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최전선에 그가 있다, 존 브록만

[중앙일보] 입력 2013.04.13 00:31 / 수정 2013.04.13 00:34

저자보다 더 영향력 큰 편집자
'문화지휘자' '지식의 효소'로 불려
700여 명 기고하는 엣지 재단 운영
도킨스·니스벳 등 일급 필자 수두룩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남자’ ‘문화지휘자’ ‘지식의 효소’.

 영국 일간지 옵서버(가디언지 일요판)는 지난해 1월 한 인물을 소개하며 이런 수사를 총동원했다. 주인공은 존 브록만(73·John Brockman)이다. “브록만은 진실로 위대한 사상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예술과 문학, 그리고 과학을 특유의 방식으로 융합할 줄 아는 이들에 빠져 있다”고 전했다.

 최근 국내에서 『컬처 쇼크』와 『퓨처 사이언스』, 두 권이 나란히 번역됐다. 한 책엔 존 브록만, 다른 책엔 막스 브록만이라는 이름이 눈에 띈다. 두 사람은 부자지간이다. 이들은 저자가 아니라 엮은이, 즉 편집자다. 그런데 저자보다 중량감이 더 나간다.

 보통 이들의 이름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리처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 미하일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 같은 굵직한 화제작의 한 구석에 작은 글씨로 들어가 있다. 그리고 안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이 책의 한국어판 저작권은 브록만사(Brockman Inc)와 독점 계약한 출판사에 있습니다.’

 이들의 이름은 종종 표지에 등장하기도 한다. 아버지 존이 엮은 책 12권과 아들 막스가 편자인 책 2권이 국내 번역돼 나왔다. 이 책들에 등장하는 필자는 연인원 300 명이 넘는다.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해서 최고 권위의 필자들로 빼곡하다.

1 지난해 1월 엣지 재단의 웹사이트와 브록만의 활약을 소개한 영국 ‘옵서버’. 2 1960년대에 앤디 워홀·밥 딜런과 함께 자리한 브록만(사진 왼쪽). 3 브록만을 ‘유럽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라고 소개한 이탈리아 일간지 ‘라 스탐파’. [사진 edge.org]
 브록만 부자의 직업은 출판 에이전트다. 글 쓰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저자와 출판사를 연결해준다. 아이디어만 있는 책, 초고가 입수된 책, 출판 준비를 마친 책, 그리고 이미 출간된 책들 등등, 이 책들에 관심이 있는 전세계 출판가 브록만사와 저작권 흥정을 한다.

 그런데 출판계에서 존 브록만은 골칫거리로 알려져 있다. 오랜 관행을 가볍게 무시하고, 더 많은 돈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저자들의 이익을 철저하게 대변한다.

 존 브록만은 어떤 사람인가. 그의 아버지는 보스톤에서 꽃을 팔았다. 그 부친이 새벽에 꽃 도매가를 정하면 도시 전체의 꽃값이 정해졌다는 설도 있다. 이제 존 브록만이 책값을 정하면 전세계 출판사들이 이를 따른다. 놀라운 건 그가 설립한 엣지재단의 홈페이지(edge.org)에 기고하는 일급 필자가 700명에 육박한다는 점이다. 그가 유능한 장사꾼에 그치지 않는 이유다. 지식의 최전선에 있는 과학자·저술가들이지만, 그들이 가고 있는 항로를 의미 있게 엮어 대중에게 내놓는 사람은 존 브록만이라는 얘기다.

 브록만의 뚜렷한 전망과 독특한 방법론이 없었다면 이렇게 많은, 세계의 슈퍼 브레인들이 한자리에 모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옵서버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엣지가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배타적인 엘리트 집단이 아니다. 능력을 중시하지만 늘 열려있다. 스티븐 핑커·브라이언 이노·리처드 도킨스 같은 친구들이 엣지의 구성원으로 받자고 하면 나는 말없이 그렇게 한다.”

 그가 처음 편집한 책은 『제3의 문화』(1995)다. 일찍이 C P스노가 선언했던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두 문화 사이의 단절을 뛰어넘자는 의지였다. 이제는 그의 이런 뜻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때로는 아들을, 때로는 제자를 추천해 함께 모여 글을 쓴다.

 브록만은 도발적이다. 자료만 파고드는 훈고학적 공부, 최신의 과학적 성취를 반영하지 않는 책상머리 공부를 비판해왔다. “주석에 주석을 더하며 입으로만 말하고 분석하는 지식 속에서 실제 세상은 길을 잃었다”고 말했다. 바로 지금 들끓고 있는 학문간 대화, 그 실증적 논쟁을 주목했고, 또 이를 책으로 빚어왔다. “하버드 도서관에 앉아 수백 만 권의 책을 읽으면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다. 차라리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 100명을 한 방에 가둬놓고 각자 가지고 있는 질문을 서로 던지도록 하는 게 낫다”고 자신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실제로 엣지 웹사이트는 그런 뜻 아래 만들어진 온라인 지식살롱이다. 사이트 출범을 기념하며 해마다 던지는 ‘올해의 질문’과 이에 응답한 지식인들의 글은 뉴욕타임스에 단골로 소개된다. 질문은 ‘당신이 증명할 수 없으면서도 믿고 있는 것은?  ‘당신의 위험한 사상은?’ 등 엉뚱하기로 유명하다. 뿐만 아니다.

