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美청문회는 장관 후보 손자가 방청하는데… 한국은 미성년자관람불가

조선일보
  • 박돈규 기자
  • 입력 2019.03.30 03:00

    인사청문회 이대로 괜찮나

    인사청문회 이대로 괜찮나 일러스트
    일러스트= 안병현
    토끼몰이, 철벽 수비, 답정너….

    지난 25~27일 생중계된 인사청문회 풍경이다. 야당은 의혹을 폭로하며 장관 후보자를 궁지로 몬다. 여당은 묻지 마 엄호로 그를 감싼다. 후보자는 '송구·반성·사과' 청문회 3종 세트로 돌려 막으며 하루 종일 너덜너덜해진다. 하지만 어쩌랴. 눈을 질끈 감고 견뎌야 벼슬길이 열린다. 여기까지는 낯설지 않은 모습인데 이번엔 "(제기된 의혹을) 다 알고 지명했다"는 청와대 대변인의 말이 청문회 무용론(無用論)에 기름을 끼얹었다. 답정너,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응답만 하면 돼'라는 식이다.

    인사청문회법은 2000년에 도입됐다. 삼권분립이 엄격한 대통령제 국가에서 고위 공직 후보자의 자질과 업무 능력, 도덕성을 검증하는 제도다. 어쩌다 이런 인물들만 골랐나 싶을 만큼 후보자들은 의혹투성이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어느 분야를 잘 알고 능력도 있고 행정도 잘할 사람은 많은데 그 상당수는 공직을 피한다"며 "인생을 탈탈 터는 청문회는 정말로 역량 있는 사람은 배제하고 맷집이 좋거나 감투 욕심쟁이만 남기는 꼴"이라고 말했다.

    올해로 20년째지만 미성숙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업무 적합성과 자질에 대한 검증은 사실상 뒷전이다.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논문 표절, 막말, 탈세, 이중국적, 특혜 채용…. 인사청문회는 후보자의 도덕적 결함을 들추느라 낯 뜨겁고 험악해진다. 청와대는 국회가 '부적격(No)'이라고 해도 임명을 강행한다. 야당이 여당 되고 공수가 바뀌어도 오십보백보다. 국민은 피로하고 무력하다. 인사청문회, 이대로 괜찮은가?

    직무와 연관된 부도덕이 문제

    지난 1월 15일 미국 의회 상원 인사청문회장에서는 여덟 살짜리 소년이 눈길을 붙잡았다. 윌리엄 바 미국 법무장관 지명자의 손자 리엄이 방청석 맨 앞자리에 앉아 청문회를 지켜본 것이다. 바 지명자는 이날 손자를 "미래의 법무부 직원"이라고 소개해 웃음을 안겼다. 리엄이 '할아버지 사랑해요. (청문회가) 너무 재미있어요'라고 쓴 노트 사진도 화제를 모았다. 워싱턴포스트는 "청문회의 깜짝 스타는 그 누구도 아닌 리엄이었다"고 전했다.

    윌리엄 바(왼쪽) 미국 법무장관 지명자의 손자 리엄(오른쪽)이 지난 1월 미 상원 인사청문회장 방청석 맨 앞자리에서 할아버지의 청문회를 지켜보고 있다.
    윌리엄 바(왼쪽) 미국 법무장관 지명자의 손자 리엄(오른쪽)이 지난 1월 미 상원 인사청문회장 방청석 맨 앞자리에서 할아버지의 청문회를 지켜보고 있다. / EPA 연합뉴스
    한국 인사청문회는 '미성년자 관람 불가'다. 행여 아이들이 볼까 무섭다. 핏대를 세우며 몰아붙이고 낯 뜨거운 폭로와 험담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후보자들의 말 바꾸기는 역겹고 영혼 없는 사과도 신물 난다. 가문의 영광은커녕 가문의 굴욕을 참아야 하는 자리에 가족을 부른다고? 두고두고 욕먹을 일이다.

    청와대는 2017년 11월 고위 공직 후보자 인사 검증 7대 원칙을 세웠다. 병역 기피, 세금 탈루, 불법적 재산 증식, 위장전입, 연구 부정행위, 음주운전, 성범죄 등이다. 위장전입은 '청문회 제도가 장관급까지 확대된 2005년 7월 이후 부동산 투기 또는 자녀의 선호 학교 배정을 목적으로 2회 이상 한 경우'로 변경했다. 현실을 인정하고 기준을 낮춘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2기 내각' 후보자들은 저마다 이 7대 배제 기준에서 몇 가지 이상의 의혹을 받고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기준이 비현실적이다. 그동안 안 걸린 사람이 몇이나 있느냐"며 "직무와 관련된 치명적 결함에만 돋보기를 들이대야 한다"고 말했다. 2006년 논문 이중 게재로 취임 후 10여일 만에 물러난 김병준씨 사례처럼, 교육부 장관이 논문을 표절했다면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김형준 교수는 "미국 클린턴 행정부 때 법무부 장관 내정자는 불법체류자를 가정부로 고용한 게 드러나 사퇴했다"며 "우리도 예컨대 국토부 장관 후보자가 부동산 투기를 했다면 아예 인사청문회장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더 엄격해져야 한다"고 했다.

