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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왕(王) 비서관’이로소이다 [2010.07.09 제818호]
[특집] 민간인 사찰 파문 배후로 지목되는 박영준 국무차장…
이명박 정부의 ‘영원한 비서관’으로 인사에 강한 영향력 행사하며 실세로 군림
조혜정
‘강부자·고소영 인사’,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그림 로비 의혹, 이상득 의원의 포스코 회장 선임 개입 의혹….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터져나온 대표적인 인사 파문과 권력형 비리 의혹엔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이다. 마치 깔때기를 통과한 물이 한 방울도 튀지 않고 병의 좁은 입구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처럼, 박 차장은 파문과 의혹이 일 때마다 배후로 지목됐다. 이번엔 민간인 사찰을 주도한 국무총리실 소속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박 차장의 ‘사조직’이라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의혹의 주인공이란 말은 곧 그가 엄청난 힘을 가진 존재라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여권 인사 가운데 박 차장을 “국정 농단의 핵심” “이상득을 능가하는 힘”이라고 평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대체 박 차장은 무슨 힘을 가졌기에 ‘파문과 의혹’이라는 드라마의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일까?

» 지난 2월17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답변 내용을 논의 중인 권태신 국무총리실장(왼쪽)과 박영준 국무차장(오른쪽). 박 차장 사조직 의혹이 일고 있는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민간인 사찰을 벌였지만, 직제상 담당자인 권 실장은 아무런 보고도 받지 못했다. 한겨레 김진수 기자

경북 칠곡 출신으로 대구 오성고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한 박 차장은 1994년 당시 재선의원이던 이상득 의원 보좌관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11년 동안 이 의원을 ‘모셨던’ 그는 이 의원의 동생인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때인 2005년 서울시청으로 자리를 옮겨 정무보좌역과 정무국장을 거쳤다.

이상득 위의 이상득 비서관?

당시는 이미 이 대통령이 ‘대권 플랜’을 가동하기 시작한 때로, 이 대통령을 도우려고 이상득 의원이 박 차장을 ’파견’했던 것이다. 이때 이 대통령의 신임을 얻어, 2006년 8월 꾸린 대선캠프 ‘안국포럼’에선 일련번호 ‘AF006’을 받을 정도였다. 안국포럼의 영문 이니셜에 숫자를 붙인 이 일련번호는 안국포럼 초기 이 대통령 측근을 사칭해 일을 벌이는 사람이 없도록 고안한 일종의 관리 장치였는데, 10번 안쪽은 초기부터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참여한 최측근들이었다.




대선캠프에서 박 차장은 ‘조직’ 분야를 맡았다. 안국포럼 조직특보, 한나라당 대선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네트워크팀장 등의 직함으로 활동한 1년4개월여 동안 그는 전국 243개 시·군·구를 여섯 바퀴, 특히 한나라당 약세 지역인 호남은 수십 바퀴를 돌며 이 대통령 지지 조직을 구축했다. 그렇게 지역·직능·지식인 단체 수백 곳을 설득해 하나로 묶어낸 조직이 ‘선진국민연대’다. 박 차장은 ‘1·3·5 운동’(회원 1명이 3명씩 설득해 대선에서 500만 표 차이로 승리하자는 뜻)이라는 회원 배가 운동을 벌였고, 그 결과 2007년 12월 대선 당시 선진국민연대 등록회원 수만 463만 명에 이르렀다. 이 대통령은 ‘BBK 실소유주 의혹’을 비롯해 선거 기간 내내 터진 대형 악재에도 대선에서 530만 표 차로 이길 수 있었던 게 바로 박 차장이 조직한 선진국민연대 덕분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박 차장은 ‘숨은 개국공신’ 정도로만 알려져 있었다.

그가 ‘정권 최고 실세’로 부각된 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당선인 비서실 총괄팀장과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을 맡아 실질적인 인사권을 쥐면서부터다. 이명박 정부의 첫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 공공기관의 인선을 박 차장이 주도한 것이다. 애초 인선 작업은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이 류우익 대통령실장(현 주중국 대사), 김원용 이화여대 교수와 함께 진행했다. 그러던 중 박 차장이 선진국민연대 출신들의 ‘지분’을 요구해 그도 인선 작업에 참여하게 됐다고 알려져 있다. 인수위 막바지에 이르러선 한나라당 인사들을 정 의원보다 더 잘 아는 박 차장이 마무리 작업을 맡았다. 그런데 이 무렵 인수위에 정 의원과 가까운 인사가 많이 포진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정 의원은 완전히 인사 작업에서 배제되고, 박 차장이 칼자루를 쥐게 된다.

