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官피아 자리에 政피아] [下] "세금 들여 수십년 키운 人材… 관료 출신이라고 배격하면 국가 손실"

  • 김정훈 기자
  • 박유연 기자

  • 박승혁 기자

  • 입력 : 2015.02.02 03:04

    [민·관·학계 전문가 해법]

    ①관료출신 무조건 배격 말라 - 자리에 맞는 사람 찾는 適所適材 인사가 중요
    ②퇴임후에도 책임 물어라 - 책임없으니 너도나도 낙하산… 주민소송제 등으로 견제를
    ③형식적 공모절차 없애라 - 어떤 절차로 뽑는지 몰라… 독립적 인사위원회 필요
    ④공기업 줄이는 게 급선무 - 민영화할 곳은 빨리 민영화… 낙하산 자리 자체를 줄여야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공공기관과 금융회사의 요직을 정피아(정치권 인사와 마피아의 합성어)가 대거 장악하고 있다. 관피아(관료 출신 인사들)가 못 가게 된 자리를 정피아가 속속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성 없는 정피아 출신 인사들은 강도 높은 개혁으로 효율성을 높여야 할 공공 부문의 경쟁력을 더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피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경제계 원로와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①관료 출신 무조건 배제 말라

    일방적인 '관피아 배격론'은 한국 사회의 핵심적인 인재 집단 중 하나를 버리고 가겠다는 태도에 불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민간 출신으로 인천공항공사를 잘 경영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채욱 CJ 부회장(전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수십 년간 세금으로 키웠는데 공무원 출신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제하는 것은 국가적인 손실이다. 경영 능력이 있는 사람을 선발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세종시 정부 세종청사 기획재정부 앞에서 전국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공공기관에 대한 낙하산 인사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세종시 정부 세종청사 기획재정부 앞에서 전국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공공기관에 대한 낙하산 인사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세월호 사건 이후 전문성이 결여된‘정(政)피아’낙하산들이 공공기관에 줄줄이 내려앉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피아의 폐단을 막으려면 투명한 선임 절차와 손실 발생 시 철저한 책임 규명 등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진단한다. /뉴시스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관료는 사명감을 갖고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해 본 집단 중 한 곳"이라며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출신 성분에 상관없이 전문성과 열정이 있는 사람을 공공기관장에 임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도 "관피아건 정피아건 출신에 상관하지 말고 경력이나 능력 면에서 가장 적합한 인물을 등용하면 아무 문제 될 게 없다"고 지적했다.

    조준희 전 기업은행장은 "적재적소(適材適所)가 아닌 적소적재(適所適材)의 인사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적재적소는 일단 인재(사람)를 찍은 뒤 어딘가로 보내는 것이고, '적소적재'는 자리에 맞는 사람을 찾아낸다는 뜻이다. 조준희 전 행장은 "출신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자리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찾아서 인사를 해야 성공할 수 있다"며 "관료 출신이 가장 적합하다면 주저하지 말고 임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휘 미소금융재단 이사장(전 우리은행장)도 "능력과 헌신할 수 있는 자세를 갖췄다면 출신을 가리지 않고 써야 한다"며 "정권 창출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여부가 아니라 능력에 따라 인사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②CEO에 책임 묻는 시스템 필요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월급만 받고 책임을 지지 않으니 관피아건 정피아건 아무나 부담없이 내려온다"며 "민간기업의 주주들이 손해를 끼친 CEO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처럼, 경영을 잘못한 공공기관장에게 정부가 반드시 손해배상을 제기하도록 법제화하면 전문성 없는 인사들이 공공기관장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역 공공기관의 경우 주민소송제를 도입하고, 손해배상 책임을 크게 부과하면 능력 없는 정피아는 스스로 공공기관에 얼씬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권오규 전 경제부총리도 "낙하산으로 내려왔다고 하더라도 열심히 일하면 된다"며 "그러려면 퇴임 후에도 강력하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③인사시스템 만들어 투명하게 걸러내라

    이채욱 CJ 부회장은 "찍어서 형식적으로 공모 절차를 통해 선발하는 제도가 아닌 전문적인 인사 검증기관 내지 선발기관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 한양대 교수는 "좀 더 투명하고 독립적인 인사 위원회를 만들어서 공공기관 임원 후보를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늘어나는 공공기관 수. 작년 4월 이후 임명된 정피아 현황. 작년 4월 이후 내려간 정피아들, 무슨 일 맡고 있나.
    정피아에게도 기회는 주되, 전문성이 덜 요구되는 자리로 한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외국에서도 선거가 끝나면 도와줬던 사람에게 자리를 주는 문화가 있다"며 "민원사무, 홍보 등은 정치인 출신이 다른 민간인보다 더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이므로 이런 곳엔 정피아를 보내는 것이 가능하고 인사위원회 등을 통해 정피아에 어울리는 자리를 선별해 놓는 게 좋다"고 말했다. 강 전 장관은 반면 "부정부패를 감시해야 하는 감사 자리는 투명한 인사 시스템을 만들어서 절차대로 적합한 인물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오규 전 부총리는 "정치권이 아니라 해당 분야를 가장 잘 아는 주무부처 장관들이 실질적인 인사권을 갖고 있으면 인사 왜곡 문제를 많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④민영화로 공공기관 줄여라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피아를) 내려 보낼 수 있는 공공기관과 공기업 수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급선무"라고 진단했다. 민간과 경쟁하는 부분이 많은 공기업 중 민영화해도 되는 것들은 최대한 민영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숫자는 늘어나는 추세다. 2011년 285개였던 공공기관은 올해 316개로 늘었다.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공공기관 중에는 민간 기업과 비슷한 일을 하는 곳이 많다"며 "민영화할 곳은 빨리 민영화해서 전반적인 효율성을 높여야 하고, 이런 식으로 민영화를 계속하면 자연스레 정피아가 갈 수 있는 자리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제언에 참여한 민·관·학계 전문가(가나다순)]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권오규 전 경제부총리, 김상조 한성대 교수,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 성태윤 연세대 교수,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이 영 한양대 교수, 이종휘 미소금융재단 이사장(전 우리은행장), 이채욱 CJ 부회장(전 인천공항공사 사장),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전 산업자원부 장관), 조준희 전 기업은행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