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인물로 다시 보는 6·25] 밴 플리트 8군사령관, 아버지처럼 모셔 로버트슨 특사 "빈틈 없고 책략이 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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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6.25 03:04

북한군이 낙동강 전선까지 밀고 내려오던 1950년 8월, 주한 미국대사 무초가 이승만 대통령을 찾아왔다. 무초는 전시(戰時) 내각이 있던 대구가 적의 공격권에 들어갔으니, 정부를 제주도로 옮길 것을 요청했다. 이승만은 갑자기 허리에 차고 있던 권총을 꺼내들었다. "이 총으로 공산당이 내 앞까지 왔을 때 내 처를 쏘고, 적을 죽이고, 나머지 한 알로 나를 쏠 것이오. 우리는 정부를 한반도 밖으로 옮길 생각이 없소." 하얗게 질린 무초는 혼비백산해 돌아갔다. 이승만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회고다.

북한의 남침으로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처했던 순간에도 이승만은 주한 미국대사나 미8군 사령관, 유엔군 사령관들에게 경외의 대상이었다. 30여년간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었던 노정치가 이승만은 한국의 존망을 좌우할 수 있는 미국측 인사들로부터 존경과 복종을 이끌어냈다. 이 대통령은 무초를 사석에선 '무초 펠로'(Muccio Fellow·무초 녀석)라고 불렀을 만큼 자신감이 있었다.

1950년 12월 리지웨이 미8군 사령관이 부임인사를 하러 왔다. 중공군에 밀려 후퇴만 하는 미군에 불만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은 리지웨이 장군을 냉담하게 맞았다. 불안했던 리지웨이는 "대통령 각하, 저는 한국에 온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에 주둔하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기어이 적을 박살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제야 이승만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1951년 4월 부임한 밴 플리트 미8군 사령관도 반평생을 이국 땅에서 독립을 위해 싸운 이 대통령을 존경했다. 밴 플리트는 한 달에 두세 번씩 이승만 대통령 내외를 모시고 식사를 했다. 이 자리에 동석했던 백선엽 장군은 아들이 아버지를 모시는 것처럼 극진했다고 회고했다. 1965년 이승만이 망명지 하와이에서 서거했을 때 밴 플리트는 유해를 모시고 직접 한국에 왔다.

이승만은 미국 측에서 봤을 때 까다로운 상대였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일기에 "이승만이 철저하게 비협조적이고 반항적이기까지 한 사례들을 담은 긴 목록을 여기서 열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 않는 동맹자"라고 썼다. 그러나 이승만의 고집은 약소국의 생존을 위한 것이었고, 미국 쪽 협상 파트너들은 이승만을 높이 평가했다. 1953년 6월 반공포로 석방 직후 미국 대통령 특사로 한국에 온 로버트슨은 이승만을 "빈틈이 없고, 책략이 풍부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1953년 11월 방한한 미국 부통령 닉슨은 훗날 "이승만의 용기와 뛰어난 지성에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