박 차장이 주도한 인사는 크게 선진국민연대 출신과 경북 포항 출신으로 집중됐다. 선진국민연대에선 이영희 상임의장과 정종환 충남연대 대표가 각각 노동부 장관과 국토해양부 장관에, 김성이·이봉화 중앙위원이 각각 보건복지가족부 장관과 차관에 임명됐다. 박인제 중앙위원은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이 됐고, 장영철 공동의장은 서울시체육회 상임부회장, 방판칠 상임고문은 한국토지주택공사 감사, 임동오 전남연대 대표는 한국사학진흥재단 이사장 자리를 받았다.

인사비서관실을 비롯해 청와대 곳곳에도 선진국민연대에서 활동한 ‘박영준 라인’이 포진했다. 박 차장의 사조직이란 의혹을 받는 공직윤리지원관실로부터 직접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도 선진국민연대 출신으로, 정부 출범 때 청와대에 입성했다. 이동헌 인사비서관실 선임행정관 등 행정관 10여 명도 선진국민연대에서 박 차장과 맺은 인연으로 청와대에 들어갔다.

‘왕 비서관’을 겨냥한 정두언의 난

포항 출신 인사 가운데서도 ‘박영준 라인’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주로 청와대에 몰려 있다. 대표적인 사람이 이상휘 춘추관장이다. 인수위에서 박 차장의 인선 작업을 도왔고, 이 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인사비서관실 선임행정관에 기용됐다. 공무원 사정 업무를 하는 민정수석실엔 이강덕 당시 경북지방경찰청 차장이 민정2비서관실 행정관으로 들어갔고, 한영수 법제처 부이사관은 법무비서관실 행정관으로 파견됐다. 조재정 노동부 공공기관 비정규직 실무추진단장은 인수위를 거쳐, 최종석 노동부 서기관과 함께 사회정책수석실 행정관 명함을 얻었다. 지식경제부 소속으로 미국 뉴욕 총영사관에 파견을 나갔다 돌아와 청와대로 다시 파견된 박일준 서기관도 포항 출신이다.

»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2008년 6월 박영준 국무차장이 인사 전횡을 통해 권력을 사유화했다고 맹비난했다. 2008년 6월16일 한나라당 의원총회장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할 말이 없다”며 자리를 피하는 정 의원(왼쪽 사진). 이명박 대통령과 정운찬 국무총리가 지난 6월22일 국무회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시진 왼쪽부터 한겨레 강창광 기자·청와대사진기자단

고위 공직자 중에선 ‘영포회’(포항 출신 5급 이상 중앙부처 공무원이 가입할 수 있는 모임) 회원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박대원 전 주알제리 대사는 외교부 산하 한국국제협력단 총재로, 권종락 전 주아일랜드 대사는 외교통상부 제1차관으로 기용됐다. 이병욱 세종대 정책과학대학원 교수는 환경부 제1차관에, 정장식 전 포항시장은 중앙공무원교육원장에 발탁됐다. 김석기 전 경찰종합학교장은 경찰청 차장으로 승진했다.

선진국민연대와 포항 출신 인사들의 청와대·내각·공기업 ‘접수’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그사이 박 차장은 ‘왕(王) 비서관’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하지만 정부 출범 석 달 만에 대형 ‘폭탄’이 터졌다. 인수위에서 인선 작업의 또 다른 한 축을 담당했던 정두언 의원이 두 차례 언론 인터뷰에서 박 차장을 직접 겨냥해 ‘권력 사유화’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2008년 6월7일치 <조선일보>에선 “청와대엔 전리품 챙기기에 골몰한 사람들이 있다. 장·차관 자리, 공기업 임원 자리에 자기 사람을 심는 게 전리품이요, 이권이 되는 것이다. B비서관은 이간질과 음해, 모략의 명수”라며 박 차장을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또 6월8일치 <중앙선데이> 인터뷰에선 “청와대 박영준 기획조정비서관이 제일 문제다. 보좌관 한 명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 그가 대통령을 감싸고 있으면서 모든 인사와 국정을 장악하고 있다. 모든 중요한 인사는 다 그의 손에서 이뤄진다고 보면 된다. ‘강부자’ ‘고소영’ 내각 얘기가 왜 나오나”라며 박 차장의 실명을 공개하고 나섰다.

