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찾아나선 '미술의 대장정'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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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12.20 23:14 / 수정 : 2009.12.20 23:15

'모네에서 피카소까지' 특별전… 미술평론가 이주헌의 관람기
인상파의 '자연의 빛' 잔치 모네의 '앙티브의…'에서 절정
피카소 등 입체파 작품에선 '지성의 빛' 찬란하게 빛나

미술은 빛의 예술이다. 인상파 화가들만 빛을 좇은 게 아니다. 모든 미술가가 빛을 좇았다. 눈을 감아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름다운 색채도 멋들어진 형태도 다 빛의 선물이다. 빛이 없이는 미술이 존재할 수 없다.

물론 너나 할 것 없이 빛을 좇았다 하더라도 인상파 화가들과 그 이전의 화가들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이전 화가들이 빛의 선물, 그러니까 빛이 보여주는 대상을 그리는 데 여념이 없었다면, 인상파는 빛 자체를 그리는 데 주력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인상파를 현대미술의 기점으로 잡는 이유는 이처럼 대상 세계를 넘어 빛 자체를 그림으로써 미술이 전통적인 구상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데 있다.

빛은 우리에게 형태와 색채를 보여주지만 빛 스스로는 아무런 형태도 색채도 지니고 있지 않다. 그 빛을 그린 인상파 이후 화가들은 자연스레 형태도 아니고 색채도 아닌 것을 마음껏 그릴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 '모네에서 피카소까지' 특별전은 바로 그 자유와 용기의 대장정을 보여주는 전시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모네에서 피카소까지’특별전을 찾은 관람객들이 폴 세잔의〈사과와 와인 잔이 있는 정물〉(오른쪽) 등 작품을 감상하고 있 다. 이번 전시는 미국의 대표적 미술관인 필라델피아미술관 소장품 중 인상주의를 중심으로 서양 근·현대 미술의 걸작품 96점을 보여준다./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전시의 빛은 코로(Corot·1796~ 1875)의 〈테르니의 염소 치는 목동〉에서 시작된다. 실루엣으로 처리된 숲 사이로 여명이 동터오는 그림이다. 코로는 인상파 화가들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런 그의 태도와 관계없이 그의 감성은 임박한 미래에 빛이 화포(��布)를 충만히 물들일 것이라는 사실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렇게 의식이 부정하는 동안 감각이 반응하며 현대가 열렸다.

인상파의 빛 잔치는 역시 모네(Monet·1840~1926)의 〈앙티브의 아침〉, 피사로(Pissarro·1830~1903)의 〈퐁네프의 오후 햇살〉 같은 그림에서 절정을 이룬다. 사물의 형태는 흔들리고 빛과 대기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전통적인 시각상이 해체된다. 이 시각상의 해체에 영감을 받아 사물의 질서를 본격적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한 유파가 입체파다. 피카소(Picasso ·1881~1973)의 〈여인과 아이들〉과 후안 그리스(Juan Gris·1887~1927)의 〈체스판, 글라스, 접시〉에서 그 해체와 재구성의 과감한 전복을 맛볼 수 있다.

‘모네에서 피카소까지’특별전을 둘러보고 있는 미술평론가 이주헌씨./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물론 입체파 화가들의 그림에서는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서와 같은 자연의 빛을 볼 수 없다. 그렇다면 현대미술에 들어서는 빛을 그리는 게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자연의 빛은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그에 못지않게 밝은 '지성의 빛'을 볼 수 있다. 피카소와 그리스는 자연을 따라 그리는 것을 포기한 대신 지성에 의지해 화면에 새로운 조형질서를 창조했다. 이제 화가들은 더 이상 모방에 연연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들은 진정한 창조자가 되었다. 그들이 더욱 파격적으로 창조에 매달릴수록 지성의 빛은 화포에서 더 찬란하게 빛났다. 자연의 빛을 초월한 화포의 빛은 지성의 빛 말고도 마티스(Matisse·1869~1954)의 그림이 보여주는 '감각의 빛', 샤갈(Chagall·1887~1985)의 그림이 보여주는 '내면의 빛' 등 다양한 갈래로 분출되었다. 물리적인 빛이 아니더라도 관객은 이제 그림들로부터 다양한 빛을 느낄 수 있다. 유럽 현대미술의 대장정을 이끈 것은 이렇듯 초지일관 빛이었다.

전시 타이틀이 화가(모네)에서 시작해 화가(피카소)로 끝나지만, 이 전시에는 조각 작품도 몇 점 출품되어 있다. 유명한 브란쿠시(Brancusi·1876~1957)의 〈키스〉와 마티스의 〈좌대 위의 누드〉, 립시츠(Lipchitz·1891~1973)의 〈머리를 딴 여인〉 등이 그것이다. 브란쿠시는 자신의 작품을 빠르게 움직이는 물고기에 비유한 적이 있다. 물고기를 생각할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비늘이나 지느러미가 아니라 재빠른 움직임이나 유연한 동작이라고 브란쿠시는 말한다. 그래서 그는 사물의 형태를 넘어 그 안에 내재한 '생명의 번득임'을 표현하고자 애썼다. 〈키스〉는 육면체의 돌을 불과 몇 개의 선으로 살짝 다듬어 그 번득임을 표현한 걸작이다. 가히 대가다운 직관과 통찰의 빛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은 모두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왔다. 전시실 끝 부분을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1887~1986) 등 미국 미술가의 작품들로 채울 수 있었던 이유다. 우리에게는 잘 소개되지 않았던 2차 세계대전 이전의 미국 미술을 직접 대면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당시 유럽의 영향으로부터 점차 독립해가던 미국 미술의 '성장통'과 열정·비전을 두루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