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몽플뢰르' 갈등해결법

  • MSN 메신저 보내기
  • 뉴스알림신청
  • RSS
  • 글자 작게 하기
  • 글자 크게 하기
  • 프린트하기
  • 이메일보내기
  • 기사목록
  • 스크랩하기
  • 블로그담기

입력 : 2009.07.19 21:56

지해범·전문기자

나라가 둘로 쪼개져 첨예하게 대립할 때 이를 어떻게 풀 것인가. 서로 잡아먹지 못해 으르렁대던 두 세력이 대화와 타협으로 갈등을 푼 성공적 사례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몽플뢰르 회의(Mont Fleur Conference)'가 종종 거론된다.

'몽플뢰르 회의'란 1991년 한 흑인 대학교수의 주도로 케이프타운 외곽 포도농장에 있는 '몽플뢰르 콘퍼런스 센터'에 흑백 대표 22명이 모여 6개월 동안 '남아공의 미래'를 토론한 행사를 말한다. 당시 남아공은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라는 흑인 분리차별정책으로 악명 높던 나라였다. 1990년 흑인들의 조직적인 저항이 거세지자, 인구의 10%도 되지 않는 백인 정부는 넬슨 만델라를 석방하고 흑인 정당들을 합법화하는 등 화해의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나 백인 정권하에서 가족을 잃은 흑인들은 '복수'를 꿈꾸었다.

이런 시기에 좌파 성향의 흑인 정당과 반정부단체 대표, 강경 노조 및 공산당 대표들이 몽플뢰르 센터에서 백인 대표들과 책상을 마주했다. 이들은 먼저 3개월 동안 30개의 시나리오를 만들었고, 이듬해 3월까지 4개로 정리했다. 그중 첫째 '타조' 시나리오는 백인 정부가 타조처럼 머리를 모래에 처박고 흑인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 미래다. 둘째 '레임덕' 시나리오는 약체 정부가 들어서서 눈치만 보다가 개혁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셋째 '이카루스' 시나리오는 의욕에 넘치는 흑인 정부가 태양 가까이 날다 떨어져 죽은 이카루스처럼 이상주의적이지만 경비가 많이 드는 국가사업을 추진하다 재정위기에 빠지는 것이다. 마지막 '플라밍고들의 비행(Flight of the Flamingoes)' 시나리오는 모든 세력이 연합하여, 답답하지만 천천히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4개의 시나리오는 팸플릿과 비디오테이프로 제작돼 모든 정치집단, 시민조직, 경제단체 등에 배포되었고, 이를 설명하고 토론하는 100회 이상의 워크숍이 열렸다. 그 결과 각 세력은 4번째 시나리오로 의견을 좁혔다. 심지어 "백인의 부를 흑인에게 나누면 빈곤은 사라진다"던 아프리카민족회의 등 좌파 정당들도 입장을 바꾸었다. 그리하여 이 시나리오는 1996년 만델라 정부의 '성장과 고용과 재건설' 정책의 토대가 되었고, 피로 점철된 대결의 시대를 화해와 통합의 시대로 바꾸는 데 크게 기여했다.

몽플뢰르 회의가 한국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한국은 지금 비정규직문제·쌍용차문제·미디어법문제·북한문제 등 굵직한 사안들이 숨 돌릴 틈도 없이 터져 나오지만, 어느 것 하나 시원스레 풀리지 않는 답답한 상황이다. 대통령도, 정부도, 국회도 해결 능력을 상실해 버렸고, 국민은 둘로 갈라져 서로만 원망하고 있다.

'몽플뢰르 회의' 전 과정에 참여했던 아담 카헤인은 '어려운 문제 풀기'(Solving Tough Problems·한국 번역본 '통합의 리더십')란 자신의 책에서 "'복잡성'이 높은 문제는 '수퍼맨'이 나타나 해결책을 제시한다고 풀리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당사자들이 모여 스스로 해결책을 '창조'하고 실행할 때만 풀릴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 한국 상황에서 보는 것처럼 '사회적 복잡성'이 높은 문제는 결국 문제의 당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죽음을 불사하고 싸우는 쌍용차문제의 경우, 어느 한쪽이 '100% 희생되는' 해결책이란 없다. 회사의 생존을 위해 해고가 불가피하다면, 해고 근로자와 정부(평택시 포함), 지역 상공회, 타(他) 자동차회사 관계자 등이 머리를 맞대고, 재고용 및 재교육 방안을 찾는 것이 더 빠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수퍼맨'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