‘정두언의 난’엔 여러 이유가 얽혀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당시 박 차장이 인사권을 틀어쥐고 무섭게 힘을 불리고 있다는 여권 내부의 전반적인 우려가 있었다. 특히 안국포럼 출신으로 한나라당 내 친이직계로 분류되는 정태근·권택기 의원은 정 의원 발언이 공개되기 하루 전인 6월6일 청와대에 들어가 박 차장을 사임시키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고 한다. 또한 정 의원 발언을 두고도 너무 거칠게 문제제기를 하기는 했지만, 정권에 타격을 줄 만한 큰 ‘사고’가 나기 전에 박 차장 행보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밖와대’에서도 강력한 영향력

이런 분위기 탓에 박 차장은 6월9일 밤 이 대통령과 1시간가량 독대를 한 끝에 눈물을 쏟으며 청와대에서 짐을 쌌다. 그러곤 다시 전국을 돌며 선진국민연대 회원들을 만났다. 당시는 ‘쇠고기 촛불’로 이 대통령 지지율이 10%대까지 곤두박질칠 때여서 박 차장의 움직임을 놓고 “선진국민연대 조직을 재정비해 이 대통령 지지 조직을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청와대에서 나온 지 한 달쯤 뒤인 7월22일엔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선진국민연대 조찬 모임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참석한 모습이 언론에 포착돼 ‘야인’으로 납작 엎드려 지낸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그와 가까운 인사들은 “실용주의, 다산 정약용과 관련한 책을 읽으며 앞으로 이명박 정부 성공을 위해 뭘 해야 할지 구상하고 있다. 당분간은 공개적으로 나서진 않을 것”이라는 말을 전했다.

그랬다. 박 차장은 공개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미 인사 조직을 장악한 박 차장의 영향력까지 쉽게 줄어들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밖와대’(청와대 밖의 청와대라는 뜻)로 불리는, 서울 시내 모처에 낸 박 차장의 사무실에 인사비서관실 담당자들이 드나들며 관련 서류를 박 차장에게 전달하고, 박 차장이 ‘결재’를 해야 인사가 난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국무총리실에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되살아난 것도 이 무렵인 2008년 8월이다. 영포회 회원으로 알려진 이인규 전 노동부 감사관이 공직윤리지원관을 맡고, 진경락 서기관, 김충곤 팀장, 원충연 사무관 등 박 차장과 가까운 인사가 공직윤리지원관실로 자리를 옮긴 게 바로 이 때였다. 정부 출범 뒤 청와대 민정수석실로 갔던 포항지청의 한 수사관도 비슷한 시기 공직윤리지원관실로 파견됐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수집·작성한 정보·동향 보고서는 박 차장이 직접 이 대통령에게 보고하거나,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사관계비서관을 통해 보고됐다고 알려졌다.

선진국민연대와 포항 출신 인사들 역시 박 차장이 청와대에 있을 때와 다름없이 승승장구했다. 박 차장과 의형제간으로, 선진국민연대 조직을 함께 이끌었던 김대식씨는 대통령에게 직보를 할 수 있는 자리인 민주평통 사무처장에 임명됐다. 그는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전남지사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 다음달 치러질 한나라당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박 차장 후임으로 발탁된 정인철 기획조정비서관은 선진국민연대 대변인 출신이고, 권성동 강원연대 대표(현 한나라당 의원)와 김석원 대외협력팀장이 각각 법무비서관과 시민사회비서관실 행정관에 임명된 것도 박 차장이 ‘민간인’ 신분일 때였다. 선진국민연대 출신의 공기업 감사·이사도 쏟아졌다. 정책위원장을 맡았던 허증수씨는 인수위 시절 인천시로부터 189만원어치의 향응을 접대받아 인수위원직을 사퇴했는데, 2년 만에 포스코와 KT의 사외이사에 선임됐다. 힘있는 누군가가 인사에 강하게 개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선진국민연대 인사들에게만 이런 행운이 따를 수 있었을까.

