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받기 싫어 장관하기 싫다"

청와대 100개항목 엄격한 진술서 체크
일부 후보자 포기 속출… 인선(人選) 늦어져

청와대가 최근 인사대상 후보자들에게 요구한 엄격한 자기진술서가 개각이 늦어지는 이유 중 하나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개각과 청와대 개편을 앞두고 청와대가 후보자들에게 요구한 자기진술서엔 '과거 10만원 이상 접대를 받은 적이 있는가', '사채(私債)를 가장한 후원금을 받은 사실이 있는가', '사회봉사활동을 하거나 기부금을 낸 적이 있는가' 등의 질문이 담겨 있다. 최근 이 진술서를 본 후보자 중엔 "난 공직에 관심이 없다"며 후보군에서 제외해달라고 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청와대 주변에선 "중도실용주의 이념에 맞아 입각 후보에 오른 모 대학 교수가 진술서를 보더니 꿈을 접었다", "여권의 모 인사가 누구를 추천했는데 진술서 작성을 꺼린다더라"는 등의 얘기들도 나온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개각이 늦어지는 이유 중 하나로 인선(人選) 난항이 꼽히는데, 여기에는 까다로운 진술서도 한몫을 한 것 같다"고 했다.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낙마 이후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의 변화 중 하나가 강화된 검증진술서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만든 이 진술서는 재산형성 과정을 비롯해, 세금·병역·논문·국민연금·의료보험·위장전입 등 위법 가능성을 후보자 스스로 점검할 수 있도록 체크리스트 형식으로 돼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체크 항목이 무려 100개가 넘는다"며 "이 대통령이 평소 강조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관련 항목이 많다"고 했다. 예를 들어 '과거 10만원 이상의 접대를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후보자들은 구체적으로 언제, 누구에게, 얼마를 받고 또 냈는지 등을 써내야 한다. 과거 부적절한 이성관계 유무를 묻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 이 진술서 양식 초안이 안건으로 올라왔을 때 "이런 것까지 검증하면 안 걸릴 사람이 누가 있느냐"는 얘기까지 나왔다고 한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인생 전반에 대한 고해성사와 비슷하다"고 했다. 청와대는 "우리나라는 과거 산업화 시대와 현재의 도덕성 기준이 큰 괴리를 보이고 있어 공직후보자들이 인사검증을 통과하기가 쉽지 않다"면서 "특히 스스로 위법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경우도 있어 이를 스스로 체크해서 자기검증을 해 보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도 검증과정에서 요구받는 진술서가 사생활 침해이자 범죄수사에 가까운 수준이라고 해서 논란이 된다. "낙태를 한 일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은 여성후보자가 공직 진출을 거부한 사례도 있었다. 진술을 거부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인재의 풀이 좁아져 한번 공직을 거친 사람들만 계속 고위직을 차지하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비판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12일 공식 일정을 잡지 않은 채 청와대에 머물렀다. 8·15 광복절 메시지를 점검하는 한편 개각 및 청와대 인사 문제를 집중 고민했을 거란 관측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