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현의 문학산책] "소설가는 소속이 없어야 현실에 저항할 수 있다"

  • 박해현 논설위원
  • 입력 : 2012.03.26 21:51

    '소설가는 個人史를 허문다'며 삶과 작품을 분리하라는 쿤데라
    한국에선 SNS에서 떠들수록 유명한 작가인 듯 대접받아
    차분히 좋은 소설을 쓰거나 떠들되 서툰 소설 내지 말기를

    박해현 논설위원
    올해 여든세 살인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는 지난해 프랑스의 명문 출판사 갈리마르에서 전집을 내기 시작했다. 쿤데라는 체코 공산정권의 눈 밖에 나서 창작의 자유를 잃은 뒤 1975년 프랑스로 이주했다. 이미 소설 '농담'과 '삶은 다른 곳에'로 명성을 쌓은 쿤데라는 1984년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세계적인 작가로 우뚝 섰다.

    프랑스에서 나온 쿤데라 전집에는 다른 작가들의 전집과는 달리 해설과 전기(傳記)가 없다. "소설가는 소설이란 새집을 짓기 위해 자신의 개인사라는 집을 부숴야 한다"는 게 쿤데라의 지론이기 때문이다. 그는 "소설가는 역사가의 하인이 아니다"며 소설을 실제 사건과 연관시켜 해석하는 태도도 비판했다. 그는 소설가의 자율성과 소설의 예술성을 결벽증에 걸린 듯이 따져왔다. 그는 "소설가란 정치·종교·이념·도덕·집단의 정체성을 완전히 배제해야 한다"고 했지만 "현실 도피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소설가란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아야 현실에 저항하고 도전하고 반항할 수 있다"는 믿음을 지니고 있다.

    무릇 작가치고 소설의 독립성과 순수성을 옹호하지 않은 경우는 없다. 그런데 쿤데라는 유별나다. 그의 1984년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1968년 '프라하의 봄'이란 역사의 격변기에 휘말린 개인들의 삶을 다뤘다. 개인이 존재의 무거움과 가벼움 중 어느 쪽을 지향하느냐, 아니면 둘 사이를 왕복하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삶의 양식을 그렸다. 이 소설은 체코에선 1989년 벨벳 혁명이 일어난 뒤에야 금서(禁書) 목록에서 풀려났다. 그런데 쿤데라는 체코 독자들이 프라하의 봄이란 소재에만 맞춰 소설을 해석할까 봐 걱정했다. 그는 체코에서 프라하의 봄을 겪지 않은 세대가 늘어난 2006년에야 체코어판을 처음으로 냈다. 그는 "이 책을 정치적 코멘트가 아닌 소설로 읽어달라"고 독자들에게 신신당부했다.

    쿤데라는 열아홉 살에 체코 공산당에 들어갔지만 선전(宣傳)문학에서 벗어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다가 당에서 쫓겨났다. 그렇다고 그는 반체제 작가로 활동하진 않았다. 다만 그는 사회주의 리얼리즘과는 다른 문학의 길을 걷고 싶었을 뿐이었다. 쿤데라는 마흔 살에 탈고한 소설 '삶은 다른 곳에'에 자신의 청년기 체험을 반영했다. 젊은 시인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영웅이 되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체코의 청년 공산당원들을 지배한 '서정(抒情)주의'를 비판했다. 청년기엔 '세계를 자아화(自我化)'하는 서정시인이 되기 쉽기 때문에 소설의 주인공을 비롯한 청년 당원들은 자아도취증에 빠져 혁명을 낙관하는 철부지들이었다는 얘기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이 소설은 분명히 '혁명의 낭만성을 풍자한 소설'이란 평가를 받을 만했다. 그러나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제는 '예술은 무엇인가'다. 그래서 '시학(詩學)의 본질을 탐구한 예술가 소설'이라거나 '소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문 초현실적 실험소설'이란 찬사도 받았다. 성(性)에 눈뜨기 시작한 청년의 서정적 사랑을 다룬 소설로도 읽혔다. 쿤데라는 "당신은 반체제 인사요?"라거나 "당신은 좌파요 우파요?"라는 질문을 받으면 늘 "나는 소설가요"라고 답해왔다. 쿤데라는 소설과 에세이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정치와 이념에 대해 직접 발언한 적이 없기 때문에 쿤데라 소설은 해석의 다양성을 누려왔다. 그는 원고를 쓰는 시간 이외엔 침묵을 지키는 방식으로 작가의 자유와 위엄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문학사에서 작가는 근대 계몽주의 지식인의 역할도 겸해야 했다. 민주화 투쟁기엔 투사로 나서기도 했다. 이젠 계몽과 투쟁이 작가의 몫이 아닌 때다. 그러나 여전히 현실에 깊이 참여한 작가일수록 문단의 평가도 받고 독자 확보에 더 성공하기 쉬운 게 우리 문단 풍토다. 요즘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이용해 몇몇 작가들이 정제되지 않은 발언을 내놓아 종종 논란을 일으킨다. 물론 문인도 시민으로서 정치에 참여할 권리는 있다. 그러나 글쓰기 이외에 섣부르게 말을 많이 하면 입담이 좋다는 칭찬이야 듣겠지만, 자기 문학에 대한 해석의 다양성을 스스로 좁히는 잘못을 범하기 쉽다.

    물론 작가들이 "너나 잘하세요"라고 반박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우리 문단에서 작품 평가가 작가의 이념과 정파, 소재의 사실성 따위에 좌우되는 것은 문학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책을 진짜 좋아하는 독자들은 인문학 서적 못지않게 교양과 재미를 더불어 주는 소설을 원하고 있다. 작가들이여, 과묵하게 좋은 소설을 쓰는 쪽을 택하거나 맘껏 떠들되 서툰 소설은 발표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