    보통 사람은 털면 먼지가 난다. 그런데 청문회만 가면 '사돈의 팔촌까지' 털린다. 어떤 후보자는 사촌의 해외여행 기록과 경비 출처, 사돈의 성적증명서까지 요청받았다고 증언했다. 자질구레한 도덕성에 시비를 거느라 정작 더 중요한 업무 적합성과 자질에 대한 검증을 소홀히 하곤 한다.

    낙마의 정치학?

    한국행정연구원과 민주연구원(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은 2017년 말 인사행정학회 학술대회에서 '인사청문회와 낙마의 정치학'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2000년부터 역대 정부에서 청문회를 거친 공직 후보 341명의 사례를 전수조사했다. 낙마자는 29명이었다.

    조사 시점인 2017년 9월까지 낙마율은 갓 출범한 문재인 정부(15.2%)에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추천자 33명 가운데 5명이 낙마했다. 김대중 정부(12.5%), 박근혜 정부(9.2%), 이명박 정부(8.9%), 노무현 정부(3.7%) 순이었다. 낙마 사유로는 '부동산 투기'가 37.2%로 가장 많았고 '금전적 부당이익' '거짓말·위증' '탈세' '가치 논란' 등으로 조사됐다. 이번 정부에선 그동안 김기정 안경환 조대엽 박기영 이유정 김이수 박성진 김기식 등 차관급 이상 고위 공직 후보 8명이 낙마했다.

    하지만 출범 1년이 지난 뒤로 현재까지는 '낙마 제로(0)'다. 국회가 '부적합' 의견을 내도 지명을 철회하지 않았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조명래 환경부 장관, 조해주 중앙선관위 상임위원 등을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했다. 부실 검증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청와대는 "결정적인 하자는 없다"고 응수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유은혜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인사청문회 때 많이 시달린 분들이 오히려 일을 잘한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그런 사례가 실제로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김병민 경희대 교수(행정학)는 "이젠 대통령 지지율이 하락세인데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인사를 밀어붙이면 큰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우려했다.

    바람직한 개선 방향은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야당은 "정신 상태가 노멀(normal·정상)이 아니다"라고 공격했다. 반면 여당은 "천연 다이아몬드처럼 깨끗한 후보"라고 그를 두둔했다. 김형준 교수는 "인사청문회는 국회가 정부를 견제하라고 만든 장치인데 집권당이 되면 그 취지조차 망각하는 것 같다"며 "여야가 바뀐다 해도 청문회를 우습게 보면 안 된다"고 했다.

    김대중(DJ) 정부 때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김중권씨는 "국회 청문회에서 어느 후보가 불가하다는 결론을 내면 청와대가 따라야 옳다"며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사례를 들었다. 2001년 8·15 민간 방북단의 친북 활동이 문제가 돼 국회에서 임동원 장관 해임건의안이 통과됐다. 법적 강제성은 없지만 DJ는 그를 즉각 경질했다. 김중권씨는 "요즘처럼 북한 문제에 심혈을 기울인 때였지만 국회 의사를 존중한 것"이라고 했다.

    인사청문회에서 살아남은 후보도 거의 예외 없이 도덕적으로 큰 상처를 입은 채 부임한다. 지나치게 부도덕해 공직을 수행할 수 없는 사람은 걸러내야겠지만 관행적인 탈법까지 국민이 일일이 다 알 필요는 없다는 견해도 있다. 업무 역량과 자질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점수제를 도입해 위장전입, 다운계약서 등에 감점을 부과하고 총점이 70점 이하면 자동 탈락시키는 방식도 대안으로 꼽힌다.

    장덕진 교수는 "청와대나 여당만이 아니라 야당도 현행 인사청문회의 제도적 빈틈을 이용하고 있다"며 "국회가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아도 임명을 강행하는 대통령에게 '지저분한 기록' 을 쌓게 만든다"고 말했다. 일종의 공모(共謀)다. 여당일 때 다르고 야당일 때 다르다면 국민이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자유한국당은 "장관 후보자 7명 모두 자격 미달"이라고 했다. 한국행정연구원 서원석 전문연구위원은 "미국 인사청문회처럼 청와대가 사전에 검증한 자료를 국회에 제출하고 청문회 기간도 대폭 늘리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29/201903290186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