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난맥' 외교부] [下] 외교관, 나라 걱정 대신 인사 걱정에 잠 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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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9.13 03:02

'인사 민원' 국제우편 쌓여… "인사 기준 알 수 없어… 잊히는 것 아닌가 불안"
연줄·파벌이 인사 좌우… 외시·非외시로 나뉘고 다시 '귀족·평민' 갈라져
해외공관 발령이 갈림길… '워싱턴 스쿨' '재팬 스쿨', 평생 출세에 영향 미쳐

외교부에선 인사철이 되면 장관실에 해외에서 근무하는 외교관들이 보낸 편지가 쌓인다. 장관의 안부를 묻는 내용으로 시작하지만 결국엔 자녀의 교육, 자신의 희망 근무처로 편지가 마무리되는 인사 민원이다. 편지를 읽다 보면 그 애절함에 눈물이 날 정도라고 한다. 이런 인사 민원 편지는 장관뿐 아니라 차관과 인사 담당 실·국장에게 다연발로 뿌려진다. 한 외교관은 "인사가 어떤 기준으로 이뤄지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인사권자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다. 해외에 근무하다 보면 혹시 내가 잊히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도 있다"고 말했다. 일부 외교관들이 해외에서 나라 걱정보다는 자신의 인사 걱정에 잠을 설치고 있다면 이를 납득할 국민은 별로 없다.

침통한 외교부 직원들… 유명환 전 외교부장관의 딸 특례채용 파문에 휩싸인 외교부 직원들이 지난 8일 서울 세종로 외교부청사 대강당에서 열린 직원조회에서 신각수 제1차관의 인사말을 심각한 표정으로 듣고 있다. /조인원 기자 join1@chosun.com

외교부 인사의 난맥상은 이번에 문제가 된 신규 채용보다는 외교부 내부의 인사 운용으로 들어갈수록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채용문제로 만신창이가 된 외교부 간부들에 대해 젊은 외교관들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외교부 인사의 폐쇄성과 불투명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외교부에는 입부(入部)방식에 따라 크게 외시 출신과 특채나 경력직 등 비(非)외시 출신으로 나뉘고, '순혈주의'라는 비판을 받는 외시 출신 내부도 배경과 연줄에 의해 '귀족'과 '평민'(한 외교관의 표현)으로 계층이 또 나뉜다.

입부 7~8년차에 이뤄지는 첫 해외 공관 발령 인사는 외교관 경력에 중요한 갈림길이 된다.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미국 워싱턴이나 뉴욕, 일본 도쿄 등 핵심 공관에서의 근무가 평생 경력으로 남아 출세에 영향을 미친다는 평가도 있다. 한 외교부 직원은 "워싱턴에서 보는 것과 후진국에서 보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당연히 워싱턴에 가려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전직 외교장관의 자녀 두 명 모두 주미대사관에서 근무했고, 전직 고위직의 자제를 워싱턴에 보내기 위해 그해 주미대사관 정원을 늘렸다는 얘기도 있다. 한·미관계를 다루며 엘리트 코스로 평가받는 북미국 인원 26명 중 5명이 전·현직 고위 외교관의 자녀였다. 한 서기관급 외교관은 "납득할 만한 기준으로 인사를 한 뒤 그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워싱턴과 도쿄 등 핵심 공관 출신들은 '워싱턴 스쿨' '재팬 스쿨'이란 파벌로 분류되고, 여기에 포함되지 못하는 외교관들은 이들을 "친미파, 친일파"로 부르며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또 장관이 나온 고등학교, 대학 후배들이 요직에 배치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학연'도 출세의 중요 요인으로 작용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서로 좋은 곳에 나가려 아귀다툼을 벌이는 와중에 작년 북미국에 근무하던 송모씨가 위험지역인 아프가니스탄 지방재건팀(PRT) 근무를 자원하자 화제가 됐다. 당시 부인이 임신 중이던 송씨는 "통일 이후 북한 재건을 위해서라도 배울 것이 많다"며 홀로 아프간으로 떠났지만 다른 한편에선 "올해는 워싱턴에 정원이 없어 내년에 가려고 꼼수를 쓴 것 아니냐"는 말까지 돌았다. 젊은 외교관의 용기 있는 선택을 칭찬하진 못할망정 또 다른 '꼼수'로 보며 서로를 불신하는 풍조마저 생긴 것이다.

인사 운용의 또 다른 복마전은 특채 계약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다. 소위 '배경' 좋은 특채 출신들이 3년 계약직 근무 뒤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여기서 탈락한 계약직들에서 불만이 나오고 있다. 전직 대사들의 자녀와 친척 등 모두 4명이 올해와 작년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외교부는 최근 자체 인사개혁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인사개혁안을 준비하고 있다. TF팀은 ▲조직과 직급에 필요한 역량을 계량화하고 ▲근무 성적을 인사 고과에 반영해 인사를 실시한 뒤 ▲인사 결과를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내부 파벌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국장급 이상 간부를 계약직으로 전환하고 외부 채용을 확대하는 것도 테이블에 올려놓고 있다. 그러나 한 외교부 관계자는 "순혈주의를 깨겠다고 도입한 특채가 순혈주의 강화로 왜곡된 과정을 보라"며 "위기만 넘기면 된다는 안이한 사고를 깨려면 내부적인 큰 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