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복의 세상읽기] 그 국민에 그 지도자 [중앙일보]

2010.07.13 00:16 입력 / 2010.07.13 00:29 수정

책을 읽다 보면 밑줄을 치면서 정독하게 되는 책이 있습니다. 『추악한 중국인(醜陋的中國人)』도 제게는 그런 책입니다. 대만의 반체제 인사로 사형을 선고받고, 9년 동안 옥고(獄苦)를 치렀던 보양(柏楊·1920~2008) 선생이 1985년 출간한 책입니다. 한국에서는 중국 전문 저술가인 김영수씨의 번역으로 2005년 소개됐습니다. 중국인의 문제점을 송곳으로 후벼파며 맹성(猛省)을 촉구한 책입니다. 제게는 그대로 한국인에 대한 경종(警鐘)으로 읽힙니다. 이런 비유가 이 책에 나옵니다.

“지도자를 잘못 뽑는다는 것은 마치 옷을 짓는 재봉사를 불러다 대문을 고치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니 대문을 거꾸로 다는 것이다. 그럴 때 집주인과 재봉사의 대화는 당연히 이럴 것이다.

-집주인 : 당신 눈이 멀었어? 대문을 거꾸로 달다니!

-재봉사 : 누가 눈이 멀어? 옷 짓는 재봉사한테 문을 맡긴 당신이 눈이 멀었지!”

보양 선생이 내내 강조하는 것은 국민의 감식안(鑑識眼)입니다. 지도자를 제대로 판별해 고를 줄 아는 눈이 없으면 재봉사를 불러 대문 수리를 맡긴 집주인과 하등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곰보와 미녀조차 구분하지 못하면서 누구 탓을 할 수 있느냐는 거지요. 우리 눈이 멀었던 건가요.

나라 꼴이 말이 아닙니다. 안팎이 다 그렇습니다. 집권 5년의 반환점을 채 돌기도 전에 곳곳에서 악취가 진동하고 있습니다. 겉보기엔 멀쩡한 줄 알았는데 돌덩이를 들춰내니 온갖 벌레와 구더기들이 우글거립니다. 권위주의 시대의 필름을 다시 보는 느낌입니다. 무고한 민간인을 권력기관이 잡아족쳐 산송장을 만들어 놓질 않나, 잊혀졌던 ‘고문의 추억’이 다시 어른거리질 않나, 스폰서의 농간에 놀아나 주지육림(酒池肉林)을 헤맨 검사들이 있질 않나…. 부패로 얼룩진 교육계는 또 어떻습니까.

[일러스트=강일구]
정치권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지방선거 참패를 교훈 삼아 뼈를 갈고 몸을 부숴도 모자랄 판에 집권 여당은 권력싸움에 눈이 멀어 서로 총질을 해대기 바쁩니다. 말로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라지만 제 눈에는 권력의 달콤함만을 좇는 부나방들 같습니다. 초일류로 채워도 부족할 청와대에 공복(公僕) 의식조차 의심스러운 2류와 3류들이 판치고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권부(權府)가 그 모양이니 영혼을 내놓고 산다는 관료들이야 오죽할까요. 북한의 공격으로 해상방위선이 뚫려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군의 특수성을 모르는 민간인들 때문에 군의 명예와 사기가 손상됐다는 볼멘소리만 무성합니다. 안보리 외교에서 굴욕적인 수모를 당해 놓고도 외교 당국자들은 “그만하면 절반의 성공”이라며 자화자찬(自畵自讚)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높은 벽과 국제정치의 현실 탓을 하지만 처음부터 그걸 몰랐단 말인가요. 부끄러운 마음으로 책임지는 자세부터 보이는 것이 도리 아닌가요. 국정 농단이나 국기 문란, 국민의 눈을 속이는 사술(詐術)은 발붙일 틈조차 없다는 공도(公道)의 엄정함을 지도자가 솔선해서 보였더라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지도자가 약점을 보이는 순간 그걸 파고들어 이용하는 것은 관료 집단의 생리입니다.

지도자 잘못 뽑았다는 탄식과 한숨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경제를 살려 배 부르고 등 따습게 해주면 그만 아니냐는 생각에 잠시 눈이 멀었었다는 자성(自省)도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선택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하고,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암울하고 답답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규칙입니다.

허물은 인간의 굴레입니다. 지도자라고 예외일 순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적어도 지도자라면 최소한 한 가지 덕목만은 갖춰야 합니다. 포용력입니다. 포용력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싫은 소리에도 귀 기울일 줄 알고, 남 탓 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청와대에 자리를 걸고 “각하, 그건 아닙니다”라고 직간(直諫)하는 참모가 있나요. 그런 참모가 몇 명만 있었어도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진 않았을 겁니다. 그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바로 대통령 자신의 책임입니다. 대통령의 불행이기도 합니다. 포용력 없는 지도자에게 참모들은 목숨을 바쳐 충성하지 않습니다.

이 정부만큼 남 탓 잘하는 정부도 드물 것입니다. 잃어버린 10년 탓, 노무현 탓, 촛불 탓, 인터넷 탓, 친북좌파 탓, 김정일 탓, 야당 탓, 박근혜 탓, 외부 여건 탓, 참여연대 탓…입만 열면 남 탓을 해오지 않았습니까. 설사 핑계거리가 있어도 “이건 내 탓이고, 우리 탓이다”고 말하는 그런 지도자를 국민은 존경합니다.

맹자는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말하면서 “수오지심 의지단야(羞惡之心 義之端也)”라고 했습니다. 그릇된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 의(義)의 근본이라는 뜻입니다. 옳지 않은 일을 했을 때, 그 일이 자신의 일이든 자기 아랫사람의 일이든 부끄러워할 줄 아는 지도자라야 포용력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국민이 충분한 수준을 갖추지 않고서야 어떻게 남을 나무라고 책망할 수 있겠는가. 존경할 가치도 없는 사람을 보려고 목을 길게 빼 만세를 불러놓고는 이제 와서 그가 여러분의 목에 올라타 있다고 나무랄 수 있겠는가”라고 보양 선생은 호통을 칩니다. 그의 질책이 비단 중국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기엔 지금 대한민국이 서 있는 자리가 너무 위태로워 보입니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