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는 通한다] 돈 벌어도 불행한 아시아… 韓·中·日, 불신이 낳은 '幸福의 역설'

  •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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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4.08.22 03:00

    [2] 덜 행복한 아시아

    本紙·서울대아시아연구소 기획

    -불신 탓에 '도약의 문턱' 맴돌아
    韓 '세월호'후 정부 신뢰 추락
    日 '후쿠시마 原電'으로 불신
    中도 '관료 부패' 불신감 커져

    -인도 등 저발전 사회도 불신 심각
    싱가포르같은 신뢰·투명성이 아시아 모델 성패를 좌우한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 주요 국가들은 소득 수준이 비슷한 타(他) 대륙 국가보다 행복도가 떨어졌고, 그것은 사회의 투명성 부족에 따라 공동체에 대한 신뢰도가 낮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조선일보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가 공동 조사한 결과, 한국은 1인당 GDP(국내 총생산·2012년 기준)가 2만1562달러로 이스라엘(2만2606달러)과 거의 같았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행복감은 이스라엘(7.30)이 한국(6.27)보다 높았다. 국가 경쟁력도 이스라엘(73.25)이 한국(69.65)보다 높았다. 한국의 1인당 GDP는 이스라엘의 95.4% 수준이지만 국민 행복감과 국가 경쟁력은 각각 이스라엘의 85.9%와 95.1%에 그쳤다. 중국과 일본도 사정이 비슷했다. 중국은 소득 수준이 비슷한 알제리보다 행복감, 신뢰도가 모두 낮았고, 일본도 호주·벨기에 등 소득 수준이 비슷한 나라보다 행복감과 투명성이 모두 뒤처졌다.

    북유럽 등 타 대륙인들의 행복감이 아시아인들보다 훨씬 높은 이유는 그들의 높은 소득 수준 때문만은 아니다. 경제적 풍요와 더불어 개방적 민주주의, 복지국가를 지탱해주는 풍부한 '사회자본'을 가졌기 때문이다.

    투명성과 신뢰도는 동시 진행형도 아니다. 예를 들어 고도성장을 이룬 중국·베트남·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국가들은 '독재형 발전'으로 사회적 투명성은 낮지만, 아직 정부에 대한 신뢰 수준은 높다. 그에 비하면 신뢰와 투명성이 모두 결핍된 필리핀·인도·이란·방글라데시 등 아시아 저발전 국가들은 '정글형 갈등 사회'다. '족벌 부패'로 경제적 불평등과 불신이 양산되었고, 이를 해결할 정부 능력은 취약하기 때문이다.

    한때 모범적 고도성장을 이룬 한국과 대만은 현재 '전환의 계곡'에 머물러 있다. 민주화를 통해 권위주의를 청산했지만,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와 권위까지 빠르게 실종되었고 투명성은 제자리걸음이다. 지난 4월 세월호 참사의 근본 원인도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 구조에서 찾아진다. 30여년에 걸친 경제 발전에도 국민의 생활 만족감이 떨어지고 자살률은 급등했다는 점에서 '성장의 역설'이, 성공적 민주화에도 정치에 대한 불신과 냉소는 더 커졌다는 점에서 '민주화의 역설'이 고도성장을 이룬 한국과 대만의 계곡을 감싸고 있다.

    2011년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와 도쿄전력의 은폐 시도로 국민의 신뢰가 급감한 일본의 사례는 매우 시사적이다. 도쿄전력 수뇌부나 담당 공무원들 모두 특정 학교 출신이다 보니, 국민 안전을 위한 감시는 무력화되고, '원자력 마을'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유착이 성행했다. 한때 '전환의 계곡'을 벗어난 듯했던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각 기관에 대한 신뢰도 추락은 충격적이다.

    아시아 주요 국가 1인당 GDP와 국민 행복감 비교. 아시아 주요 국가의 투명성과 국가 경쟁력.
    '포용적 발전'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는 중국 또한 최근 들어서는 빠른 신뢰 추락을 경험하고 있다. 더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시진핑 주석은 '부패와의 전쟁'이라는 칼을 빼들었다. 중국 또한 '전환의 계곡'에 진입한 것이다.

    북유럽 국가들이 처음부터 최상위권의 신뢰와 투명성을 쌓은 것은 아니었다. 과거 사회정치적 격동기를 거친 끝에 노사(勞使)와 좌우(左右)가 '사회적 타협'의 길을 찾아낸 덕분이다. 노사 갈등이 끊이지 않던 스웨덴에서는 1938년 살트셰바덴 협약이 계기가 됐다. 서로 약속한 것은 투명한 제도화를 통해 지키는 방식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1994년 발트해에서 침몰해 852명의 사망자를 낸 에스토니아호 참사는 피해 규모에서는 세월호보다 훨씬 심각했지만, 사고 원인이나 대응 방식에서는 우리와 격(格)이 달랐다. 이 사고를 두고 스웨덴과 핀란드 등 관련 국가들은 지체 없이 사고의 전말을 정확하고 상세하게 밝혔고, 피해 가족들이 만족할 수 있는 신속한 대책과 장기적 제도 보완책을 마련했다. 재해에 관한 모든 정보를 국민에게 적극적으로 알렸기에 사회적 후유증은 최소화됐다.

    아시아 모델의 향후 성패는 신뢰와 투명성 확보에 달렸다. 아시아의 유전자를 가지고도 높은 투명성과 국가 경쟁력을 달성한 싱가포르는 '멸균 사회'라는 한계에도 여전히 좋은 연구 대상이다. 북유럽 국가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전환의 계곡(valley of transition)

    더 높은 산에 올라가기 전에 만나는 계곡이란 뜻으로 사회나 기술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급격한 사회·경제적 비용 증가를 말한다. 한국과 대만 등에서 정치적 성장이 경제적 성장을 따라잡지 못해 생기는 사회적 혼란이 대표적 사례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