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2000만 납세자여 분노하라(Be Ang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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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12.07 22:20

이 준·논설위원

매년 3월 3일은 '납세자의 날'이다. 국세청은 이날 세금을 많이 낸 사람을 뽑아 모범납세자로 표창한다. 하지만 '납세자의 날'에 세금 많이 낸 사람에게 상을 주는 발상은 문제가 있다. 세금을 거둬가는 쪽의 관점이기 때문이다. 세금을 내는 쪽에서 보면 '납세자의 날'은 예산이 국민의 돈임을 확인하고 정부가 그걸 한푼이라도 더 아껴쓰겠다고 다짐하는 날이어야 옳다. 대한민국은 징세자의 권리만 있고 납세자의 권리는 실종된 나라다.

정부는 올해 기금을 빼고 200조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을 국회에 냈다. 국민에게 200조원짜리 세금고지서를 발부한 셈이다. 그러나 고지서 목록을 두 눈 부릅뜨고 뜯어봐야 할 국회는 예산 심의를 뒷전으로 미룬 채 정쟁에 빠져 있다. 지난 2일이 예산안 처리 시한이었지만 심의는커녕 예결위 일정조차 못 잡고 있다가 여론에 떼밀려 이제서야 여야가 마주 앉았다. 보나마나 이러다 연말 며칠 남기고 막판에 정치적 흥정으로 예산 몇천억쯤 깎는 시늉을 하고 끝낼 게 뻔하다. 불요불급한 중복·선심 예산, 지역구와 업자들 이익을 대변하는 나눠먹기·끼워넣기 예산이 올해도 고스란히 국민들 어깨 위에 얹힐 것이다. 의원들은 제 집에 날아오는 세금고지서도 그렇게 대충 처리하는지 묻고 싶다.

미국은 매년 1월 연방정부가 다음 해 예산안 제안서를 의회에 제출한다. 그러면 상·하원 예산위가 청문회를 열어 의회예산처가 낸 검토보고서를 참고해 4월까지 예산 총액과 분야별 세출 한도를 정한다. 상·하원 상임위는 이를 가지고 9월까지 분야별 예산을 심의해 10월 1일 예산안을 법으로 확정한다. 사실상 일년 내내 예산을 붙들고 씨름하는 셈이다. 더욱이 상·하원이 따로 예산안을 짠 뒤 양원 합동위원회에서 하나로 합쳐 최종 예산안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이중 삼중의 '교차심의'가 이루어진다.

대한민국 국회가 예산을 심의하는 기간은 길어야 60일이다. 정부가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인 10월 2일까지 예산안을 제출하면 국회는 12월 2일까지 처리를 끝내게 돼 있다. 그러나 국회가 10월 한달을 국정감사와 대정부 질문으로 보내는 탓에 실제 예산심의는 30~40일에 불과하다. 올해처럼 국회가 파행을 계속하면 그마저 더 줄어든다. 국회의 본업은 국민 세금을 지키는 일이다. 그걸 팽개친 우리 국회는 국민의 대표이길 포기한 사당(私黨)의 무리일 뿐이다.

120만 회원을 둔 미국 최대 납세자 모임 CAGW(Citizens Against Government Waste)의 전화번호는 'Be Angry'다. 국민 혈세를 함부로 낭비하는 정부와 의회에 대해 분노를 느껴야 한다는 뜻이다. CAGW의 모태가 된 그레이스 위원회는 1980년대 레이건 정부 시절 3년 동안 연방정부의 비효율과 낭비를 속속들이 파헤쳐 2만1000쪽 47권짜리 보고서를 만들었다. 26센트짜리 나사를 91달러에, 7달러짜리 망치를 436달러에 구매한 정부의 어처구니없는 예산 낭비를 폭로해 미국 국민의 분노에 불을 붙였던 그 보고서다. CAGW는 매년 '피그북(돼지책)'을 펴내 의원들의 정부보조금(돼지고기) 나눠먹기 실태도 낱낱이 고발한다. 미국의 전국납세자연합(NTU)은 의회에 초점을 맞춘 예산 감시 운동을 20년째 벌이고 있다. 한 해 2000여건에 달하는 의원 입법의 향후 5년간 소요 예산을 추적해 낭비 정도에 따라 A부터 F까지 등급을 매겨 의원별 성적표를 공개한다.

우리도 이제 정부가 들이미는 고지서대로 고분고분 세금만 낼 일이 아니다. 예산을 주인 없는 공돈쯤으로 여기는 공무원과 국회의원을 향한 2000만 납세자의 분노를 모아 행동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