臨政法統論' 10년간 편승한 좌파 역사학계… 임정 100주년 다음날, 임정 비판한 아이러니

조선일보
  • 이선민 선임기자
  • 입력 2019.04.15 03:00

    당초부터 임정에 부정적이었지만 보수정권 땐 '1919년 건국론' 편승
    광복군에서 국군의 뿌리 찾는 등 文 정부, '임정법통론'에 기대자 "남북대결 냉전 논리"라며 반발

    좌파 역사학자들이 '임정법통론'을 비판하고 나섰다는 소식을 들은 관련 학자들의 반응은 "올 것이 왔다"였다. 당초부터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부정적이었던 좌파 역사학계는 보수 정권 시절 우파 내에서 '1948년 건국론'과 '1919년 건국론'이 대립하자 정권을 비판하기 위하여 국민적 호소력이 큰 '임정법통론'에 편승해 후자를 지원했기 때문에 좌파 정권이 들어서면 원래 입장으로 돌아갈 것으로 예상됐다는 것이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역사 정치'가 그들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전개되자 브레이크를 걸고 나왔다는 해석이다.

    ◇"'1919년 건국론' '1948년 건국론' 모두 대한민국 정당성 전제" 비판

    좌파 역사학계의 생각은 12일 역사문제연구소·역사학연구소·한국역사연구회 학술대회의 이용기 한국교원대 교수 발표문에 담겨 있다. 그는 "(대한민국 건국 시점 논쟁은)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을 전제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민족·민주화와 반공·산업화의 어느 쪽에서 찾느냐는 논쟁"이라며 "임정법통론도 역사전쟁 과정에서 신성화되어 대한민국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논리로 작동하게 됐다"고 말했다. '1948년 건국론'을 반박하는 임정법통론 역시 분단 상황에서 남한의 배타적 정통성을 주장하는 체제 경쟁 논리가 돼 버렸다는 주장이다. 이기훈 연세대 교수는 "건국절론(論)은 반(反)역사적이고 폭력적이었지만 건국절 비판론도 기존의 민족주의 정통론을 다시 주장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며 '1948년 건국론'과 '1919년 건국론'을 싸잡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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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 12월 19일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대한민국임시정부 환국 봉영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서울 도심을 행진하고 있다. 시가지에 설치된 대형 플래카드와 운집한 군중이 29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임정에 대한 민족적 기대를 보여준다. 이 행사에는 15만명의 인파가 몰렸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용기 교수는 '임정법통론'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독립운동사 연구자를 실명 비판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존재를 인정하면 민족의 정통성이 대한민국에 있다는 것,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괴뢰'라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난다"는 한시준 단국대 명예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는 "남북 대결 의식을 고취하는 냉전적 논리를 강화한다"고 공박했다. "통일국가를 이루게 되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대한민국 정부에 이어) 세 번째의 대한민국이 될 것"이라는 김희곤 안동대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는 "(통일이) 남북한의 지양(止揚)으로서 민족국가 완성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확장으로 생각하게 만든다"고 공박했다.

    ◇10년 넘게 '임정법통론' 이용하다 임정 100주년 다음 날 버려

    좌파 역사학자들은 민중사학이 대두한 1980년대 이래 임정이 독립운동 단체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1987년 헌법 전문에 '임정 법통 계승'이 들어가자 "임정에 대한 평가마저 정치적 판단에 의해 제약받게 됐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2008년 2월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을 추진하자 그해 8월 "'건국 60년'이란 말은 '임정 법통 계승'이라는 현행 헌법에 정면 배치된다"는 비판 성명에 이이화 전 역사문제연구소장,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등 좌파 역사단체 원로가 이름을 올렸다. 2016년 8월 박근혜 정부의 역사 인식이 "'임정 법통 계승'이라는 대한민국의 정체성마저 부정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성명에는 강만길·서중석·안병욱 등 좌파 원로 역사학자들과 이번 학술회의를 공동 주최한 좌파 역사학계의 3개 단체가 서명했다.

    전향 선언도 없이 '임정법통론'을 주도하는 듯한 인상마저 주던 좌파 역사학계가 다시 돌변하며 본래 모습을 드러낸 것은 문재인 정부가 국군의 뿌리를 광복군에서 찾는 등 역사 정치에'임정법통론'을 이용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치적 필요에서 임정법통론을 활용하려는 청와대에 이의를 제기하고, '1919년 건국론'에 입각한 전시 개편을 추진 하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도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취임 후 '건국 100주년'을 강조하던 문재인 대통령은 임정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북한과 정상회담을 가진 후에는 사용하지 않지만 임정법통론을 따르는 행보를 보여왔다. 강력한 지지 기반인 좌파 역사학계의 반발에 부딪힌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관련된 핵심 역사 쟁점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15/20190415000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