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한국을 읽는다] '민주주의 지수' 亞 1위지만 안에선 '민주' 논쟁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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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1.01 03:01

[1] 포스트 민주주의 시대의 정치
'완전한 민주국가' 첫 진입
'非민주' 성토한 좌파 곤혹…
우파도 시민민주주의 못넘어
새로운 이론 대결의 場으로

민주주의는 국내외적으로 여전히 뜨거운 논쟁적 이슈다. 2010년 영국의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167개국의 민주주의 지수를 보면 '완전한 민주국가' 26개, '결함 있는 민주국가' 53개, '민주주의와 권위주의가 혼합된 국가' 33개, '권위주의 국가' 55개였다. 해마다 각국의 자유도와 언론 자유 순위를 발표하는 미국의 프리덤하우스에 따르면 194개 국가 중 89개가 '자유로운 나라', 58개가 '부분적으로 자유로운 나라', 47개가 '자유롭지 못한 나라'로 나타났다. 1970년대에 20%였던 '자유로운 나라'는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다가 1990년을 전후해 동구권이 몰락하면서 40%대에 진입했고, 그 후 줄곧 40% 중반을 오르내리고 있다.

민주주의 문제는 결국 비(非)민주국가가 민주국가를 향해 나아가는 '민주화(democratization)'와 민주화가 된 후 민주주의의 내실을 강화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좌파가 1980년대 중반부터 이론적 대부로 삼았던 남미 출신의 미국 정치학자 길레르모 오도넬은 이를 '이행(transition)'과 '공고화(consolidation)'로 개념화했다.

한국도 제도적 민주화를 가져온 이른바 '87년 체제'의 출범 이후 정치권 및 학계가 민주주의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발전시켜오고 있다. 민주화 직후 동구권 붕괴로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졌던 좌파는 1990년대 초반부터 오도넬의 영향을 받은 '민주주의 공고화'론과 독일 시민운동 경험에 입각한 '시민사회'론을 내세우며 민주화된 사회에서 활동영역을 넓혀나갔다. 이들 이론은 사실상 변형된 사회주의론 내지 사회민주주의론에 불과해 독자적인 이론적 탐색은 별로 이뤄지지 못한 반면 현실 정치와 시민운동에서는 큰 힘을 발휘해 각종 시민운동의 정치적 파워를 키우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1998년 정치 권력을 장악한 좌파는 역설적으로 이론적 지향점을 잃은 데다가 외환위기와 글로벌화, 양극화 등에 대한 이론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내부에서도 '이론 부재(不在)'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한편 기성학계나 우파는 이에 맞설 만한 이론을 정립하지 못한 가운데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들어섰고, 이때부터 일부 우파 학자 및 좌파에서 전향한 386 시민운동가들이 주축이 돼 우파의 민주주의론 및 시민사회론 정립을 위한 모색에 들어갔다. 그 결과 뉴라이트운동이 등장했고 지금은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안병직 시대정신 이사장 등이 우파의 이론적 담론과 사회운동을 이끌고 있다. 다만 우파의 경우 국가 우위를 강조하다 보니 전통적인 시민민주주의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좌파 진영의 이론 궁핍은 전 세계적 현상이었다. 동구권 몰락은 좌파 이론가들에게 치명타를 안겼고 2001년 9·11테러는 국가와 안보의 중요성에 힘을 실으며 우파의 입장을 강화했다. 세계화에 대한 반대는 자주 새로운 이론보다는 폭력투쟁으로 이어졌다. 이론 궁핍이 종종 폭력으로 분출되는 것은 역사적 경험이었다.

2005년은 국내외적으로 좌파 진영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주었다. 오도넬의 '공고화'론을 국내에 소개했던 최장집고려대 교수는 변화된 국내 현실을 감안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저서를 내놓았다. '민주세력' 집권이 10년이 가까워지는데도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비민주적인 행태는 최 교수의 문제 제기에 눈길을 가게 만들었다. 내용으로 보면 최 교수의 문제 제기는 시민운동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정당을 통해 관철돼야 한다는 주장이었기 때문에 '민주주의 공고화'론에서 오른쪽으로 나아간 것이었다.

한편 콜린 크라우치 영국 워릭대 교수도 같은 해 '포스트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제시해 유럽 좌파 지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그가 말하는 포스트민주주의란 비민주나 반(反)민주로의 복귀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특성, 즉 자유선거, 경쟁하는 복수정당, 자유로운 공개토론, 인권, 공무의 일정 수준 투명성을 모두 갖고 있지만 정치 에너지와 활기는 민주주의 이전으로 회귀해버린 사회다." 대안으로 시민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 책은 2008년 국내에도 소개돼 좌파 이론가와 사회운동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87년 체제'에서 정권은 우파에서 좌파로, 다시 좌파에서 우파로 바뀌었다. 이명박 정권의 출범 이후 좌파는 다시 '비(非)민주' '반(反)민주'를 주장하며 새로운 민주주의론을 만들어내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좌파 정권 시절이던 2006년 31위, 2008년 28위였다가 올해 20위로 올라서 '완전한 민주국가'에 처음 진입한 2010년 한국의 이코노미스트 민주주의 지수는 좌파를 곤혹스럽게 한다.

2011년은 한국에 '포스트민주주의' 시대의 첫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 시대에 제기되는 '민주' 문제를 놓고서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는 새로운 논쟁과 대결의 지대로 접어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