기 때문이다. 1934년 일제강점기에 도입된 상속세는 1950년대 초 최고 세율이 무려 90%에 달한 후 조정 과정을 거쳤지만 7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최고 세율 65%가 유지되고 있다. 우리나라 상속세 수입은 연 5조원 안팎으로 전체 세수의 1~2% 정도에 불과하다. 올해 일자리 예산(23조원)의 4분의 1 수준이다. 세수 차원의 실익은 거의 없고, 기업가 정신을 훼손하고 기업 성장을 가로막는 국가적 손실이 너무 크다. 전문가들은 기업 승계 과정에서 세 부담을 최대한 줄여주고 나중에 대주주가 기업을 처분할 때 과세하는 '선(先)승계-후(後)과세'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한다. 선진국 대부분이 이 방식을 채택해 기업 승계를 촉진하고 있다.

    조병선 한국가족기업연구원 원장은 "한국은 상속세 문제로 사장(死藏)되는 아까운 기업이 많다"면서 "세계 추세에 맞게 기업을 살리는 쪽으로 상속세를 개선하는 방안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50년 넘긴 장수기업 절반이 'CEO 고령화' 걱정]

    한국 장수기업 오너의 고령화
    우리나라 기업들은 '최대주주의 급속한 고령화'라는 넘어야 할 산이 또 있다.

    지난해 8월 현재 창업 50년을 넘긴 기업 1629개 가운데 오너 겸 대표(CEO)의 나이가 70세 이상인 기업이 18%이다. 60세 이상인 경우는 49%나 된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고령화가 진행되는 현상과 비례해 기업 오너 연령도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50년 이상 된 기업 중 중소기업이 80%(1300여 곳)를 차지하고 있어 중소기업 대표의 고령화와 상속세 부담이 맞물리는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자칫 수많은 중소기업이 상속세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경영권 승계에 실패하는 사태를 맞을 수 있다. 기업이 승계에 실패하면 그만큼 일자리도 사라진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은 일본·독일에 비해 장수 중소기업이 턱없이 부족하고, 이것이 나라 경제의 기초를 약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일본은 100년 이상 된 기업이 3만3000곳이 넘는다. 독일은 200년 이상 된 기업만 1500개가 넘는다. 이 나라들의 부품·소재 중소기업들 중에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곳이 수두룩하다. 강소(强小)기업들이 널리 포진한 나라는 위기가 닥쳐도 경제가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다. 중소기업연구원 신상철 수석연구위원은 "급속한 고령화로 우리나라 장수 기업 대표들이 동시에 기업을 물려줘야 하는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안정적 기업 승계를 위한 과세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16/201901160360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