 엣지는 요즘 학계의 키워드인 통섭이나 융합을 선구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자발적, 혹은 정책적으로 융합을 강조하면서 서로 다른 분야간의 대화를 꾀하고 있는데 그 결과물은 실망스러울 때가 많다. 억지로 섞으려는 모습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차라리 과학과 인문학, 그리고 예술의 최전선을 대중들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엣지의 방법론이 훨씬 나아 보인다.

 브록만은 올해 일흔셋이다. 뉴욕의 아방가르드 예술가와 노벨상 수상자 모두에게 편하게 전화를 걸 수 있는 드문 존재가 됐다. 백악관과 펜타곤에 자문을 하기도 한다. 그가 매년 여는 ‘엣지 만찬’도 화제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 제프 베조스 아마존닷컴 대표,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CEO 등 정보통신 업계의 거물들이 참석해 이른바 ‘백만장자들의 저녁’이라 불릴 정도다.

 브록만의 개인사도 흥미롭다. 스물두 살에 컬럼비아대에서 MBA를 마친 그는 뉴욕 월스트리트 대신 이스트빌리지를 선택했다. 거기서 아방가르드 실험영화운동의 대부 요나스 메카스와 작업했고, 앤디 워홀·로버트 라우젠버그·클라스 올덴버그와 같은 당대의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백남준과 함께 작업해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존 케이지로부터 노버트 위너의 『사이버네틱스』를 건네 받고 새로운 지식에 눈을 떠 지식을 중개하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뉴욕의 저명 문학 에이전트였던 장인이 아마도 모델이었겠지만 그가 신탁을 받는 신전은 문학이 아니라 과학이었다.

 이렇듯 브록만은 성공적인 예술 경영자에서 최첨단 지식의 지휘자로 극적으로 변신했다. “사람들이 평소 생각하지 않은 것을 생각하도록 도발하는 게 목표”라던 그의 꿈은 이제 아들 막스가 이어받고 있다. 그의 작업에서 좁게는 다변화된 매체 환경에서 출판의 미래를, 넓게는 우리시대의 과학적 성취를 선뜻 끌어안는 문화의 새로운 비전을 본다.

주일우 과학평론가

주일우 문학과지성사 대표. 생화학·과학사·환경학을 공부했다. 뉴미디어아트를 다루는 아트센터 나비 부관장, 인문학과 과학의 접점을 찾는 문지문화원 ‘사이’의 기획실장을 지냈다.


존·막스 브록만 부자의 신간은 …

『컬처 쇼크』 『퓨처 사이언스』
문화와 과학의 열띤 대화


아버지 존 브록만이 엮은 『컬처 쇼크』(와이즈베리)는 ‘현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지식의 최전선에서 넓힌 새로운 영역을 포괄해야 한다’는 엣지 재단의 슬로건을 그대로 담아낸 책이다.

 『총, 균, 쇠』의 저자이자 지리학 분야 석학인 제러드 다이아몬드, 대중음악가이자 문화이론가인 브라이언 이노, 소셜 네트워크의 전염효과 연구로 유명한 하버드의대 교수 니컬러스 A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최신 문화연구와 첨단 과학의 핵심을 짚었다. 우리 시대의 IT(정보기술)와 테크놀로지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를 논한다.

아들 막스 브록만
  특히 IT시대의 명과 암에 대한 학자들의 논쟁이 흥미롭다. ‘어메리칸 아이돌’처럼 집단 인기투표와 대중의 눈높이로 모든 것이 재단되는 시대에 비틀즈 같은 밴드가 과연 우승하거나 음악적 창의력을 보유했을 수 있었겠느냐는 질문도 던진다.

 아들 막스 브록만이 엮은 『퓨처 사이언스』(문학동네)에 등장하는 과학자들은 아버지가 엮은 책에 등장하는 이름들보다 생소하다. 젊고 유망한 과학자들을 자신의 일을 물려받은 아들과 함께 일하도록, 일종의 세대교체를 해 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제목도 『미래의 과학』이다.

 종신교수가 되기 전의 젊은 과학자들이 가장 생산력이 높은 시기에 이루고 있는 성과들을 보여주는 이 책은 진정으로 지식의 최전선이 어디인지를 보여준다. 실험실에서, 연구실에서 분자를 자르고 생명체를 조작하고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면서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열띤 현장을 만날 수 있다.