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2차대전 이후 첫 ‘이과 내각’ [중앙일보]

2009.09.14 02:49 입력 / 2009.09.14 03:24 수정

총리·관방장관·국가전략담당상 모두 공대 출신
“과학적 사고 기대” “표현력 부족 우려” 평가 갈려

16일 일본 차기 총리에 선출될 예정인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대표(가운데)가 1972년 미국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최근 공개했다. 일본 정치 명문가 출신인 하토야마 대표는 스탠퍼드대에서 공학을 전공했다. [AFP=연합뉴스]

16일 출범하는 일본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내각은 일본 최초의 ‘이과계 출신 내각’이 될 전망이다. 주요 각료에 이과계 출신이 포진하기 때문이다.

요미우리(讀賣)신문 등에 따르면 하토야마 대표는 ‘우애’ ‘정치는 사랑’ 등 추상적이고 정서적인 발언을 자주 하지만, 그는 도쿄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 공학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정통 공학도다. 도쿄공업대 등에서 교수 생활도 했다. 1986년 중의원 선거에서 처음 당선됐을 때의 선거 구호도 ‘꿈을 현실로, 지금 정치를 과학화한다’였다. 부인 미유키(幸) 여사도 “남편은 정치인보다는 학자 스타일이다. 젊어서는 정계에 입문한 뒤에도 정치보다 학문에 더 관심을 보이곤 했다”고 말한다.

하토야마 내각에서 비서실장·대변인 격인 관방장관에 내정된 히라노 히로후미(平野博文) 의원은 주오(中央)대 이공학부 출신이다. 핵심 요직인 국가전략담당상에 취임하는 간 나오토(菅直人) 대표대행도 도쿄대 공대 이학부에서 응용물리학을 전공했다. 내각의 핵심인 총리와 관방장관, 국가전략담당상이 모두 이과계 출신인 것이다. 특히 총리와 관방장관이 모두 이과계 출신인 것은 처음이다. 요미우리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이미지가 강한 ‘이과 두뇌’가 일본의 앞날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된다”고 밝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정치사에서 이과 출신 총리는 매우 드물었다. 대부분이 법학부나 경제학부 등 문과 출신이었다. 주오(中央)공학교(전문대)를 졸업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 수산강습소(현 도쿄해양대학)를 졸업한 스즈키 젠코(鈴木善幸) 전 총리 정도가 이과 출신이었다. 관방장관도 니혼(日本)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가지야마 세이로쿠(梶山靜六) 전 관방장관 등 몇 명에 불과하다.

‘이과계 출신 내각’에 대해선 “과학적인 사고가 기대된다”는 기대와 “문과계 출신보다 대국민 설득에 필요한 표현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가 동시에 나온다.

하토야마 대표의 스탠퍼드대 동창생인 무라카미 마사카쓰(村上征勝) 도시샤(同志社)대 교수는 “정치 세계에서는 개별 정치인이 자기 주장만을 강조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이과적인 사고를 발휘하면 부족한 데이터가 무엇인지를 빨리 파악하고,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정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과 바보와 문과 바보』라는 책의 저자인 다케우치 가오루(竹內薰)는 “하토야마 대표가 부족한 것은 논리적인 전략을 제대로 국민에 전달하는 표현력”이라며 “일반인들에게 호소하려면 총리의 목소리와 의중을 제대로 전달할 인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관저에서 나온 아소 총리=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는 16일 정식 퇴임에 앞서 11일 밤 도쿄 총리관저에서 퇴거해 시부야에 있는 자택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9월 총리에 취임한 아소 총리는 “총선에서 승리한 뒤 당당하게 관저에 들어가겠다”며 관저를 비워두다 측근과 전직 총리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올 1월에야 총리 관저에 입주했다. 그의 관저 생활은 8개월 남짓. 8개월 만에 물러난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93년 8월∼94년 4월)전 총리와 함께 최단 기간 입주한 총리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그는 새 총리가 취임하는 16일까지는 자동차로 20분 걸리는 자택에서 출퇴근할 예정이다.

도쿄=박소영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