고속 승진도 눈에 띈다. 선진국민연대 사무처에서 실무를 맡았던 이동헌 인사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은 애초 3급 행정관으로 청와대에 들어갔다가 1년 만에 2급으로 승진했다. 고속 승진은 선진국민연대보다 포항 출신 인사들한테서 더 많이 발견된다. 이상휘 춘추관장도 1년 만에 2급에서 1급으로 승진했다. 이강덕 전 경북지방경찰청 차장(경무관)은 민정2비서관실 행정관으로 들어갔다가 역시 1년 만에 치안비서관(치안감)으로 승진했고, 지난 1월 부산지방경찰청장으로 발령났다. 경북 영일 출신인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은 정부 출범 뒤 경찰청 차장으로 승진한 데 이어, 여섯 달 만에 서울경찰청장 자리를 차지했다. 용산 참사 과잉 진압만 아니었다면, 그는 초고속으로 경찰청장에 기용될 수도 있었다.

지난해 이맘때쯤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서울시 6급 공무원 출신으로 박 차장과 가까웠던 이아무개씨는 인수위를 거쳐 청와대 인사비서관실 5급 행정관으로 자리를 잡았다. 공기업 인사를 맡았던 그는 박 차장의 지시대로 인사안을 작성한다는 평을 듣던 차였는데, 공교롭게도 1년 만에 다시 4급으로 승진했다. 보통 공무원은 1직급씩 승진하는 데만도 몇 년이 걸리는데, 이 행정관은 불과 2년 만에 두 계단이나 뛰어오른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6월 이 행정관이 한국도로공사가 발주한 동서고속도로의 동홍천~양양 구간 공사 입찰에서 특정 업체가 공사를 따내도록 해달라고 도로공사 고위직에게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사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의 조사를 받았다. 특별감찰반이 조사한 의혹엔 이 행정관이 승진 대상인 한 공기업 간부를 찾아가 ‘승진을 확실히 보장해줄 테니 대가를 달라’는 취지로 돈을 요구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민정수석실은 “뚜렷한 혐의가 없다”면서도 “인사 담당자로서 유사한 소문이 계속된다”는 이유로 그를 다른 부처로 전보시키기로 했다. 그런데 그를 처음 보내려던 부처가 바로 공직윤리지원관실이었다고 한다. 이런 보고를 받은 이 대통령은 “가서 또 무슨 짓을 하려고”라며 진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 행정관은 교육과학기술부 산하기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권 누구도 “의혹 털고 가자”는 말 못해

이 대통령에게 박 차장은 대체 어떤 존재일까? 박 차장은 지난해 1월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으로 임명되면서 화려하게 재등장했다. 아프리카 자원외교를 도맡고 있고 정부 내 15개 태스크포스팀장을 맡을 만큼 하는 일도 많고 책임과 권한도 강력하다. 조만간 단행될 청와대 비서실 개편 때 박 차장이 청와대에 복귀할 것이라는 관측도 유력하게 제기된다. 박 차장의 ‘능력과 충성심’을 이 대통령이 신뢰한다는 징후로도, 그 만큼 박 차장 스스로가 조직을 확실히 장악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여권 핵심 인사들도 두 가지 해석 사이를 오락가락한다. 또 박 차장이 여러 가지 의혹에 깊이 개입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품고 있으면서도 쉽게 ‘박영준’을 입에 올리지 못한다. 이미 정두언 의원이 권력 사유화 발언 이후 권력의 주변부로 밀려나는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박 차장을 둘러싼 의혹과 소문이 모두 사실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지만, 여권의 그 누구도 “의혹은 시원하게 털고 가자”는 말조차 못하는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이번 민간인 사찰 파문에서 알 수 있듯, 그 피해자는 결국 국민이다. 이 대통령 임기는 아직 2년 하고도 일곱 달이나 남았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